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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망설임 2. 역사와 지구 3. 생물학과 역사 4. 종족과 역사 5. 성격과 역사 6. 도덕과 역사 7. 종교와 역사 8. 경제와 역사 9. 사회주의와 역사 10. 통치 형태와 역사 11. 역사와 전쟁 12. 성장과 쇠퇴 13. 진보는 실재하는가? 참고문헌 미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
Will D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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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풍성하게 번식하지 않는 생명체, 변종, 그룹을 쓰지 않는다. 자연은 품질의 선택을 위해 필수조건인 양(量)을 열정적으로 지향한다. 대규모 난장판을 좋아하며, 소수 생존자를 가려줄 투쟁을 즐긴다. 그러므로 난자 하나를 수정시키려고 수많은 정자들이 맹렬히 거슬러 오르는 경쟁을 자연은 흐뭇하게 바라본다. 개체보다는 종(種)에 더 관심이 많으며, 문명과 야만을 별로 구분하지 않는다. (...) 자연은(여기서 자연이란 출생, 변종, 경쟁, 선택, 생존 등의 과정을 뜻한다) 출산율 낮은 민족이 주기적으로, 더 힘차고 번식력 강한 그룹에 의해 밀려나게 만든다.
---「생물학과 역사」중에서 ‘종족적’ 혐오감은 어느 정도 종족적 기원에 뿌리를 두지만, 주로 습득한 문화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즉 언어, 의상, 습관, 도덕, 종교 등의 차이에서 생긴다. 더 폭넓은 교육 말고는 이런 혐오감에 대한 치료제는 달리 없다. 역사의 지식은 아마도 우리에게, 문명이란 협동의 산물이며, 거의 모든 [종족의] 사람들이 거기 일조했다는 것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공통으로 물려받은 유산이자 우리가 조상에게서 받은 부채이기도 하다. 문명화된 사람이란, 상대의 지위가 아무리 낮더라도 모든 남녀를 이렇듯 창조적이고도 도움이 되는 그룹들 하나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대우하는 태도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종족과 역사」중에서 아마도 모든 악덕은 옛날 한때는 미덕이었을 것이다. 즉 개체, 가족, 또는 그룹의 생존을 위한 자질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죄는 인간 몰락의 상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류가 일어서던 시절의 유물인 것 같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시대의 도덕적 해이가, (...) 붕괴의 예고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도덕과 역사」중에서 종교는 (나폴레옹의 말을 빌자면)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죽이는 것을 막아주었다. 인간의 자연적인 불평등은 우리 중 많은 이에게 빈곤과 패배의 운명을 예비하는데, 초자연적인 희망이 절망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 희망을 파괴하면 계급투쟁이 더욱 심해진다. 천국[종교]과 유토피아[공산주의의 이상]는 한 우물에 매달린 두 양동이다. 하나가 아래로 내려가면 다른 하나가 올라온다. 종교가 쇠퇴하면 공산주의가 성장한다. (...) 세상에 빈곤이 남아 있는 한, 신들도 존재할 것이다. ---「종교와 역사」중에서 과거의 경험은, 어떤 경제 체제든 결국은 개인과 그룹의 생산성을 자극하기 위해 이윤 동기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 없이 보여준다. 노예제도, 경찰의 감시,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광 등, 이윤 동기를 대체하는 것들은 너무 생산성이 낮거나, 비용이 크거나, 오래 지속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보통 일반적으로 인간은 각자의 생산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 파괴 능력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는 전쟁을 제외하고는 그렇다. 실천적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거의 모든 사회에서 그런 능력 대부분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된다. 부의 집중은 능력의 집중이 만들어내는 자연적인 결과고, 역사에서도 정기적으로 되풀이 나타난다. ---「경제와 역사」중에서 가난한 시민들은 의회의 통제권을 장악하고, 부자의 돈을 국가의 금고로 넣는 법안에 투표했다. 정부의 사업과 지원을 통해, 그 돈을 사람들에게 재분배하기 위해서였다. 정치가들은 새로운 공공 세수의 원천을 찾아내느라 온갖 머리를 굴렸다. (...)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부자 가문들은 평민의 반란에 맞서 서로 돕기 위해 비밀리에 연합했다. 중산층도 부자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가 권력을 잡은 시기심이라 여기고 못 믿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부의 차이를 만드는 불평등 탓에 무효가 된 표들로 이루어진 가짜 평등이라며 못 믿었다. 점점 더 극심해지는 계급 전쟁이 내부에서나 국제적으로도 그리스를 둘로 갈라놓아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이 기원전 338년에 그리스를 침략했을 때, 그리스의 많은 부자들은 그게 차라리 혁명보다 낫다며 적이 쳐들어온 것을 환영했다. 마케도니아의 독재 아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사라졌다. ---「통치 형태와 역사」중에서 전쟁은 역사에서 상수의 하나로서 문명이나 민주주의가 나타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기록된 역사의 기간인 지난 3,421년 동안에 오직 268년만 전쟁이 없었다. 우리는 전쟁을 인간 종족에게 있는 경쟁과 자연선택의 궁극적인 형태로 여겨 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싸움은 모든 것의 아버지”(Polemos pater panton)라고 말했다. 곧 전쟁이나 경쟁이 모든 것의 아버지이며, 아이디어, 혁신, 기구, 국가의 유능한 원천이라는 뜻이다. 평화는 오로지 널리 인정된 최고 권력 혹은 대등한 권력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불안정한 균형 상태다. ---「역사와 전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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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 인류 문명사의 정수를 응축한 통찰
