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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
계몽주의와 현대 문화, 과학주의 세계관을 넘어서
IVP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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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1장 희망을 상실한 문화
2장 현대 문화의 근원들
3장 새로운 틀
4장 세 가지 질문
5장 탐구로의 초대
결론

후기: 다른 측면에서―웨슬리 아리아라자
옮긴이 해설

저자 소개 2

레슬리 뉴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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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lie Newbigin

진보와 보수 양진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선교사요 목회자인 뉴비긴. 그는 1909년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났고, 불신자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퀸즈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기독교 학생 운동(SCM)에 참여하면서 회심을 경험했다. 졸업 후 스코틀랜드 SCM 총무로 2년간 일한 후에, 3년 과정의 신학 수업을 위해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936년 인도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해 말 인도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많은 반대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장로교, 회중교회, 영국 감리교, 성공회의 연합으로 구성된 남인
진보와 보수 양진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선교사요 목회자인 뉴비긴. 그는 1909년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났고, 불신자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퀸즈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기독교 학생 운동(SCM)에 참여하면서 회심을 경험했다. 졸업 후 스코틀랜드 SCM 총무로 2년간 일한 후에, 3년 과정의 신학 수업을 위해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936년 인도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해 말 인도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많은 반대와 염려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장로교, 회중교회, 영국 감리교, 성공회의 연합으로 구성된 남인도 교회를 형성하고 조직하는 핵심 역할을 했으며, 1947년 37세의 나이에 마두라이에서 이 연합된 교회의 초대 감독들 가운데 하나로 임명되었다.

1959년 뉴비긴은 국제선교협의회(IMC)의 총무직을 수락하여 잠시 인도를 떠났다. 그리고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WCC) 뉴델리 회의에서 IMC와 WCC의 통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WCC 부총무와 WCC 전도위원회 책임자가 되었다. 1965년 그는 WCC에서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인도로 돌아와 첸나이의 감독으로 사역했다. 당시 그는 이미 인도에서의 선교 경험을 통해 교회 연합, 교회의 본질,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삼위일체적 근거를 다룬 여섯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 저서들 가운데 특히 교회론적으로 주목받는 저서가 『The Reunion of the Church』와 『교회란 무엇인가?』이다.

1974년 인도에서의 35년간 사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뉴비긴은 영국이 선교지보다 더 이교적인 사회임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의 책들과 강연은 이런 격렬한 고민 가운데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후 199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국 버밍엄에서 저술과 강연, 목회 사역으로 왕성한 노년을 보냈던 뉴비긴은 "20세기 후반에 선교의 성경적ㆍ신학적 기초를 닦은 사람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동시대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서구 사회를 선교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선교적이며 분석적인 질문들을 제기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저서는 『교회란 무엇인가』(IVP), 『죄와 구원』(복있는사람), 『삼위일체적 선교』(바울), 『종결자 그리스도』(도서출판100), 『오픈 시크릿』(복있는사람), 『요한복음 강해』(IVP), 『서구 기독교의 위기』(대한기독교서회),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IVP),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IVP), 『복음, 공공의 진리를 말하다』(SFC), 『아직 끝나지 않은 길』(복있는사람), 『타당한 확신』(SFC), 『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IVP)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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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대학교 신학과(B.A.),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M.A., M.Div., Th.M., 변증학 전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Ph.D., 문화철학 전공), 캐나다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수학했다. 왕십리교회 청년 지도목사였고, 미국 앤아버 성서교회를 담임했다. 미국 캘빈 칼리지 언론학부 객원 교수, 일리노이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교수로서 연구했고, 캘빈 칼리지 헨리 미터 센터에서 펠로우 교수를 역임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 철학 담당 교수로서 가르쳤으며, 2019년 은퇴 후에는 한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로서 가르치고 있다. 삼일교회 협동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M.A., M.Div., Th.M., 변증학 전공),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Ph.D., 문화철학 전공), 캐나다 기독교학문연구소에서 수학했다. 왕십리교회 청년 지도목사였고, 미국 앤아버 성서교회를 담임했다. 미국 캘빈 칼리지 언론학부 객원 교수, 일리노이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교수로서 연구했고, 캘빈 칼리지 헨리 미터 센터에서 펠로우 교수를 역임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 철학 담당 교수로서 가르쳤으며, 2019년 은퇴 후에는 한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로서 가르치고 있다. 삼일교회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니고데모의 안경』 『변혁과 샬롬의 대중문화론』 『신국원의 문화 이야기』 『하나님을 사랑한 철학자 9인』(공저) 『포스트모더니즘』(이상 IVP), 『지금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복있는사람), 『대중문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공저, 예영커뮤니케이션), 『기독교인의 생활 윤리』(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등이, 옮긴 책으로는 『대중문화전쟁』 『행동하는 예술』(이상 IVP), 『변증학』(기독교문서선교회), 『서양 사상의 황혼에서』(공역, CH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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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82쪽 | 234g | 131*200*13mm
ISBN13
9788932823577

