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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_ 하나님을 향한 노래, 안식으로의 초대(이종태 교수)
part 1 방황했던 날들, 내 영혼의 몸부림 - 방황했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나를 품으신 주님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1 크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작고 무력한 나의 시작을 고백합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 철없던 어린 시절의 악한 본성 2 나는 악을 행하는 것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훔친 것은 배가 아니라 금지된 쾌락이었다 3 진리를 찾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거짓된 빛, 마니교에 빠지다 4 사랑하는 이를 잃고 무너졌습니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마주한 사랑과 허무 5 과연 진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거짓 스승을 지나 새로운 길을 찾아서 6 진리의 문 앞에서도 나는 머뭇거렸습니다 부와 명예, 익숙한 욕망을 놓지 못하는 마음 7 어둠 속에서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악의 문제를 넘어 하나님을 발견하다 8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 “집어 들고 읽어라 9 마침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정 part 2 너무 늦게 사랑한 하나님 - 내 안의 솔직한 욕망과 죄의 흔적을 꺼내 놓으며 나를 찾아내신 주님을 고백합니다. 10 너무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기억과 욕망을 지나 발견한 참된 사랑 part 3 시간을 넘어 영원한 안식으로 -시간에 쫓기는 불안을 넘어 마침내 그분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립니다. 11. 모든 시작과 끝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시간 너머에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12 태초에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신 창조주 13 마침내 당신 안에서 쉬게 될 때 사랑으로 완성되는 영원한 안식 덧붙이는 글_ 흩어진 나를 모아, 영원한 안식으로(이종태 교수) |
Aurelius August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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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노래, 안식으로의 초대
교회사 속 수많은 저작 가운데, 성도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졌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제목은 다 알지만 끝까지 읽어 낸 사람은 드문 책’을 꼽으라면 단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s)》일 것입니다. 방대한 분량과 4세기 고대 지중해 세계의 철학적·신학적배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큰 결심을 하고 첫 장을 열었다가도 얼마 못 가 책장을 덮곤 합니다. 하지만 《고백록》은 결코 신학교 강의실에서 학문적으로만 다루어져야 할 딱딱한 신학 논문이 아닙니다. 이 책은 2천 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뜨거운 영혼의 고백이자, 문학과 철학의 향기까지 짙게 배어 있는 영성 고전입니다. 읽다가 난해한 구절을 만난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선의 모든 뼈를 다 발라 먹지 못해도 부드러운 살코기만 뜯어 먹으면 충분한 자양분을 얻듯이, 난해한 신학적 논의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울리는 고백의 한 줄 한 줄에서 충분한 영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고전 라이트의 《고백록》을 통해 그 안에 담긴 가장 빛나는 정수(精髓)들을 마주하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성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시기를 권합니다. 《고백록》은 어떤 책인가 《고백록》은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43세 무렵(397년경), 세례를 받고 회심한 지 약 11년이 흐른 원숙한 시기에 3년에 걸쳐 쓴 책입니다. 과거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자서전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춘 영적 증언(간증)문입니다. 책은 총 13권(오늘날의 1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제9권: 어린 시절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젊은 날의 방황과 지적 갈망을 거쳐 386년 밀라노의 정원(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회심하기까지, 그리고 오스티아 항구 도시에서 어머니 모니카와 더불어 가졌던 영적 체험과, 모친과의 사별에 이르기까지의 ‘과거 기억’을 다룹니다. 제10권: 저술 당시 43세 주교로서 자신의 내면과 심리를 성찰하며, 유명한 ‘기억의 신비’를 탐구하여 ‘현재 직관’을 보여 줍니다. 제11~제13권: 시간과 영원의 신비, 창세기 천지창조의 영적 의미를 해설하며, 피조물이 궁극적으로 들어가야 할 ‘영원한 안식’을 사유하는 ‘미래 기대’로 웅장하게 마무리됩니다. 참회를 넘어 사랑과 찬양의 노래로 우리는 흔히 ‘고백(라틴어로 Confessio, 콘페시오)’이라는 말을 과거의 부끄러운 죄를 털어놓는 참회나 반성 정도로 좁게 생각하곤 합니다. 예전에 이 책이 《참회록》으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던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교회의 전통에서 ‘콘페시오’는 죄의 고백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은혜에 대한 찬양의 고백이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사랑의 고백입니다. 실제로 《고백록》의 첫 문장은 “오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을 받으실 만합니다”라는 찬양으로 시작하여, 맨 마지막 13권에서는 거룩한 기도의 마침인 “아멘”으로 끝납니다. 책 전체가 하나님을 2인칭인 ‘당신(Tu/You)’으로 부르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기도의 형식’으로 쓰인 최초의 위대한 영성 문학 작품입니다. 하나님을 제3자로 두고 하는 말(Talk about God)은 우리 머리에 신학 지식으로 저장될 뿐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실어 드리는 말(Talk to God)은 그 말을 (엿)듣는 이들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신앙을 일깨워 줍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나 독자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자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고백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잠들어 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씨를 일깨우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고백록》 전체를 꿰뚫는 단 하나의 문장을 꼽으라면, 제1권 시작 부분에 나오는 다음 구절일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fecisti nos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인간의 마음은 본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향하도록 빚어졌기에, 그 참된 쉼의 자리에 이르기 전까지는 언제나 흔들리고 불안하며 쉼이 없을(restless)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명예와 지식, 쾌락을 끌어모아도 영혼의 깊은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소책자에 선별된 핵심 구절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겪었던 뼈아픈 방황과 실패,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은혜의 기록들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조급하지 않게 느긋이, 마음에 머물게 하며 묵상해 보십시오. 