시대를 넘어 전 세계의 리더들이 권하는 고전 역사의 첫 번째 가르침은 ‘겸손’ 듀런트 부부가 가장 먼저 꼽는 역사의 가르침은 ‘겸손’이다. 우주의 장구하고 광대한 시공간 속에서 인류의 역사는 작은 행성 위 잠시 스치는 흔적에 불과하다. 인간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의 거대한 질서 안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다. 인간의 본성은 지질학적 시간에 걸쳐 느리게 변하기에, 수천 년 정도의 역사 속에서 인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욕망과 두려움, 경쟁과 협력처럼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비슷하게 작용하면서 역사의 장면들도 되풀이된다. 그러나 미래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이성의 역할이 커지고, 본능과 관습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 저자들은 “오로지 바보만이 1만 년을 억지로 100여 페이지짜리 위험한 결론 안에 욱여넣으려 할 테지만, 어쨌든 우리는 나아간다.”라는 신중한 태도로 서두를 연다.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도,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허함일지도 모른다. 삶은 끊임없는 ‘경쟁’과 ‘선별’의 과정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타고난 것, 문명의 복잡성으로 더욱 커진다 저자들은 인간의 삶이 생물학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생명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한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로 먹이와 짝, 권력을 둘러싼 경쟁을 계속한다. 협동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자 방식이다. 개인과 집단은 욕심과 호전성, 당파심과 자부심 같은 본성을 공유한다. 이러한 집단이 모여 확대된 모습이 국가다. 자연은 진화와 선택의 과정에서 다양한 개체를 만들어내기에, 인간 역시 처음부터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원리다.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차이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크게 드러난다. 특히 노동이 전문화되고 사회의 기능이 세분화되면서 개인이 사회에서 갖는 역할과 가치, 그에 따른 보상에도 차이가 생긴다. 불평등은 인간이 타고난 차이에서 비롯될 뿐 아니라,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욱 커진다. 인구는 문명을 유지하는 힘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한 문명은 사라진다 인구와 출산은 문명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다. 번영의 정점에 도달한 문명에서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인구를 지속해서 유지하지 못하는 문명은 사회를 지탱할 기반 자체가 장기적으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고대 로마의 사례를 비롯해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한 문명이 어떻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로마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출산율 저하를 우려해 다자녀 가정에 파격적인 장려금을 지급하는 등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로 인구 감소의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고, 훗날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관찰하며 얻은 듀런트 부부의 통찰은, 출산율 감소가 심각한 사회적 과제가 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모든 경제사는 사회 유기체의 광대한 들숨과 날숨 피할 수 없는 ‘부의 집중’과 ‘강제적 재분배’의 반복 경제적 해석은 역사를 깊이 비추어준다. 그리스 사람들이 다르다넬스 해협의 상업 통제권을 노리지 않았다면, 아가멤논이나 오디세우스 같은 이름은 우리 귀에 들리지 못했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야심 때문”이었다. 섬세한 그리스 사람들은 경제라는 벌거벗은 진실을 서사시라는 무화과 잎으로 가릴 줄 알았다. 경제의 역사는 부가 집중되었다가 다시 재분배되는 거대한 순환이다. 실천적 능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부의 양극화를 피할 수 없지만, 그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빈곤한 다수의 수적 우위가 소수의 부가 지닌 힘에 맞서는 지점에 이른다. 결국 부를 재분배하는 혁명·폭동·내전이 일어나고, 다시 부의 축적이 시작된다. 이 책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순환을 살펴본다. 아테네를 혁명에서 구원한 솔론의 개혁은 오늘날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건한 세력들이 귀족 출신 사업가인 솔론을 최고 권력의 자리인 아르콘에 당선되도록 밀어주었다. 그는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고, 그로써 모든 채무자의 짐을 (그 자신은 채권자였는데도) 덜어주었다. 모든 개인 부채를 줄여주고, 채무자를 투옥하는 제도를 없애고, 세금과 대출금 이자의 연체료를 없애주었다. 그리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12배까지 되도록 누진적인 소득세를 도입했다. 그리고 더 대중적인 기반에 맞게 법원을 개혁했다. 전쟁에서 아테네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사람의 아들들을 국가의 경비로 양육하고 교육했다. 부자들은 그의 이런 조치가 명백한 재산 몰수라고 항의하고, 과격파는 그가 토지를 재분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자 거의 모든 사람이 그의 개혁이 아테네를 혁명에서 구원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88~89쪽)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역시 역사적 순환의 일부다. 마르크스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여러 나라에서는 자유의 원칙에 맞서는 흐름이 반복되어왔다. 기원전 수메르를 비롯해 이집트, 로마, 고대 중국, 잉카 등 여러 문명에서 사회주의적 실험이 시도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통제는 관료주의와 부패, 생산 의욕의 저하라는 한계에 부딪혔고, 반대로 자유방임은 부의 집중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재분배와 복지를, 사회주의는 자유와 경쟁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듀런트 부부는 이를 헤겔의 변증법(정-반-합)에 빗대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두 체제의 ‘합’으로 귀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광범위한 지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자칫 잘못하면 독재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교육과 기회의 평등 민주주의가 항구적이거나 완벽한 통치 형태는 아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건 군주정(왕정)이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의 평화’라 불리는 5현제의 시대를 인간이 가장 행복하고 번영을 누린 시기로 평가했다. 