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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들에게 _ 6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_ 17 옮긴이의 말 _ 466 |
Bryan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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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세상은 작았다. 하지만, 스테판은 그걸로 만족했다. 지금까지도 가끔, 그녀는 의구심을 품는다. 그 세상이 결국 오빠에게 충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 세상으로 충분했던 건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모든 게 지금과는 달랐을까?
---p.119 “그래서 너는 여기 남고 싶은 거야? 여기에서 살아가려고? 어떤 삶일지 뻔히 알면서.” “뭐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이것만은 알아. 넌 지루한 삶을 살 거고, 그건 죽음보다도 끔찍할 거야.” ---p.162 아들은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가 전철에 올라타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떨며 가만히 서 있었다. 파티를 즐기고 귀가하는 사람, 눈에 졸음이 그득한 학생들, 술에 취한 직장인들이 그의 곁을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문득 아들은 예전에 자신이 전철에서 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현지인다운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p.230 “바쇼가 쓴 시가 있어요. 저물녘에 울리는 종소리에 관한 시예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소리가 우리를 다음 날로 이끌고 간다는 그런 시요?” 벤이 물었다. “그 시는 아니에요. 이 하늘은 아무도 이끌고 가지 않아요. 종소리를 들을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과 함께 있는 동시에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오래전에 그 시를 읽었어요. 자메이카에 있을 때 교과서에서요.” “어떻게 자메이카 교과서에 바쇼의 시가 실릴 수 있죠?” “나도 몰라요. 아마도 우연이었겠죠.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하지만 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인지, 바쇼가 묘사한 이곳의 석양이 정말 그런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p.246 오후의 눈부신 햇빛은 점점 진홍빛으로 저물어 갔다. 마침내, 아무 말 없이, 그들은 걷고 있던 골목의 끝에 도착했다. 아들은 발걸음을 돌렸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무언가의 결말에, 혹은 시작에, 혹은 중간쯤 어딘가에 도달한 듯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했다면 두 사람 다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느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p.322 녹음된 안내 방송이 머리 위에서 웅웅거리며 흘러나왔다. 지진 현장의 역무원들이 각자 지정된 위치에서 무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들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이 순간, 그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은 진정 자신의 삶을 이토록 미약하게만 통제할 수 있을 뿐이었다. ---p.388 “우리는 서로를 위해 모인 거야. 우리가 가진 건 서로뿐이야. 나, 너,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 우린 지금 여기 있지만, 언젠가는 뿔뿔이 흩어지겠지. 그래도 서로를 위해 여기 있어 줄 수 있잖아.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야.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을 구할 필요는 없잖아, 그렇지? 그냥 자신을 잘 지키고 다른 사람들 곁에 있어 주는 것. 그게 좋은 인생이야.” ---p.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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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도쿄가 나의 집인지 모르겠어.”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되는 사랑과 용서 머물고 떠나는 대도시의 삶, 그곳에서 마주한 또 다른 가족 지구 반대편에서 아들을 만나러 도쿄로 온 어머니.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이미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멀어진 상태다. 그들은 십여 년의 세월을 건너, 도쿄에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도쿄에서 영어 과외를 하며 지내고 있다. 그는 매주 퀴어 바를 드나들며 그곳에서 만난 요란한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 각자의 이유로 도쿄에 찾아온 이들과 마음을 나누며, 도시 속에서 자신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간다. 그러던 와중 깊은 인연이 된 바 '프렌들리'에서 새로이 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어머니는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 도쿄에 머물며 아들을 지켜본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비스트로의 주인과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 그와 함께 도쿄를 거닐고 오빠 스테판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어머니는 차츰 이 도시가 아들의 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미듯 서로를 용서하고,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말할 수 없는 침묵을 말하다 삶의 아름다움을 세게 움켜쥐는 이야기 작품의 첫머리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위태로운 전화를 받고 도쿄로 날아오지만, 오래전에 집을 떠나온 아들은 어머니를 반기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은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침묵의 리듬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쉬이 화해할 수 없는 모자 관계는 이 소설의 전체를 하나로 묶는 뿌리다. 하지만 도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머니와 아들은 또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각자 성장을 이룬다. 