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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_「아, 4·19」/김윤식 |
高銀, 호:파옹(波翁), 본명:고은태(高銀泰), 법명:일초(一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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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세계문학 최고의 기획'(R. 하스)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 『만인보』의 21-23권이 출간되었다. 1960년대 4·19혁명기를 살아낸 인간군상을 중심으로 거대한 벽화의 한 장을 펼쳐 보이는 이번 21-23권은 혁명을 이끈 주축인 학생들과 반대편 부패한 구태의 정권 실세들을 핵심에 두고, 그 주위를 떠돌며 같은 시대를 살아간 뭇별처럼 많은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순간을 포착했다.
이번 세권에서 시인이 그려낸 것은 흘러간 시간 속에 못박인 '그 사람들의 한 순간들'이다. 그러나 이 순간들이 모여 이룩한 1960년대라는 격동의 시간도 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짧은 한 시기로, 역사의 한 조각으로 모자이크된다. 순간이 역사로 화하고 보잘것없는 개인이 역사적 사건의 일부가 되는 이 거대한 움직임을 시인은 날렵하고 엄정한 시선으로 한 편 한 편 낚아채듯 붙잡아 새겨넣었다. "하나의 죽음이 혁명의 꼭지에 솟아"오른 김주열의 이야기(「김주열」) 옆에는 천애고아 구두닦이로 시위에 나섰다 허망하게 죽은 청년의 사연이 있다.(「구두닦이」) 우연이 만들어준 영부인 자리에서 측근정치를 펼친 프란체스카와 민족을 못 견뎌한 여인 박마리아(「프란체스카 도너」「박마리아」)가 있는가 하면, 삶의 유일한 희망 외아들이 시위대 속에서 총탄을 맞은 줄도 모르고 낮잠을 자는 왕대폿집 여주인이 있다.(「꿈」) 경찰기동대장 남편이 한창 혁명 진압에 앞장설 때 그 마누라는 동대문 카바레와 여관 구석방을 주름잡고,(「그녀의 밤」) 전국 사투리 다섯 개를 구사하는 절도 8범은 감방 안에서 세계의 큰 도적들에게 호령한다.(「절도 8범」) 1965년의 평화시장, 각성제를 먹어가며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미싱 견습공과(「임옥남」) 말 한마디로 무장군인이 겨눈 코앞의 총구를 내리게 한 신문팔이 김두철도 있다.(「김두철」, 이상 21권) 390여명을 다룬 416편의 시들 속에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죽음은 너무나 흔하고 허망하다. 뒤에 남은 사람들의 사연은 처절하다. 1960년대는 이들 모두와 더불어 있었다. 비참과 비정이 뒤섞이고 비극과 희화가 공존한다. 그러나 금세 "혁명은 "저만치 실 끊긴 연처럼 너울너울 사라"지고,(22권「김종술」)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낮과 밤, "평범밖에 아무것도 없"는 시간(23권「이흥수」)이 이어진다. 곧 박정희정권이 등장하고 6?3 사태를 거쳐 1970년대가 개막된다. 역사는 자잘한 인간사의 세목과 상관없이 긴 길을 돌아서 간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의 추천사가 말하듯 『만인보』는 이렇게 정치 사회 도덕 같은 인위적 구분을 넘어선 법(法)과 자연의 세계, 훨씬 더 순연한 화엄의 세계를 현실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도도한 흐름 안에서 크고작은 생명과 사연이 혼융일체로 저마다 빛을 발한다. 이번 세권 가운데는 상업주의의 도도한 포위 속에서 죽음으로써 부활하는 시의 갱신을 다짐하는 「시인의 말」(21권)도 신선한 읽을거리이다. 23권 말미에 수록한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의 해설 「아, 4·19」는 가상문답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빌려 시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술회하고,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 시-시인의 본원적 측면을 고은 시학과 『만인보』에 접목하여 그 시세계의 뿌리를 살핀 드문 글로 주목을 요한다. 영어·스페인어로 번역된 『만인보』는 2005년 11월 스웨덴어판이 발간되어 현지 주요 언론의 호평을 한몸에 받았고, '2005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독일·이딸리아·불가리아 등지에서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세계시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대작을 한껏 즐기는 기쁨을 우리 독자들과 널리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