귀족정 역시 예술적 취향과 문화를 고양했다는 점에서 문명사에 일정한 공헌을 남겼다. 듀런트 부부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을 중심으로, 플라톤이 말한 ‘군주정-귀족정-민주정-독재’라는 통치 형태가 역사에서 어떻게 순환해왔는지 설명한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를 여러 통치 형태 가운데 장점이 가장 많고 해가 가장 적은 제도로 평가한다. 다만 민주주의는 주권을 가진 시민에게 높은 수준의 지성과 판단력을 요구한다. 계층 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정치적 논쟁이 증오로 변하며,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될 때 민주주의는 흔들린다. 매혹적인 구호로 모두에게 안전을 약속할 줄 아는 누구에게든 독재로 이르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통치 형태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다. 가장 광범위한 지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권을 갖게 되면 자신을 지적으로 만들기를 잊어버린다.” (128쪽)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조건으로 교육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한다. 인간이 능력에서 평등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기르고 시험해볼 기회만큼은 사회가 가능한 한 평등하게 제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이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전쟁은 역사에서 상수 국제 사회의 상호 불가침과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듀런트 부부는 기록된 역사 3,421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불과 268년뿐이라는 말로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명이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등장했다고 해서 전쟁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쟁은 역사에서 상수(常數)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보호를 받기에 전쟁의 불가피성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국가를 보호해줄 초국가가 없는 한 국가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다. 집단 간 경쟁의 가장 궁극적인 형식이야말로 전쟁인 것이다. 저자들은 이 문제를 냉전 시대 미국의 강경파 장군과 철학자 사이의 가상 논쟁을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국가 간 상호 불가침과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이상이 과연 인간의 본성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묻고 답한다. 냉전은 끝났지만, 전쟁의 기운이 세계 곳곳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오늘날, 이 오래된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지도자들이 변화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회는 쇠퇴 어떤 국가도 영원할 수는 없다 문명은 성장과 번영을 거듭하지만, 변화하는 환경과 내부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순간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가뭄과 토양의 황폐, 무역로의 변화, 과도한 세금, 부의 양극화로 인한 계급 갈등 등 문명을 위협하는 도전은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문명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도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한 그룹이나 문명이 쇠퇴한다면, 이것은 공동체적 생명의 신비로운 한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지적 지도자들이 변화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153쪽) 그렇다고 문명의 쇠퇴를 반드시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영원히 지속되는 개인도, 국가도 없다. 문명의 쇠퇴가 곧 그 문명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리스 문명이 로마를 거쳐 서유럽과 아메리카로 이어졌듯, 어떤 문명은 훗날 더 큰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인류 문명이 성장과 쇠퇴를 그저 ‘반복’하기만 한다면 과연 ‘진보’란 실재할까? 듀런트 부부는 진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의 유산을 물려받고 그 위에 새로운 유산을 더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역사는 분명히 진보한다. 국가와 문명은 사라지더라도,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기술, 예술과 사상은 다음 문명으로 건너가며 더욱 풍부해진다. 우리가 받은 문명의 유산을 가능한 한 많이 모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지속되는 삶’이며 바로 진보다. 20세기 미국인으로서 듀런트 부부는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며, 역사를 지나치게 생물학적·순환론적으로 설명하는 등 오늘날의 시선에서 다시 살펴볼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듀런트 부부의 한계를 발견하고 비판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역사 속에서 지식과 관점이 축적되며 진보해왔다는 증거다. 우리는 저자들의 유산 위에서 더 풍부해진 지식과 관점으로 역사를 다시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은 시대를 넘어 문명의 유산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