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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 슬픈데 키가 큰다 비례와 반비례 | 피어싱 | 실뜨기를 하다가|지금 네가 할 일 | 헐 섬 | 얼른 해 버리자 나에게 전화해 | 헤테로토피아 | 행성에 가는 법 |프로와 아마추어 | 우주 하나가 떨어진 곳 | 태양의 탄생 |풍선과 풍선 | 앵무새의 말 | 그림자 반죽 2부 아주 아주 작은 문을 열면 누구나 펭귄 | 개망초가 피었다 | 마그네틱 |우리가 속삭인 것들 | 잔소리 | 비교리즘적 오늘 | 짝 48 | 역할에 대해 | 가능성이란 단어가 기역으로 시작하는 건 | 파랑 | 칭찬 아래 | 사랑의 이유 | 그냥의 美 3부 최선의 바퀴를 살고 있다 나무 한 그루가 있어 | 불빛 | T를 향해 | 페르소나 | 증후군 | 종이 우산 | 눈부신 주황 | 희망 고문 | 릴케와 너 | 우리 밴드 할래? | 결승선 | 염색 | 레몬탕후루 | 부풀어 오르는 것들 | 괜찮아요 난 | 지금 내 기분은 밀리지 않는 포도 같아 4부 뒤구르기를 잘하는 고양이의 밤 밤의 레시피 | 바람을 찾으러 | 훨훨 | 아브젝시옹의 말 | 거울 | 의미 있음의 의미 | 보라별 | 꽃의 질서 | 사이의 시간 | 돼 | 돌고래를 떠올리다 | 물밀듯이 5부 새와 코끼리의 시간 일어나 |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어 | 말이 되지 못한 말 | 질문 하나 | 꿈을 꿨어 | 주스와 상장 | 0을 찾아서 | 그림자 놀이 | 생일 | 딤섬 | 코끼리 구름 | 비밀이 내린다 | 보라의 길 | 나무와 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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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 내라고 말하지 않는 시
우리는 슬픔 앞에서 쉽게 “괜찮아질 거야”, “힘내”, “이겨 내야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슬픈 사람에게 그런 말은 때로 너무 빨리 도착한 위로가 된다. 『말이 되지 못한 말』은 조금 다르다. 유하정 시인은 슬픔을 밀어내거나 극복해야 할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지금 네가 할 일〉에서는 슬픔 역시 처음 걷는 길처럼 어설프고 두렵고 힘들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슬플 때는 그 감정을 충분히 겪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한다. 슬픔에서 서둘러 빠져나오게 하는 대신 그 곁에 가만히 머물러 주는 것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감정에는 정답도, 정해진 순서도 없다. 슬픔 뒤에 반드시 기쁨이 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슬픔은 슬픔대로,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저마다 존재할 이유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바라보고 다독이는 과정 자체가 성장이라고 이 시집은 말한다. 탕후루부터 인공지능까지, 지금 청소년의 언어로 쓴 시 이 시집의 특별함은 깊은 감정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무겁고 관념적인 언어 안에 가두지 않는 데 있다. 탕후루, 편의점, 시험, 기타, 운동화, 인공지능처럼 청소년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시의 소재가 된다. 〈파랑〉에서는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색을 통해 그리움과 사랑을 겹쳐 보여 주고, 〈사랑의 이유〉에서는 사랑과 멸종이라는 엉뚱한 연결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종이 우산〉에서는 편의점의 반숙 달걀과 초코 우유, 흰 운동화에 묻은 운동장 진흙 자국 같은 평범한 하루가 슬픔을 견디며 살아온 시간의 흔적으로 바뀐다. 익숙한 사물에서 낯선 의미를 발견하고, 무거운 감정 사이에 엉뚱한 상상과 언어 유희를 끼워 넣는 시인의 감각 덕분에 시는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 청소년에게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시가 낯선 청소년에게는 ‘시가 이렇게 내 이야기와 가까울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건넨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지금’의 나를 바라보다 청소년기는 흔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시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시집은 청소년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브젝시옹의 말〉에서 시인은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를 어디엔가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바로 그 ‘지금’을 온전히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본다. 비교와 기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잃어 보고, 혼자이고 싶다가도 누군가의 곁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이 시집은 청소년의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 과정에서 슬픔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종이 우산〉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며 단단함이 되고, 〈희망 고문〉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도 이전과 다른 삶을 꿈꾸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말할 수 없는 마음에도 말은 자란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너무 아플 때, 마음속에 있는 것이 너무 복잡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정확한 말로 옮기지 못한다. 표제작 〈말이 되지 못한 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시인은 어떤 아픔은 단어 하나로 붙잡을 수 없으며, 아무리 많은 말을 쌓아도 끝내 닿지 못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의 시들은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오래 바라본다. 끊어진 곳이 다시 이어지는 곳이 되고,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발견처럼, 상실의 자리에서도 삶은 조금씩 다음으로 움직인다. 『말이 되지 못한 말』은 청소년에게 쉽게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충분히 건너가 보자고 말한다. 슬픔을 없애 주는 시가 아니라 슬픔 곁에 머물러 주는 시.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이 언젠가 다시 자신의 언어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시. 그 기다림 끝에서 독자는 슬픔을 지우는 법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자라며 그다음을 꿈꾸는 힘을 만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