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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1장. 이기적 유전자의 효율적 설계: 왜 ‘나’를 지우고 ‘아이’를 세웠는가 숭고한 모성이라는 생물학적 위장: 헌신은 도덕인가, 유전자의 최적화 전략인가 편도체가 지배하는 육아: 뇌가 아이의 뒤처짐을 ‘생존 위협’으로 오독하는 이유 대리전으로서의 양육: 부모의 실패와 불안을 면책받기 위해 아이를 방패로 삼는 심리 기제 시스템의 부품이 된 부모: 자아를 삭제하고 ‘양육 기계’로서의 기능만 남은 이들의 초상 2장. 불안의 사회심리학: 우리는 불안을 ‘기준’으로 배웠다 시대가 만든 공기: 기다림이 미덕이 아닌 ‘손해’로 번역되던 무한 경쟁의 연대기 앞당겨진 미래, 휘발된 현재: ‘지금 괜찮아?’가 아닌 ‘나중에 문제 되지 않을까?’가 기본값이 된 배경 비교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공유와 점검이 안심이 아닌 ‘불안 유지 장치’가 된 과정 낙인이라는 형벌: 표준 경로에서 1cm만 벗어나도 ‘지연’이라 명명하는 사회적 조급함 선택의 각서: 자유가 아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홀로 떠안는 방식으로서의 선택 3장. 통제 가능성의 환상: 성취는 통했는데 아이 앞에서는 무너졌다 ‘관리=안전’이라는 학습된 공식: 계획과 개입이 사랑으로 오독되는 순간들 아이라는 불확실성: 통제 가능한 세계를 살아온 이들이 ‘생명’이라는 변수 앞에서 겪는 균열 개입의 루프: 불안해서 개입하고, 개입해서 잠깐 안심하고, 다시 더 큰 불안에 빠지는 악순환 효율의 함정: 아이의 성장을 ‘미래 가치’로 계산하느라 현재의 존재감을 지워 버리는 태도 4장. 존재의 부재: 빼곡한 스케줄 속에 사라진 ‘아이’라는 인격 관찰은 데이터 수집으로, 대화는 진도 체크로: 아이와 함께 있으나 정작 서로를 보지 못하는 풍경 도구화된 발달: 아이의 성장이 기쁨이 아닌, 부모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지표가 될 때의 비극 정서적 진공 상태: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영혼에는 닿지 못하는 ‘가까운 타인들’ 부재의 유전: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 아이가 다시 ‘불안한 이기주의자’로 진화하는 과정 껍데기만 남은 헌신: 시스템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나 정작 ‘사랑’이라는 실체는 증발한 상태 5장. 책임의 사유화: ‘책임지는 사람’만이 안전했던 시절의 후유증 사회적 생존 반사: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먼저 긴장 상태로 들어가는 부모들의 책임감 해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닌 정체성의 문제: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 자신이 소멸할 것 같은 공포의 실체 구조적 비극의 개인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환하는 자학적 태도 감시받는 양육자: 스스로를 검열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점검하는 심리적 감옥 6장. 새로운 시선: 양육자의 행복을 위한 실존적 해방 자기중심적 이기적 양육의 종언: 아이를 나의 확장자가 아닌, 완전히 타자화하여 바라보는 용기 불완전함을 향한 지적 공모: ‘정답 육아’의 허상을 버리고 우연과 실패를 유희로 받아들이기 양육자의 행복이라는 파격적 대안: 부모의 자율성이 아이의 회복탄력성에 미치는 과학적 근거 기다림의 재발견: 방치가 아닌 ‘책임 있는 지켜봄’으로서의 기다림이 가진 치유의 힘 다시, 인간으로: 시스템의 부품이기를 거부하고, 불완전하지만 뜨거운 사랑의 무대로 복귀하기 |
김성곤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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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이 세대가 고통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MBTI로 자신을 분류하고, 번아웃에 진단명을 붙이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심리 콘텐츠로 자가 처방한다. 불안을 개인의 성격 탓으로, 타고난 기질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틀렸다. 이건 당신 개인의 결함이 아니다. 시스템이 설계한 집단 반응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첫 번째 부품은, 놀랍게도 당신의 뇌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다. 이 불안은 아이가 태어난 날 시작된 게 아니다. 우리는 훨씬 전부터 이미 특정한 공기 속에서 자랐다. 명문대가 계급을 가르고, 스펙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대. 조금 늦으면 낙오, 잠깐 멈추면 탈락. 그 회로가 뇌에 각인된 채 우리는 부모가 됐다. 아이는 그 공포가 새로 찾아낸 출구일 뿐이다.