책 속으로

이 작은 책자는 영국교회협의회(British Council of Churches)가 1984년에 열릴 회의를 염두에 두고 1981년에 발주한 연구 과정의 일부로 작성되었습니다. 회의 시점으로 1984년이 선택된 이유는, 그 해가 유명한 소설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될 시기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토론 끝에 모인 의견은 그런 회의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과, 전국 회의 준비를 위해 논의를 활성화하고 몇몇 전문가 그룹에 의제를 제안하기 위한 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
--- 「서문」 중에서

영국에서 사역을 하면서 종종 받았던 질문은 “인도에서 영국으로 옮겼을 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늘 “희망의 상실”이라고 답했습니다. 같은 경험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마드라스에서는 가장 비참한 빈민가에서도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항상 있었습니다. 야간 학교를 시작하거나, 물 공급을 요구하고, ‘청년 진보 협회’ 같은 것을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1947년의 독립 이후에 겪은 모든 실망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했습니다.
--- 「1장 희망을 상실한 문화」 중에서

저는 18세기 ‘계몽주의’를 우리 문화의 가장 근접한 원천으로 언급했지만, 물론 그 뿌리는 훨씬 먼 역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상가들이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상 운동은 연속적인데, 전쟁과 혁명 같은 격변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떤 새로운 것이 출현한 시점을 언제로 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다소 임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운동은 아랍어 저작들의 라틴어 번역,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 르네상스 시대에 있었던 고전적 발상들의 범람, 종교개혁의 열정적 논의들, 17세기에 있었던 근대 과학의 시작들에 의해 서유럽에 뿌려진 사상적 누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유럽이 전환점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팽배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러 세기 동안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던 발전들은 사람들이 그 일어난 일을 ‘계몽’(enlightenment)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빛이 밝아 왔습니다. 어둠이 사라졌습니다. 모호했던 것이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이제부터 사물은 있는 그대로 보일 것입니다.
--- 「2장 현대 문화의 근원들」 중에서

우리의 상황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상황에는 명백한 유사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범하게 탁월했던 시대의 끝처럼 느껴지는 곳에 서 있습니다. ‘끝에’ 있다는 느낌은 제가 제안한 대로 우리 문화에 미래가 없고 따라서 삶이 의미가 없다는 느낌입니다. 고전 문화는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붕괴되고 있었는데, 그런 문화로 계몽주의가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시대에 영감을 준 비전은 성경의 선지자와 사도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자 및 로마 입법자의 것이었습니다. 만일 우리도 문화에 미래가 없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만일 우리 젊은이들이 유럽이 걸어온 위대한 전 여정에 등을 돌리고 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난 신비주의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면, 만일 자율적 이성의 엄청난 업적들이 기껏해야 무의미하고 최악의 경우 악마들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낸 것 같다면, 그렇다면 폴라니가 옳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계몽주의가 ‘자명한’ 것으로 여겼던 가정들의 틀 안에서 우리는 갱신을 찾을 수 없으며 근본적 전향,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3장 새로운 틀」 중에서

기독교의 제자도는 예수가 가신 길을 그의 부활하신 생명의 능력 가운데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은 순전히 내면의 영적 순례가 아니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내는 현실 정치의 길도 아닙니다. 예수가 가신 길을 따라, 타협 없으며 공격받기 쉬운 주장을 하면서 세상 일과 정치의 심장부로 바로 뛰어듭니다.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추구하되, 자기 행동의 산물이 아니라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롬 4:17) 하나님의 선물로 여깁니다. 거룩한 도시를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에서 벗어나 개인적 영성으로 도피하는 것은 참된 도시에 등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4장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성경에서 도출해서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단일한 원칙 체계는 분명히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계시에 대한 옛 오해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동시대 사회의 한가운데서 성경이 말하고 해석하는 구속 사건들을 통해 알려진 살아 계신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지금 가능하게 하는 기대와 소망 가운데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잡하고 변화하는 상황에서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의할 것을 우리가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의 가정들에 대한 단호한 도전이 필요한 영역들은 밝힐 수 있습니다.
--- 「5장 탐구로의 초대」 중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지만,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 세계나 기술 이전의 순수함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향수도 배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모범을 따라 예수의 사역에 기반을 둔 이해의 틀을 우리의 죽어 가는 문화에 담대하고 당당하게 제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빛으로 또 그 이름의 능력으로 우리의 경험을 새롭게 이해하고 다루려는 힘찬 시도에 동시대인들이 참여하도록 초대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 「결론」 중에서

우리 모두는 뉴비긴이 교회를 위해, 그리고 교회를 대신해 질문을 제기하는 관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단순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삶과 세상에 대한 성경적 이해에 이 문제들의 해결책이 있는지와 관련해 학문적 질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 현대 문화가 사물의 실상에 대한 성경적 비전을 직면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밝히려 합니다. 이것은 정당합니다. 신학자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은 신앙의 관점입니다. 신학자는 신앙에 이르기 위해 질문하지 않습니다. “내 신앙의 시각에서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를 물음으로써 시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 「후기: 다른 측면에서」 중에서

