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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공감의 여백: 공감만으로 자라는 아이는 없다 “먼저 공감해 주세요”라는 말의 함정 내 감정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 공감받은 아이가 공감할 줄 모르는 까닭 나와 다른 감정 앞에서 흔들리는 아이 받기만 하던 공감에서 주고받는 공감으로 함께 나누는 공감이 사회성을 키운다 공식이 아닌, 나를 전하는 공감 2장 자존감이 자랄 여백: 칭찬만 먹고 크는 자존감은 없다 자존감을 키워주는 어른들 가르침 대신 격려, 승패 대신 박수만 남은 교실 격려만을 원하는 아이들의 속마음 비대해진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이유 자존감을 키워주는 부모에서, 자존감이 자라게 두는 부모로 부족함도 품을 줄 알아야 진짜 자존감이다 3장 훈육 뒤의 여백: 울리지 않는 훈육은 없다 어긋난 훈육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 규칙과 질서 없이 자라는 아이들 훈육도 사랑이다 우리 아이에게 맞는 훈육을 찾아서 4장 아이를 이해하는 여백: 세상에 같은 아이는 없다 아이의 속도를 믿는다는 것 아이 곁을 지켜주는 부모면 충분하다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착각 아이마다 다른 출발점, 기질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대로 두지 않는다 아이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려면 5장 부모의 여백: 완벽한 부모, 완벽한 아이는 없다 쉬지 못하는 부모, 쫓기는 아이 완벽한 부모, 완벽한 육아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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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충분히 오간 것 같은데 왜 아이는 멀어지고 부모는 지쳐만 가는 걸까.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운 공식을 그저 읊었을 뿐이다. 나쁜 부모로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간절함이 너무 컸던 탓이다. 그래서 아이의 진짜 마음을 살피기보다, 외운 문장을 정확하게 말하는 데 자신도 모르게 온 신경을 쏟게 되었다. 그렇게 공감은 어느새 하나의 ‘기술’이자 ‘정답’이 되어버렸다.
--- p.16 아이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부모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스스로를 해치거나, 가족에게 욕설을 내뱉는 행동 앞에서는 공감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건 공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 행동은 멈춰야 해.” 이 한마디로 아이를 단호하게 멈춰 세워야 한다. 아이의 감정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만, 그릇된 행동까지 받아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모든 행동을 받아주면 아이는 자기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다. 결국 자신도 아프고 남에게도 상처를 주면서, 정작 자기가 왜 아픈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 --- p.19 화를 훈육으로 위장하면 부모의 진짜 감정도, 전하고자 했던 올바른 가르침도 아이에게 닿지 못한다. 부모 스스로 자신의 화를 인정하지 않은 채 훈육으로 포장했으니, 그 안의 진심이 아이에게 전달될 리 만무하다.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는 부모가 제시하는 행동의 기준을 듣기도 전에, 그 말속에 숨은 화부터 먼저 알아챈다. 그 거친 감정 앞에서 아이는 그저 위축되거나 반발심을 품을 뿐, 부모가 알려주고 싶었던 소중한 기준은 아이의 마음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 p.57 교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험을 치른 날에도 교사는 아이들의 점수를 큰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알린다. 부모에게는 긍정적인 부분만 골라 전한다. 아이들에게조차 “정말 잘해냈다”라거나 “이 부분은 공부가 더 필요하다”라고 분명하게 짚어주는 것을 주저한다. 이렇게 객관적인 평가라는 말은 초등학교 현장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부모는 혹여나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평가를 원치 않고, 교사는 평가 결과를 꺼내는 순간 학부모와 부딪히거나 아이가 좌절할까 봐 매 순간 조심스러워한다. 평가라는 것 자체가 마치 아이들을 줄 세우는 일, 아이의 여린 자존감을 깎는 일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 p.92 잠깐의 속상함만 견뎌내면, 그 끝에 더 큰 다정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자기 잘못을 스스로 책임지는 마음은 자라나지 않고, 혼난 뒤에 찾아올 그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만 자라난다. 이것이 바로 똑같은 잘못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진짜 이유다. 하온이는 왜 자기 행동을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마주하고 그 무게를 견뎌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잘못의 끝에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굳이 행동을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잘못된 행동이 부모의 더 큰 사랑을 확인하는 통로가 되어버린 셈이다. --- p.162 부모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의 다른 어른에게 훈육을 받아보는 경험은 아이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성장의 과정이다. 아이들은 자라며 저마다 기준이 다른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부모만큼 내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지적도 받고 부딪혀보면서, 아이는 집 밖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 나간다. 이것은 집 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 p.191 부모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외면하고 싶은 두려움’이다. 혹여나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괜찮아, 조금 더 자라면 다 알아서 나아질 거야”라며 애써 눈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한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두려움에 망설이는 사이, 정작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골든타임은 조용히 흘러가버리고 만다.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 망설임 없이 그 손길을 빌리는 것은, 결코 부모로서 무능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고 도우려는, 부모로서의 가장 용기 있고 성숙한 선택이다. --- p.218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마찬가지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따뜻한 사람 곁에서는 마음이 놓이지만, 나를 자꾸만 바꾸려 들고 지적하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어찌 다르겠는가.