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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곡
2. 첫 제자들 3. 첫 표적들 4. 니고데모 5. 예수님과 요한 6. 사마리아와 갈릴리 7. 아들과 아버지 8. 하늘로부터 온 떡 9. 빛과 어두움 10.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11. 선한 목자 12. 나사로 13. 수난의 전주곡 14. 만찬 15. 예수님과 제자들 16. 예수님, 제자, 세상 17. 성별 18. 승리의 수난 19. 예루살렘에서의 재회 20. 갈릴리에서의 재회 |
Lesslie Newbi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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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지치고 목마르고 지극히 연약한 상태에서 그분은 정오의 강렬한 태양열을 받으면서 우물가에 앉아 있는 시골 아낙네와 마주치시게 된다. 그곳은 유대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땅이었고, 그 거민들은 이방 종교와 너무나 깊이 타협한 나머지 경건한 유대인에게는 불결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그 곳에서의 예수님은 힘 없는 낯선 자다. 아무리 목이 마르다 한들, 어찌 지체 높은 분이 천민의 동네 우물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겠으며 천민이 주는 바가지로 목을 축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시골 여자는 낯선 자로부터 물 한 모금 달라는 부탁을 받고 깜짝 놀란 것이다.
그녀의 질문은 반쯤 조롱하는 것이고 반쯤 놀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신비로운 암시로 가득 차 있다. '생수'는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과 대조되는, 샘에서 솟는 신선한 물이다(렘 2:13). 그것은 언젠가 광야로 흘러내려, 죽음만 있던 그 곳에 생명을 줄 생명의 물줄기다(겔 47:1-12). 그것은 토라, 즉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에게 주신 생명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다. '생수'라는 말은 이 모든 것을 시사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분명 그렇지 않다. 이 지쳐 있는 나그네는 자기가 그 위대한 족장보다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인가? 그 족장이 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이 신성하게 되었고, 그가 판 이 우물이 그 자신과 짐승들의 목까지 축여 주지 않았던가? 아니, 이 남자는 야곱이 물을 찾으려고 그토록 깊이 팠던 이 곳에서 금방 새 우물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복음서의 독자는 이 여인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간격보다 훨씬 더 깊은 골짜기 위에 서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창조자이신 그분과 그 생명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세상 간의 간격이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제안한 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이해할 수도 없다. 그것은 반복되는 자연적인 육체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충족시킨다. 후자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다른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에 의해서만 해갈될 수 있다(시 42편). --- pp.78-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