뉴비긴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과 영적 사명을 통합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거나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문제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뉴비긴의 통찰은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공동체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공의, 윤리,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옮긴이 해설」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왜 현대인들이 희망을 상실하는 것을 막지 못하는가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계몽주의가 가져온 놀라운 발전, 그럼에도 희망을 잃는 사람들


근대 이후의 서구 사회는 과학과 기술, 문화 영역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와 그로 인한 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그러한 발전이 비서구 사회로 확산되었다. 이 변화의 시작점에 계몽주의가 있었다. 깊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계몽’이 여러 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발전들의 정점 혹은 전환점을 가리키게 되면서, 이 단어는 종교와 문화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간의 발견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그늘을 키워 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발전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인도의 거리를 헤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쪽에서 과학과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칭송할 때, 같은 사회의 구석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비인간화를 어떻게 설명할까?

계몽주의의 전환과 교회의 책임

레슬리 뉴비긴이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를 따라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계몽주의는 단순히 전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계몽주의자들이 미신과 모든 비합리성과 싸운 것은 감사할 부분이지만, 그 과정에서 교리 혹은 믿음보다 의심에 주도권을 부여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비판 이후 철학’(post-critical philosophy)을 시작함으로써 그리스 철학의 역사를 끝낸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서 기독교 신앙은 사적 영역으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가 참된 이해의 출발점이라는 확신도 일부 영역으로 제한되었다. 뉴비긴에 따르면,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근본적 전향,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단순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환을 유비로 이해해서, 증명될 수 없지만 신앙에 의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 믿음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의 근원적 갱신을 위해, 그러한 새로운 이해의 모델을 제공할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진정한 선교적 접근을 위하여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현대 문화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대 문화에서 왜곡을 일으킨 문제에 의해 교회와 기독교 신앙도 영향을 받았음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폭력으로 사용된 교리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폴라니의 용어로 말하자면, ‘신앙의 틀’(fiduciary framework)이 탐구와 질문의 한계가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폴라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독교 선교가 올바로 이해될 때 그렇듯 다른 사고방식들과의 대화로 이어지고, 다른 ‘신앙의 틀들’로부터 움직이는 이들과 대화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것이 계몽주의 이후 문화와의 선교적 만남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의 사명이 선포하고 구현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창조된 세계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를 주장하는 통치이며, 성경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거룩한 도시의 비전으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공적 비전과 사적 비전을 다시 통합하며, 그러면서도 ‘콘스탄티누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순종 전체를 다스릴 성경의 종말론적 비전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돌이킴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정의와 평화를 기대하게 만들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대 문화의 발전 이면에 있는 계몽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고,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그러한 문화적 한계 내에서 축소되었는지 반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총체적 비전으로 회복되어 세상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 책은 ‘사귐과 섬김’의 지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공공성 증진에 기여하려는 목회자 모임인 ‘사귐과 섬김’은 부설 ‘코디연구소’를 통해 기독교적 사회 문화 연구와 실천에 힘쓰고 있습니다.

독자 대상

ㆍ현대 문화와 기독교 신앙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는 그리스도인
ㆍ과학과 합리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성경을 따르는 믿음의 의미를 찾는 그리스도인
ㆍ종교를 무시하는 사회가 추구하는 미래에 동의할 수 없어 대안을 모색하는 그리스도인
ㆍ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세상과 교회를 삼키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복음 안에 있는 참된 대안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추천평

『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는 새로운 책이 전혀 아니다. 1989년과 1994년에 이미 한국에 소개되었던 책이 새로운 편집과 제목으로 이번에 세 번째로 출간된다는 점은 교회가 여전히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뉴비긴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순례하는 백성으로, 이 세상의 문화를 거스르며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가시적인 연합체다. 이러한 교회는 필연적으로 ‘선교적 교회’가 된다. 한국 교회도 급변하는 문화의 세상에서 ‘충돌’이 아닌 ‘공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탐구해야 할 때다. 답을 찾으라고 다그치기보다는 탐구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책이다. - 김병삼 (만나교회 담임목사,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보인다. 신앙을 우리만의 리그로 만들거나, 반대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자 정치적 힘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뉴비긴의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제3의 길’을 선명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세상 한복판으로 들어가 복음이 세상을 위한 공적 진리라는 것을 삶으로 증언하는 길이다. 세상과 교회를 향한 애통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방향을 찾는 모든 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 송태근 (삼일교회 담임목사, (사)미셔널신학연구소 이사장)
이 책은 과학과 국가를 삶의 토대로 삼는 현대 문화가 왜 희망의 실종을 겪게 되었는지 그 한계와 위기의 본질을 파헤치고,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문화 비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하면서 저자는 이 비전을 공적 영역에서 증언해야 하는 선교적 교회의 소명도 일깨운다. 신앙이 사적인 것으로 축소되고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잃어 가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공적 신앙의 의미를 회복하여 선교적 본질을 되찾기 위한 통찰을 선물한다.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묻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주승중 (주안장로교회 담임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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