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마땅찮아 하는 부모의 눈빛 아래서 자라난 아이는, 끝내 스스로 를어딘가부족한사람으로여기게될지도모른다. 그러니 고치려는 조급함보다 언제나 앞서야 할 것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마음이다. 나와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활기가 넘쳐 정신없는 아이도, 매사 더디고 신중한 아이도, 사소한 일에 크게 우는 아이도, 모두 저마다의 결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귀한 아이들일 뿐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과, 그 아이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애초에 서로 부딪히는 말이 아니다. --- p.237 남과 끊임없이 견주는 그 눈으로는, 사랑하는 내 아이가 어떤 결을 지닌 아이인지 끝내 알 수 없다. 내 아이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버거워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지는,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오직 그 아이 한 사람만을 바라볼 때에야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법이다. 내 안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남과 견주던 시선마저 거두고 나면, 그제야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남들보다 더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최소한 남들만큼은 해주기를 바라는 조급함도 잠시 내려놓고 나면, 내 아이의 진짜 모습이 천천히 떠오른다. --- p.253 사랑하는 내 아이 마음속을 깊이 깨닫고 나면, 이 아이에게 지금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떤 영역은 단호한 원칙으로 가르쳐야 하고, 어떤 영역은 곁에서 다정하게 도와주어야 하는가를 명확히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아이에 대한 정직한 이해 없이 휘두르는 훈육은 아이와 부모 모두를 피로하게 만들고 상처 입히지만, 진짜 내 아이를 알고 나서 건네는 가르침은 아이의 마음에 한결 수월하게 스며드는 법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건네는 삶의 가르침은 세상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누구보다 차갑지만, 그 모두가 결국 아이에게는 사랑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p.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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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여 제발 기다려라!”
아이 스스로 추스르고 일어설 시간을 주자! 22년 차 초등교사·아동심리상담사·부모교육상담사가 알려주는 진짜 자존감 육아 작은 일에도 감정이 크게 일어나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이 정작 친구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친구를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 하고 그 관계에 집착하는 아이 칭찬이 없으면 금세 불안해하고, 사소한 실패 앞에서도 쉽게 주저앉는 아이 혼자서는 무엇 하나 스스로 해보려 하지 않고, 늘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아이 저자는 스무 해가 넘도록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요즘은 이런 아이들이 예전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한다. 아이들 사이의 갈등은 더 깊어졌고, 작은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은 채 오래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상한 것은, 이런 아이들 뒤에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부모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누구보다 애쓰고,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우려는 ‘완벽한’ 부모들이 있었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먼저 막아주고, 실패할까 봐 대신 풀어주고, 상처받을까 봐 세상을 미리 정리해주고, 혹시 좋은 부모가 못 될까 봐 자기 자신을 끝없이 몰아붙이는 마음. 그 지극한 마음이 도리어 아이를 흔들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는 교실에서 오래 지켜보았다. 사랑이 빈틈없이 채워질수록, 아이가 스스로 겪어볼 여백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애쓰는데도 아이가 책에 나온 것처럼 따라주지 않으니, 상담을 마칠 때면 부모님들은 답답한 마음에 늘 같은 것을 물었다. “선생님, 제가 뭘 잘못하고 있을까요?” “제가 뭘 더 해야 할까요?” 그 물음 앞에서 저자는 오래 마음이 쓰였다. 그건 멀리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교실에서는 어떤 아이 앞에서도 의젓한 교사이지만, 집으로 돌아가 제 아이 앞에 서면 저저 역시 똑같이 흔들렸다. 좋은 엄마이고 싶은 마음에 늘 조급했고, 더 잘해주지 못한 날이면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한참을 미안해했다. 그러면서도 그 미안함의 화살은 언제나 자신을 향했다. 더 참을 걸, 더 알아줄 걸 하면서. 아이 마음은 그토록 살피면서, 정작 애쓰는 자신의 마음은 돌볼 줄 몰랐다. 혹시 우리 부모들은 아이 키우는 일을 뭔가 대단한 임무처럼 여겨온 것은 아닐까. 많이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완벽하게 지켜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어온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그 믿음에서 벗어나고자 쓰기 시작했다. 더 잘하는 법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이 짊어진 그 짐을 함께 내려놓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흔들리고 실수하는 날이 있어도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그 말을 가장 먼저 건네고 싶었다. 무언가를 더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이제 그만 놓아도 될 것을, 함께 가만히 내려놓아 보는 책이다. 내려놓은 자리에는 여백이 생긴다. 아이가 스스로 자랄 여백,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여백. 이 책이 말하는 ‘여백 육아’는 거기서 시작된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다 정작 아이도, 나 자신마저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분들에게 이 책이 다시 가볍게 걸음을 떼어보자고 곁에서 내미는 다정한 손길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