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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심사평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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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모든 일이 지텍에서 열렸던 지난 제1회 엑스포 직후에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때 프라임의 최후를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죽음의 증거도 확보했죠.
--- p.12 “저건 영화야.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영화지. 난 저 영화를 본 적이 있어.” 그가 화면을 돌아보며 말한다. 이어 강림 전의 영화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화질과 음질을 선명하게 개선했다며, 이것이 인류의 문화를 복원하는 큰 한 걸음이 될 거라는 설명이 나온다. “너도 좋아할 거야. 지텍에 가면 저 영화를 보자꾸나.” --- p.65 차는 폐허로 변한 도시를 지나간다. 건물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다. 도시에 들어설 때는 한 방향으로, 도시에서 멀어질 때는 반대 방향으로. “빌어먹을 프라임 새끼.” --- p.71 “프라임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제게 세계는 혼돈과 무의미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강림은 사악한 횡포나 우연한 재난이 아니라 예정된 시련이었다는 것을요. 그분은 강림 이후에 더 큰 시련을 헤쳐 나갈 당신의 자식들을 선별하셨던 거예요. --- p.90 “왜 프라임은 인간의 1퍼센트를 살려뒀을까요?” “힘에 부쳐서 그랬겠지. 갈수록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지니까.” --- p.132 너를 위해 이 기록을 남겨둔다. 네게 모든 것을 말하고 싶다. 나에 대해, 내가 한 일들에 대해. 선택과 이유에 대해. --- p.171 어쩌면 나의 행동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알려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p.182 지텍의 거리 어디에나 엑스포를 선전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나는 이제 포스터에 쓰인 글자를 읽을 수 있다. 만들어가는 미래. 살아 있는 역사. ---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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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최진영, 박준 추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재앙으로 인류의 99%가 사라진 세계 서로의 가족이 되어가는 소녀와 한 남자 다산책방에서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에케 호모』가 출간되었다. 인류의99%가 사라진 세계.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소녀와 그녀를 돌보는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폐허를 가로지른다. 혼불문학상 최초의 SF 수상작 『에케 호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재미 위에 사랑과 인간성, 문명의 의미를 묵직하게 쌓아 올린 작품이다. 중앙장편문학상으로 등단한 오수완 소설가는 세계문학상에 이어 혼불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성을 거듭 인정받았다. “너는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혼불문학상 최초 SF 수상작 재앙 이후의 세계를 달리는 아름답고 서늘한 로드무비 어느 날, 붉은 몸을 지닌 전지자 프라임이 나타난다. 그가 손뼉을 치는 순간 ‘강림’이라 불리는 재앙이 시작되고,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진다. 도시는 무너지고 문명은 정지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낡은 기계를 고쳐가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재앙 이후 30년. 말을 하지 않는 소녀 서브는 보호자인 중년 남자 노먼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다. 목적지는 인류 재건의 희망, 엑스포가 열리는 도시 지텍이다. 길 위에서 노먼은 서브에게 물을 구하는 법, 기계를 고치는 법, 그리고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여정은 순탄치 않다. 자전거는 자주 고장 난다. 법과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노먼은 수리공으로 일하며 간신히 돈을 벌고, 그사이 홀로 남는 어린아이에게 위험이 닥치곤 한다. 노먼은 계속해서 서브를 구해내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도시가 커질수록 그의 손길이 미처 서브에게 닿지 못할 때도 있다. 여행에서 그들은 프라임교를 믿는 종교 공동체의 마을로 들어선다. 이들은 강림을 주도한 ‘붉은 몸의 전지자 프라임’을 신의 두 번째 아들로 믿는다. 그들에게 강림은 인간에게 주어진 경고이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포문이었다. 그들의 믿음이 노먼과 서브는 달갑지 않다. 팔을 벌린 프라임의 형상에 절하는 사람들을 보며 노먼은 말을 아낀다. 소설의 제목인 ‘에케 호모’는 성서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사람을 보라”라고 번역되며, 가짜 왕의 옷을 입고 가시관을 쓴 채 선 예수를 가리키는 대중의 조롱이 담겼다. 소설은 단독자로서, 또한 비난받는 자로서 홀로 선 존재의 모습을 이 세계의 중심인물에게 겹쳐 놓는다. 또한 니체는 동명의 저서를 통해 인간에 관해 질문했다. 절대적인 진리와 보편적 도덕을 넘어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을 조명한 것이다. 노먼은 작품 내내 ‘인간성’을 가르치려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등장하며, 그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철학적·윤리적 딜레마가 이야기 전체에 스며든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악인가. 모두를 위한 윤리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충돌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는 서브와 노먼의 여정,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흡인력과 깊이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타락한 문명 세계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케 호모』는 가족이 되어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재앙 이후의 생존을 통해 묻는다. 그들은 세상의 보편적 가치에 고개를 돌렸다. 서브에게 책을 사주려는 노먼에게 가게의 여자는 말한다. “남자의 일은 길을 닦고 집을 지어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것, 여자의 일은 애를 낳고 길러 인류를 다시 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 삶이 “인류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책 따위는 필요 없다고. 그러나 노먼은 서브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고, 책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사라진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서브에게. 한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길 위에서 서브는 생존 기술 그 이상을 배운다. 책을 읽는 법,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 누군가를 돕는 마음, 그리고 사라진 문명의 기억을 지키는 일까지. 여정이 이어질수록 서브와 노먼은 희생과 구원, 믿음과 폭력, 사랑과 책임이라는 질문 앞에 더 깊이 서게 된다. 그들은 왜 수동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떠났을까? 노먼은 서브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엑스포가 수없이 광고하는 인류의 발전이나 재건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나,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만큼은 너도 볼 만할 것이라고. 