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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고 파고 뽑고 먹고 잡느라 온몸이 채워지는 곳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책장을 펼쳐 넘길 때마다 가을 시골의 풍경이 한 장면씩 차곡차곡 쌓여 간다는 것입니다. 뒷마당과 앞마당에서 시작해 닭장으로, 논과 밭으로, 다시 마을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동안 공간은 넓어지고 경험은 다채로워집니다. 감은 따고, 콩은 까고, 닭장 구경은 까치발을 들고, 경운기에는 올라타고, 논과 밭에는 뛰어들고, 고추잠자리는 잡으러 달려가야 합니다. 게다가 시골에서 만나는 모든 것에는 소리와 움직임이 생생합니다. ‘토실토실’ 감, ‘톡토독 콩콩콩콩’ 콩꼬투리, ‘탈탈탈탈’ 경운기, ‘보라보라’ 가지, ‘쑤욱쑤욱’ 고구마, ‘활짝활짝’ 양배추, ‘고슴고슴’ 밤나무까지, 의성어와 의태어가 말 자체를 통통하게 부풀려 풍성한 생명력을 전해 줍니다. 시골을 어른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대신, 눈앞에 펼쳐진 것을 그저 신기해하고 다음 풍경을 궁금해하며 느끼는 대로 이름 붙인 것들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으며 시골은 더욱 흥미롭게 상상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됩니다. 모두가 함께해서 오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곳 시골은 농작물로도 풍성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빠짐없이 계십니다. 함께 밥을 먹고, 논과 밭을 구경하고, 이것저것 캐고 따며 하루를 보내는 가족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가족의 기억과 연결됩니다. 특히 이 책은 과거를 그리워만 하는 대신, 모든 것이 온전했던 한때의 순간을 지금에 불러내어 경험하도록 해 줍니다. 걱정이 없고, 함께할 사람들이 있고, 눈앞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충분히 좋은 순간. 당시에는 얼마나 귀한지 몰랐을지라도,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순간이 바로 지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일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한 추억일 수도 있고, 친구와 보낸 한때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다시 돌아갈 수 없더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충만한 순간은 고된 날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저자 소개글에서 작가는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시골에 없는 게 생겨 버렸습니다.”라고 전합니다. 항상 그 자리에 계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에 감사할 때 찾아오는 충만함,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한때의 평안함을 담은 이 책의 여운이 그래서 더욱 오래 남습니다. 이대로 충분하고, 그대로 감사함을 배우는 곳 제목의 ‘없는 게 없다’는 모든 것을 다 갖추어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더 이상 욕심낼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시간, 자연의 풍경, 한 끼의 밥처럼 어느 순간 문득 마음속에 가득 차오르는 충만감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감정은 온전하고 평안합니다. 이 책은 무언가를 더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 채워도 채워도 구멍을 메울 수 없는 결핍, 무엇이 진짜 자신을 채워 주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여유 없는 마음들에게 충분함과 충만함이라는 감정을 알려 줍니다. 찬란하게 가득 찼다가 다시 저무는 가을처럼 이런 순간들은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때그때 차오르는 순간들을 붙들고 만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흐드러진 가을 풍경과 꽉 찬 가을 색이 넘치는 곳 『시골엔 없는 게 없지』에는 풍성한 가을 색과 풍경이 가득합니다. ‘꽈악 찬 벼들이 가득한 노오란 논두렁’을 지나 ‘오색 가득한 밭두렁’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가을의 온갖 빛깔과 맛을 한데 모아 펼쳐 두었습니다. 박아림 작가는 이 풍경을 자유롭게 그은 선과 투명하고 싱그러운 색채가 어우러진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또렷하게 구획된 형태보다는 선의 흔들림과 색의 결을 살리고, 밭과 작물, 사람들의 모습이 화면 안에 꽉 차도록 양감을 강조했습니다. 초록과 노랑을 중심으로 보라, 빨강, 주황, 분홍 등의 색이 곳곳에서 튀어나오며 한 가지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가을의 오색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느슨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아이들은 작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고구마 줄기를 한아름 안고, 고추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밭의 일부가 됩니다. 색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냄새로 맡고, 손으로 만지고, 맛으로 기억하는 가을 시골은 이 책의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