--- pp.14-15 「숭고한 모성이라는 생물학적 위장」 중에서 심리학에서는 이를 ‘성취 동기 외주화(outsourced achievement motivation)’라고 부른다. 아이가 자신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달리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아이 궤도에 통째로 넘길 때, 아이는 그 희생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다. 뒷바라지가 정성스러워질수록 아이는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을 대신 해소해야 하는 대리 선수가 된다. 자기 꿈이 아니라 엄마의 미완성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달리는 선수. 똑똑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8090 세대의 엄마들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유능함을 양육에서 증명하려다 아이를 대리 선수로 필드에 내모는 것이다. 다음 중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면, 지금 아이와 당신 사이에 신호가 켜진 것이다. --- pp.21-22 「숭고한 모성이라는 생물학적 위장」 중에서 그런데 아이의 뿌리를 말리는 이 연극이 멈추지 않는 이유가 있다. 부모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강력한 심리적 보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레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오거나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을 때, 엄마 마음속에서는 아이의 기쁨과 별개로 짜릿한 쾌감이 휘몰아친다. 순수하게 아이를 축하하는 마음이라기보다, 내 아바타가 승리했다는 착각이 주는 달콤한 함정이다. (중간 생략) 엄마의 유능함이 빛을 발할수록, 아이가 세상을 살아 낼 마음 에너지는 서서히 바닥나고 있었다. --- pp.45-47 「대리전으로서의 양육」 중에서 이미 타 버릴 대로 타 버린 이들에게 주말에 잠시 쉬고 오라는 식의 휴식을 권하는 건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전된 배터리에게 필요한 건 잠깐의 멈춤이 아니라, 내가 왜 내 삶의 주인이 아닌 육아 기계로 살게 됐는지를 뼈아프게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번아웃의 늪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역설적으로,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불량 부품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용기에 있다. --- p.60 「시스템의 부품이 된 부모〉 한 발짝이라도 늦는 모습에 부모가 먼저 발을 동동 구르는 순간, 아이의 몸은 생존을 위해 모든 성장 에너지를 차단하고 공포에 대응하는 방어 시스템을 가동한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창문을 모두 닫아걸듯, 아이의 몸 안에서 성장을 위한 모든 활동이 일시 중단되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의 다그침이 일상이 되면 이 빨간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습과 자제력에 쓰여야 할 에너지는 차단된 채, 혈관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쏟아지며 아이의 뇌 구조를 물리적으로 변형시킨다.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의 몸에 새기는 지워지지 않는 스트레스의 문신이다. 부모가 조급함을 내려놓고 자기 페이스를 찾는 순간, 아이 몸의 비상경보도 꺼지기 시작한다. 방어 시스템이 해제되면 차단됐던 성장 에너지가 다시 흐른다. 부모가 그토록 원했던 집중력, 스스로 하려는 힘, 그 모든 것이 사실 아이 안에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확인하게 된다. --- p.76 「시대가 만든 공기」 중에서 아이가 수학 문제 하나를 틀린다. 뇌는 0.1초 만에 시퀀스를 완성한다. 수학 기초 부족 → 내신 하락 → 입시 실패 → 취업 실패. 아이는 그냥 문제 하나 틀렸을 뿐인데, 부모의 뇌 안에서는 이미 10년 후 면접장에서 떨어지는 장면까지 재생된다. 이 오류를 수정하려고 부모는 아이를 더 강하게 통제한다. 통제할수록 불안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음 시나리오를 찾아 이동한다. --- p.88 「앞당겨진 미래, 휘발된 현재」 중에서 누구도 정답을 모르는데, 모두가 정답을 아는 척한다. 부모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과잉’이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부모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결정 마비(decision paralysis)’ 상태로 내몰린다. 이는 단순한 선택 장애가 아니다. 감당하기 힘든 방대한 데이터가 뇌의 인지 기능을 일시적으로 멈춰 세우는 심리적 과부하 상태다. 정보가 많을수록 더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다. 정보가 많을수록 뇌는 더 빨리 지친다. 이걸 정보 수집이라고 부르지 말자. 이건 불안 확인이다. ‘내가 내린 선택이 오답이 아닐까’를 밤마다 확인하는 루틴이다. 우리 세대는 사지선다 시험지에서 오답을 고르면 등급이 떨어진다는 걸 온몸으로 배웠다. 그 공포가 지금 양육판에서 그대로 재생되고 있다. (중간 생략) 기술의 변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성공의 공식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자라던 방식으로 아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SKY냐 아니냐로 인생이 갈리던 그 공식을, AGI 시대를 살아갈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게 지금 우리 양육의 가장 큰 오류다. --- pp.104-109 「비교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중에서 아이를 평균이라는 단일 기준으로 보는 대신, 이 아이만의 패턴으로 읽겠다는 부모의 의식적인 선택이다. 우리가 자라면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시선. “넌 틀린 게 아니야. 네 방식이 있는 거야.” 우리 세대 부모들이 아이에게 이 말을 건네기 어려운 건, 우리 자신도 그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건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중간 생략) AI가 모든 평균적인 일을 해내는 시대다. 그 시대에 살아남는 건 평균이 아니라 자기다움이다. 우리가 아이의 다름을 지켜 주는 것이, 사실 가장 현실적인 미래 준비다. --- p.126 「낙인이라는 형벌」 중에서 이제 막 세상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아직 지식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한 건 비판이 아니라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효능감이다. 그 감각을 맛볼 때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지식의 틀도 없는 상태에서 쏟아지는 비판은 배움의 재료가 아니라, 아직 굳지도 않은 것을 무너뜨리는 충격으로 느껴질 뿐이다.