그들은 결국 지텍에 도착하고, 영화관에 앉아 관람을 시작하지만, 너무나 비싼 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로 되살아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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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구도에서 구약 속 분노와 파괴의 신, 그리고 신약 속 구원을 상징하는 인간적인 메시아의 존재를 연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철학적 논제에 대답을 찾아가는 구성 역시 묵시록의 분위기를 풍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무겁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목적지까지의 여정이 흥미롭게 전개되며, 간명하고 세련된 문장에다 생각의 여백이 많은 소설이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과 문명의 폭력성을 그리고 있지만 휴머니즘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의 구원이 사랑에 있다는 메시지는 다소 진부할 수 있지만 적절한 설득력을 가질 때 잔잔한위로를 준다. -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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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더없이 다정하고 더없이 비정하구나. 소설은 경전의 큰 말씀 같은 이 모순을 이해해 가는 수고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에케 호모』는 이인(異人)의 탄생 서사이다. 독자는 전혀 새로운 생물종인 인류를 가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 서사가 이인의 시선으로 쓰이고 있다는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의 새로움은 이 시선의 구상에 있다. 사피엔스 문명에 대한 유구한 질문을 새로이 되돌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구가하는 일상이 갈증처럼 그리워진다. 요리하고 먹고, 듣고 보고, 책장을 갖는, 그리고 사랑하는 일상이 사라진다는 게 인류의 대멸종보다 훨씬 절박하게 다가온다.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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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 편의 시 같다. 문장은 짧고 단정하며, 장면은 반복되고, 같은 말과 행동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 반복과 변주가 이 소설만의 이상한 운율을 만들었다. 목소리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인간을 바라보는 비인간의 목소리, 아직 오지 않은 ‘너’를 향해 건네는 노먼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노먼을 되돌아보는 ‘나’의 목소리가 서로 겹치고 어긋나면서 처음과 끝을 길쭉한 원처럼 이어놓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지나온 것들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알 수 없었던 말이 뒤에 가서 다른 뜻을 얻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행동 하나가 마지막에 이르러 전혀 다른 표정을 갖는다. 이것은 서사의 반전이 아닌, 시의 반복과 환기에 가깝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를 위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멈춰야 하는가? 질문 역시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마침내 독자의 몫이 된다. 『에케 호모』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인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오래 되풀이하는 시다. 이 낯선 형식과 운율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제이다. 이 소설을 반복해서 보라.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 나는 이 작품을 그렇게 읽었다. -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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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워지는가. 『에케 호모』는 폐허가 된 세계를 자전거 한 대로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 이 낡은 질문을 새롭게 되묻는다. 초인의 등장으로 인류의 99퍼센트가 사라진 세계에서 한 중년 남자 노먼과 소녀 서브는 파괴된 세상을 유랑한다. 파괴자이자 구원자이며 수리공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No Man)인 ‘노먼’은 오직 눈앞의 아이를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길을 걷는다.
아포칼립스라는 익숙한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작품은 폐허 너머의 세계를 응시한다. 신성함과 폭력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무엇으로써 인간으로 남는지,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지에 답하기 위해서. 서브가 끝내 간직하려는 ‘책’은 사라진 문명의 흔적이자 한 사람을 기억하는 행위이며,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인간에게 남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그리하여 폐허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어느새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로 묵직하게 넓어진다. - 편혜영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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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는 디스토피아적 서사의 새로운 모델이다. 암울하고 부정한 현실의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 충고가 이 소설의 모티프이며 인간이 한계적 상황에서도 지켜내야 할 휴머니티에 대한 상고가 이 소설의 주제적 산물이다. 뛰어난 가독성과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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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는 읽을수록 근원적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귀하고 뜻깊은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내게 남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지속하고 멈추어야 하는가. 종말은 과연 비극인가. 선과 악의 절대 기준이 있는가. 사랑은 무엇을 얼마나 가능하게 하는가. 작가는 최선을 다해 최소한만 서술하면서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백으로 둔다. 각자의 해답으로 그 여백을 채워달라는 듯.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고 저마다의 질문을 간직하길 바란다.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분명히 살아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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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가 읽는 이의 내면으로 되돌아온다. 여정에 함께하는 동안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또 어디로 흐르든 변하지 않을 현실의 지리멸렬과 폭력의 견고함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되뇌게 되는 질문. 인간은 왜 끊임없이 인간이고자 하는 것일까? 어떤 답을 구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분명 오답일 것이므로. 오답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눈을 씻고 그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낼 것이므로. 가까스로 찾아낸 진실 하나만을 품고 현실과 세계를 향해 새로운 물음을 던질 것이므로.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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