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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도 못했다
김중식
문학과지성사 201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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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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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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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I
자유종 아래/도요새에 관한 명상/스키드 마크/랜섬웨어 바이러스/지구온난화/보험사/1394 is 주체/시즌 2/철한낸보서에국천/난리도 아닌 고요/금연 포기/아파트 오후 4시/조망권/때수건이 열리는 물오리나무/비, 스피드, 그리고 대서부열차/늦은 귀가/극장 해체 공사/키다리 풍선 인형/꿈틀대며살아가는물생들이/파자/그대는 오지 않고/어쩌다 종점

II
이 더러운 세상/노아의 방주/바람의 묘비명/바람 물결 위의 텐트/만신전/만년설상가상/사막 시편/편시 막사/사막 건너기/바다 건너기/원년, 안전선/모래시계/땀 흘리는 불/기차/요 ‘ 艸 ’ 모양의 삶/사미인곡/속미인곡/저 세상 안쪽으로/피맛골 빈대떡집/방랑자의 노래/보름달 계수나무/미래 비전

III
경청/휴화산/곤충 같은 사랑/별이 불타는 밤에/관능/꽃/다시 해바라기/꽃에서 사랑까지/영변의 약산 진달래꽃/비냄새/대륙처럼/방사림 아래/신재생 알코올 에너지/태양 에너지/승천/밤바다 천리향/그저 살다/기러기 떼 헛가위질하듯/봄에 취하다/참 시끄럽다/세월이 흐른 뒤/물결무늬 사막

해설 머물러도 떠돌아도 무엇이 있는 게 아니지만?차창룡

저자 소개 1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0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1월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고 출판사 민음사·김영사, 격주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 기자로 활동했다. 또 [경향신문], [중앙선데이] 기자, 국정홍보처, 미래기획위원회, 대통령실 연설 비서관실, 주 이란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국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1993년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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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7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146쪽 | 222g | 128*205*10mm
ISBN13
9788932031187

책 속으로

풍 맞은 체위로 물속을 걷는다
장딴지 근육 파열 탓에
걸음마부터 시작한 재활 훈련

버터플라이 영법으로 수면을 때리는 딸아이의 어깨가
새싹 모양
돌고래 꼬리 같다

나비가 고래 등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듯

스스로 건너지 못하게 된다면, 여보
곡기 끊거나
까마귀 많던 산 중턱보다
바다로 갈 터이니

나의 고래여
물이 뭍보다 자유로울 때가 있으므로

태생이 파도 거품이었으므로
어차피 꺼질 목숨
생이 줄어도 어쩔 수 없으니
수면을 치며 솟구치는 고래야

바다를 건널 땐
낙타 배 때려 밤새 달려라.
---「바다 건너기」중에서


이 세상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자,
해서 오아시스에서 만난 해바라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으나
딱 한 송이로
백만 송이의 정원에 맞서는 존재감
사막 전체를 후광 後光으로 지닌 꽃

앞발로 수맥을 짚어가는 낙타처럼
죄 없이 태어난 생명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성모 聖母 같다
검은 망사 쓴 얼굴 속에 속울음이 있다
너는 살아 있으시라
살아 있기 힘들면 다시 태어나시라

약속하기 어려우나
삶이 다 기적이므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막 끝까지 배웅하는 해바라기

---「다시 해바라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막처럼 끝없고 지옥처럼 끓어오르는 생,
그러나 “풀잎은 노래한다”


혁명이 아니면 사치였던 청춘
뱃가죽에 불붙도록 식솔과 기어온 생
돌아갈 곳 없어도 가고 싶은 데가 많아서
안 가본 데는 있어도 못 가본 덴 없었으나

독사 대가리 세워서 밀려오는 모래 쓰나미여,
바다는 또 어느 물 위에 떠 있는 것인가
듣도 보도 못 한 물결이 옛 기슭을 기어오르고
두 눈은 침침해지고 뵈는 건 없는데

온다는 보장 없이 떠나는 건 나의 몫
신마저 버린 땅은 없으므로 풀잎은 노래한다
온몸을 떨었어도 그대 오지 않았듯이
더듬어 돌아올 길이 멀어지는 게 두려울 뿐.
- 「그대는 오지 않고」 부분

김중식의 시 세계에서 ‘사막’은 ‘생의 유비’로서 꾸준히 활용되었다. 첫 시집에서 사막 같은 삶의 고행에서 이탈하여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욕망이 컸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이런 지옥 같은 생을 ‘그래도’ 살아나가보고자 하는 의지가 더 돋보인다. 인용된 시에서 보듯 여전히 날카로운 감각으로 세계를 인지하지만, “독사 대가리 세워서 밀려오는 모래 쓰나미”에서도 “신마저 버린 땅은 없으므로”, 떠나고 또 성장해서 돌아올 날을 가늠해본다. “지상에 세운 천국은/팝업 그림책으로 벌떡 일어서는 병풍 지옥도”(「1394 is 주체」)처럼 자유를 억압하고 인위적인 천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힘을 풍자하면서도, “세상이 아니라 사는 게 더러운 것”(「때수건이 열리는 물오리나무」)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고래, 태평양을 건너는 낙타
기적 같은 삶을 위한 미래 비전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진다
우는 이유를 잊을 때까지 우는 여자여
우리는 가끔씩 울어야 한다
우주가 좁도록 세포분열하는 아메바처럼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데 한가득 헤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맞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 「물결무늬 사막」 부분

사막과 바다는 가장 대조적인 공간이지만 시인은 오늘도 사막에서 바다의 물결을 본다. 그가 불모의 세계에서 생명의 힘을 보는 이유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서로 떨어져 있어 영원히 만나볼 수 없을 것 같은 존재들도 서로 교감이 가능한 만남, 각기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이 화합할 수 있는 대긍정의 세계를 꿈꾸며 좀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시인의 자세가 시편들마다 도드라진다. 이 시집의 해설을 맡은 시인 차창룡은 위의 시를 「시인의 말」 말미의 “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와 연결해 읽어내며 “쓸데없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지옥은 지하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사랑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사랑의 왕국은 사실상 우리가 지옥이라고 생각했던 ‘지금 이곳’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는다. 25년 만에 돌아온 그가 마음 놓고 숨 쉬는 것마저 어려운 오늘의 지옥에 내놓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희망’은 결국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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