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날카로운 지적이 효과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숙련자에게 통하는 방식이 초보자에게는 역효과를 낸다. 아이는 아직 서툴다. 하나씩 배워 가는 중이다. 그 단계에서 필요한 건 교정이 아니라 격려다. --- pp.213-214 「관찰은 데이터 수집으로, 대화는 진도 체크로) 중에서 나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아이의 미래 자산을 미리 끌어다 쓰는 행위. 이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정서적 영끌 투자다. 이 투자의 가장 뼈아픈 손실은 아이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궁금해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게 만들던 그 반짝이는 호기심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 p.225 「도구화된 발달」 중에서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내면은 늘 날카롭게 곤두서 있다. 다른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에 갇힌다. 이건 예민한 성격이 아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본능이 오히려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걸 일찍 깨달은 아이가, 부모에게 방해되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 버린 결과다. --- p.241 「정서적 진공 상태」 중에서 8090 세대로 태어나 오로지 성취가 아니면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신호 속에 자라 온 우리는, 성과가 곧 생존이었던 세대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증명서 없이도 당신 자체로 이 세상에 머무를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을 향한 가혹한 잣대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때, 비로소 아이의 시행착오를 담담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의 공간이 생겨난다. 결국 아이에게 끈기를 강요하며 벌이는 이 모든 소란은, 실은 부모 자신의 부족한 자존감을 가리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에 가깝다. 아이의 문제집 첫 장에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적어 주기 전에, 우리는 먼저 밤마다 잔뜩 웅크린 채 굳어 버린 나의 몸부터 먼저 돌봐야 한다. --- p.284 「사회적 생존 반사」 중에서 내가 부족한 엄마라서 힘든 것이 아니다. 애초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게 만든 이 판이 잘못된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아이를 다그치거나 나를 탓하는 대신 아이와 나를 지키는 진짜 전략을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사회가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치환하는 방식은 교묘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정작 그 조건에 쓰러진 사람을 향해 멘탈이 약하다고 손가락질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를 몰아붙이다 상대가 무너지면 “왜 이렇게 예민해?”라고 되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 p.305 「구조적 비극의 개인화」 중에서 결국 아이의 배움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감시하느냐’가 아니라, ‘엄마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라는 믿음 위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부모를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닮고 싶고 궁금해지는 매력적인 개인으로 느낄 때 비로소 그 진심을 받아들인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고 하루를 꾸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은, 그 어떤 전집보다 강렬한 인생의 교과서가 된다. (중간 생략) 이제 우리는 육아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새로고침해야 한다. 양육은 아이라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나를 갈아 넣는 노동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내 삶을 멋지게 가꾸어 나갈 때, 그 건강한 에너지 곁에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물들어 가는 행복한 덤에 가깝다. --- p.370 「양육자의 행복이라는 파격적 대안」 중에서 엄마가 진도에 쫓겨 던지는 “빨리 다음 거 해야지”라는 한마디는 당장은 계획표를 채워 줄지 모르지만, 사실은 아이가 스스로 깊이 고민하고 깨달음을 얻을 기회를 끊어 버리는 방해꾼이 될 뿐이다. 우리 아이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자기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아이가 서툰 호기심으로 자기 세계를 조금씩 넓혀 가는 그 조용한 순간을 깨뜨리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개입하고 싶은 조급함을 참고 아이의 흐름을 존중해 주는 이 인내는, 아이를 부모의 기대를 따라가는 아이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운다. 이 정적을 함께 견뎌 낸 부모만이, 훗날 어떤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길을 찾아내는 아이의 모습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 --- p.381 「기다림의 재발견」 중에서 나 역시 이 책을 써 내려가는 내내 깊은 자기모순과 싸워야 했음을 고백한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최신 연구 데이터를 분석하고 부모들에게 자율성을 그토록 강조해 왔지만, 정작 내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는 나조차 시스템이 설계한 불안으로 되돌아가려는 강한 충동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성적을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차마 아이 얼굴을 보지 못해 서재 문을 걸어 잠갔던 그 비겁한 밤들을 기억한다. 연구실 책상 위에서 정의한 자기 주도성은 세련되고 우아했지만, 거실 소파에서 마주한 내 아이의 막막한 방황을 지켜보는 일은 때로 비릿한 공포였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잘 키우는 법을 강의해 왔지만, 정작 내 아이에게는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온전히 보여 주지 못했다. --- p.395 「다시, 인간으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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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되는 불안, 잠식되는 ‘정서적 자본’
