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emie Mo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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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너는 천 조각이 아니야
오빠 ‘로낭’에게 시도의 다람쥐 인형 ‘카주’는 그저 천 조각일 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과 강가에 쪼그려 앉아 올챙이 연못을 만들던 로낭이었지만, 올해는 친구들과 절벽에서 다이빙을 할 정도로 자랐다. 풍덩, 물보라가 튈 때마다 시도는 그 아래에서 오빠를 올려다본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한 아이가 조금 먼저 자랐고, 다른 한 아이는 자라고 있을 뿐이다. 동생에게 다른 데 가서 놀지 않으면 그 천 조각을 물에 던져버리겠다는 로낭. 그의 말투에는 짜증만큼이나 머쓱함도 섞여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역시 그 세계에 있었으니 말이다. 시도는 대꾸하지 않고 카주를 안은 채 자리를 뜬다. “울지 마, 너는 천 조각이 아니야.” 언뜻 카주에게 속삭이는 말 같지만 정작 울고 싶은 건 시도다. 아이들은 자기 마음을 곧잘 인형에게 떠넘기고는 한다. 다이빙이 하고 싶을 때는 “카주도 내가 다이빙하면 좋겠대!”라고 말하고, 서운할 때는 인형의 눈물을 대신 닦아 준다. 그러니 오빠가 카주를 천 조각이라 부른 순간, 시도는 그 말을 인형에 대한 비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솜이 해진 인형이 어른 눈에는 낡아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이름이 있고, 말도 걸 수 있는 친구다. 그리고 누구나 한때는 분명 그 차이를 안다. 동물 인형은 어디에서 왔을까 카주를 잃은 시도가 들어선 숲은 무섭다. 짙은 보랏빛 나무 기둥 사이사이에는 검은 그림자가 숨어 있고, 그 그림자마다 희미하게 빛나는 눈이 그려져 있다. 누군가를 나를 키져보는 것만 같은 그런 어둠 속이다. 시도는 그 숲으로 들어가 카주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시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만 느껴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림자들은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늑대와 호랑이, 곰이 강가로 물을 마시러 와 다른 온순한 동물 사이를 거니는 장면에 이르게 되면 그렇게나 반짝이던 눈들이 사실 이 숲에 사는 생명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가 밤에 느끼는 두려움들은 이름을 몰라서 생기는 감정에 가깝다.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어둠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한다. 숲의 한가운데에 물의 여인이 있다. 여인의 품에 안긴 젖은 다람쥐가 에취, 에취! 하고 재채기하자 시도는 그 소리가 카주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잠자리는 시도에게 카주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물의 여인이 아이들을 빌려주었고, 그 아이들은 우리가 무서워할까 봐 인형의 모습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 상상은 인형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인형은 우리가 가진 물건이 아니라 숲이 잠시 건네준 생명이었다는 것. 문학과 생태의 관계를 오래 연구해 온 장 크리스토프 카발랭,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관계에 질문을 던져 온 제레미 모로가 함께 빚은 이야기답게 가장 사적인 사랑이 가장 넓은 세계와 맞닿는 순간을 보여 준다. 떠나보낼 줄 아는 사랑 카주를 다시 만났지만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시도는 눈물을 흘린다. 시도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카주를 찾았다는 기쁨, 짐승들에 대한 무서움, 카주와 함께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별 앞에서의 감정은 원래 그렇게 뒤죽박죽이다. 반가움과 두려움, 서운함이 한꺼번에 차올라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도는 카주에게 “잘 있어 카주, 너는 가장 예쁘고 좋은 인형이었어”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 과거형의 인사 속에는 이제 보내 주어야 한다는 걸 아는 아이의 마음이 스며 있다. 그 곁에는 로낭이 있다. 동물 사이 둘러싸인 동생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오빠는 시도에게 당장 도망치라고 외친다. 그때, 나이 든 곰 한 마리가 남매를 위협하던 호랑이 앞을 막아선다. 로낭의 어릴 적 친구 ‘브라우니’다. 동생의 인형을 천 조각이라고 부르던 로낭 역시 한때는 인형을 끌어안고 자던 아이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아끼는 마음만큼이나 그것을 다른 아이와 나누는 일도 사랑이라는 걸 로낭과 시도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인형들은 또 다른 아이를 자라게 하겠지. 그러니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여긴 인형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이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한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에게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은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