진지하게 고뇌하고 진솔하게 고백했던 한 순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여러분 자신의 영혼 역시 참된 평화와 안식의 자리로 걸어가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추천의 글에서) 내 영혼의 집은 당신을 모시기에 너무 작습니다 내 영혼의 집은 당신을 모시기에 너무 작습니다. 이 집을 넓혀 주셔서 당신이 들어오실 수 있게 하소서. 이 집은 허물어져 가고 있으니 고쳐 주소서. 그 안에는 당신을 노하시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 집을 깨끗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외에 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죄에서도 나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나를 원수에게서 지켜 주소서. 나는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말씀드립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내 죄를 당신께 고백했을 때, 당신은 내 죄악을 용서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의 판단을 두고 당신과 다투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나 자신을 속일까 두려워, 날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를 살피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판단을 두고 당신과 다투지 않겠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낱낱이 헤아리신다면, 주여, 누가 감히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1. 5. 6) 내 마음이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오 주님, 당신은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을 받으실 만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크고, 주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실 인간은 주님이 지으신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 죽음에는 우리의 죄와 교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고 싶어 합니다. 그 마음조차 주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우리를 깨우십니다. 주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주님, 내가 한 가지를 알고 싶습니다. 무엇이 먼저일까요? 주님을 먼저 불러야 할까요, 아니면 먼저 주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또 주님을 먼저 알아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을 부르는 것이 먼저일까요? 생각해 보면,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주님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알지 못한다면, 주님이라고 부르면서도 사실은 전혀 다른 존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부르는 과정에서 비로소 주님을 알아 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누군가 전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찾는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결국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나는 주님을 찾으며 주님을 부르겠습니다.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믿겠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당신에 관한 말씀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이 믿음으로 주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 설교자(Preacher, 아우구스티누스가 설교를 듣고 회심한 그의 스승 암브로시우스를 말함-역주)를 통해 복음이 전해졌으며, 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내 마음에 믿음을 일으켜 주셨기 때문입니다.(1.1.1) 내 작은 마음속에 어떻게 하나님을 모실 수 있을까 내가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나의 주님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결국 그분을 내 안에 모시는 일일 텐데…, 한없이 작은 내가 어떻게 그분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우주와 세상을 만드신 그 크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 작은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솔직히 내 안에 당신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단 한 곳이라도 있기는 한 것입니까? 당신이 직접 만드신 저 하늘과 땅조차 당신을 다 담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혹시, 세상 그 어떤 것도 당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숨 쉬는 모든 것 속에 이미 당신이 계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나 역시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왜 나는 새삼스럽게 당신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를 바라고 있던 것입니까? 생각해 보면, 이미 당신이 내 안에 계시지 않았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가장 어둡고 깊은 절망으로 내닫을 때도 당신은 거기 계실 것이고, 설령 내가 지옥 끝까지 떨어진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만물의 시작이자 중심이신 당신 안에 내가 머물고 있지 않다면,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주님. 이미 내가 당신이라는 거대한 품 안에 살고 있는데, 왜 굳이 당신을 이리로 오시도록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까? 대체 하나님이 어디에서 오셔야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이미 “나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1. 2. 1).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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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거치며 검증된 위대한 신앙 고전의 정수를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한 두란노의 기획 시리즈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내용에 막혀 접근하기 어려웠던 거장들의 유산을 간결하게 담아냈다. 한 손에 잡히는 가벼움 속에 저자의 깊은 사유를 그대로 넣고자 노력했다. ‘클래식 투 모던(Classic to Modern)’이라는 기치 아래, 세월을 견뎌 낸 지혜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준을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고전 문고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