부모의 불안은 어떻게 아이의 삶이 되는가 『이기적 양육자』는 1980~1990년대에 태어난 8090 세대 부모의 불안을 읽어 내고, 새로운 양육의 방향을 제안하는 자녀교육서다. 아이를 잘 키우려 자신을 지우고, 아이의 성취와 실패를 자신의 성적표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온 부모들에게 ‘나를 먼저 세우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성장을 돕는 일’이라는 관점을 전한다. 이 책은 부모에게 막연히 ‘다정한 부모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좋은 부모가 되고자 했던 8090 세대가 왜 성과형 부모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한다. 경쟁과 비교, 정보 과잉과 불확실성 속에서 부모의 불안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대가 학습시킨 생존 방식이 되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시대가 부모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서 성과 중심의 양육이 아이에게 남기는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성적과 레벨, 진도와 스펙을 끊임없이 확인하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보다 성과가 먼저 평가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부모의 불안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전달되고, 반복되는 개입은 아이가 스스로 실패하고 선택하며 회복할 기회를 빼앗는다. 이 책은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고 과도한 개입을 멈추는 일이 아이의 자율성과 회복탄력성, 자기주도성을 키우는 출발점임을 보여 준다. AGI 시대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실패한 뒤 다시 시도하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기적 양육자』는 아이를 성과 중심으로 관리하는 기술 대신,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힘을 기르는 양육의 기준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차 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연구 책임교수로 AI 의료 빅데이터와 아동 뇌과학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19년간 학생과 학부모를 상담한 경험, 부모 교육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과 고민, 구독자 20만 명의 유튜브 채널 〈0교시 부모영역〉에서 부모들과 나눈 생생한 대화를 이 책에 풀어냈다. 부모가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태도는 저자가 요즘 엄마들에게 ‘103동 언니’로 친근하게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기적 양육자』는 아이의 성취와 행복이 함께 자랄 토대를 만들고 싶은 부모에게 자신의 양육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과 현실적인 변화의 방향을 건넨다. 불안을 해부하고, 성장의 조건을 다시 세우다 『이기적 양육자』는 총 6장에 걸쳐 8090 세대 부모 불안이 형성된 배경부터 새로운 양육의 실천까지 단계적으로 짚는다. 1장에서는 자신을 지운 헌신의 이면과 부모의 불안이 작동하는 원리를 살피고, 2장에서는 경쟁과 비교 속에서 불안을 삶의 기준으로 학습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3장은 ‘관리해야 안전하다’는 믿음이 통제와 개입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4장은 빼곡한 일정과 성과 관리 속에서 아이의 존재와 인격이 사라지는 현실을 포착한다. 5장에서는 사회가 떠넘긴 책임을 혼자 짊어진 채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검열하는 부모의 내면을 짚는다. 마지막 6장에서는 아이를 부모의 확장자가 아닌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고, 부모와 아이가 각자의 삶을 되찾는 양육의 방향을 모색한다. 실패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태도, 방치가 아닌 책임 있는 지켜봄, 양육자 자신의 행복을 회복하는 길도 함께 보여 준다. 나를 먼저 세워야 아이도 자기 삶을 산다 이 책은 아이를 향한 헌신 속에 부모의 불안과 통제 욕구, 경력 단절의 상실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섞일 수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아이의 실패가 내 인사고과처럼 느껴지고, 아이와의 대화가 공감이 아닌 피드백으로 끝나며, “다 너 잘되라고”라는 말이 만능 방어막이 되는 순간도 외면하지 않는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자가 어제 우리 집 거실에 다녀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부모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양육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의 날카로움은 부모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상냥한 부모가 왜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과잉 반응하는지 이해해야 비로소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반응 뒤에 숨은 불안을 알아차리는 순간, 부모는 자책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제목의 ‘이기적’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지우는 것은 헌신처럼 보이지만, 부모가 자신의 삶을 잃어버릴수록 아이는 그 불안과 희생의 무게까지 떠안게 된다. 부모가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회복할 때 아이도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다. 이 책은 부모에게 완벽해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의 인생을 관리하는 대리인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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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로 생존의 본질을 밝혔다면, 19년간 부모들의 불안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김성곤 교수는 이 시대 자녀교육의 민낯을 밝힌다. 불안에 떠밀려 온 부모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가장 날카롭고 정직한 안내서. - 한민 (문화심리학자, tvN <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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