어머니는 오빠와의 기억, 아들은 형과의 기억을 회상하며 대도시의 무수하고 희미한 인연들 속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워 간다. 이 소설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고유명사처럼 사용된다. 브라이언 워싱턴은 두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인물 안에 더 많은 것을 담는다. 그리하여 감정의 골이 깊은 두 사람의 모습은 세상 모든 어긋난 관계의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중후반, 교토로 짧은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은 거센 말다툼을 벌인 뒤 조용히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해 질 녘 아무 말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그들은 “무언가의 결말, 혹은 시작, 혹은 중간쯤 어딘가”에 다다랐다고 느낀다. 이처럼 이 소설에는 평범하지만 잊을 수 없는,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류가 흐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무언가가 변했음을 깨닫게 되는, 삶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이다. 관계의 리듬이 깨지고, 온 세상이 의미심장한 침묵을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따뜻하고 유쾌하고 보잘것없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언어가 되살아난다.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이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두 사람은 우연히 머물게 된 도쿄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브라이언 워싱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감정의 기류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느리고 정확한 손길로 쉬이 형언할 수 없는 관계의 침묵을 움켜쥔다. 이어서 불필요한 서술을 비워 낸 여백 안으로 독자들을 단숨에 끌어들인다. 하나둘 떠나가는 대도시에서 우리의 모든 운명을 환대하는 요란한 파티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 책이 뛰어난 퀴어 소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소설의 주요 배경은 도쿄 신주쿠 일대로, 퀴어 바가 즐비한 지역이다. 아들은 도쿄로 떠나온 초기, 밤이면 밤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사람들의 품에 몸을 맡겼다. 누군가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친밀한 온기. 그 품을 찾아 헤매는 일은 도무지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 머물 자리를 만들기 위한 아들의 발버둥이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고유한 삶을 살아왔을 것임을 짐작한다. 실제로 아들의 주변에는 가지각색의 나라에서 떠나와 각자의 이유로 도쿄에서 머무는 이들이 가득하다. 머물수록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메트로폴리스 도쿄. 그 도시에 온 마음을 다하면서도 아들과 친구들은 도쿄가 자신이 집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이 순간 곁에 있는 이들과 밤을 보내며 요란한 파티를 벌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서울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의 운명을 껴안은 거대 도시.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하다가도 “각자 그 인생의 파도에 올라탈 때”가 되면 전혀 다른 삶으로 뛰어든다.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이 책에서 작가 브라이언 워싱턴은 퀴어들이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해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끊임없는 선택과 변화 속에서, 우리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은 이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내어놓는다. 가장 작고도 어려운 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저 서로의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모든 존재를 환대하며 앉을 자리를 내어 주는 바 ‘프렌들리’의 작고 요란한 파티처럼도 읽힌다. 집에서 가장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집 종내 집이라는 주제에 다다른다. 오랜 세월 끝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다시 휴스턴의 본가로 그를 데려가고자 한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이미 도쿄에서 맺은 새로운 인연들이 존재한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미국을 떠나온 그는, 낯선 땅에서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며 자신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온기를 찾아낸다. 이 소설에서 집은 피로 이어진 가족과, 세상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가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품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아들은 본래의 가족들과 다시금 마주 보게 된다. 동시에 도쿄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아주 익숙하고 친밀한 온기를 느낀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 가는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진정한 집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도쿄를 집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지 망설이는 아들에게 다쿠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이 말처럼 집은 결심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정착이라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는 동시대, 우리는 어디에서든 아주 짧게 머무를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다. 백화점에서 나누는 어머니와 점원의 대화처럼, 그저 주어진 것을 가슴에 안은 채 새로이 얻은 것을 가지고 떠나면 된다. 우연으로 시작되어 운명이 되는 곳, 새로운 삶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