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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룻물
양장
이진희 글그림
고래뱃속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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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

글그림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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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교육 철학 모임 〈시습재(時習齋)〉에서 배우며 읽고 쓰는 가운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오래 살도록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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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2쪽 | 278g | 210*210*10mm
ISBN13
9791193138007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품명 및 모델명
벼룻물
재질
종이
색상
상세설명참조
크기/중량
210*10*210mm | 278g
크기,체중의 한계
상세설명참조
제조자/수입자
고래뱃속
제조국
대한민국
취급방법 및 취급시 주의사항 안전표시(주의,경고 등)
아이들이 책을 입에 대거나 모서리에 다치지 않게 주의하세요.
동일모델의 출시년월
2023년 5월
품질보증기준
상세설명참조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상세설명참조
사용연령
4세이상

출판사 리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만남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이라 함은 곧 그로 향하는 길이 결코 쉬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의미할 것입니다. 숭고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내내 잠들어 있으려는 영혼을 살며시 뒤흔들어 깨워야만 하고, 미지의 존재들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인내와 믿음으로 어둠 속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 걸음은 지나치게 가벼워 이제 막 깨어난 부드러운 풀잎을 경솔하게 밟아서도, 지나치게 서두르느라 머물러야 할 곳에 충분히 머무르지 못해서도 안됩니다. 산이 품고 있는 생명들은 겸허한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제 오롯한 숨을 내뿜으니까요. 마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토록 겸손하고도 그토록 희구하는 마음으로 걸을 때에야 우리는 만날 수 있습니다. 이미 영원을 가진 것처럼 과거도 미래도 없는 시간 속을 걸어가는 거북이를, 썩은 자리에서도 기어이 신성한 생명을 틔워 내는 영지를, 그리고 마침내, 사라져 가는 이 땅 위의 ‘시간’들을 그저 하나의 ‘순간’으로 붙박여 두는 투명한 사슴의 눈동자를요.

스스로 세상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

아, 어쩌면 사람이 오래 염원해 온 영원은 그와 같은 경이를 마주하게 되는 만남 그 자체보다도 그 만남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에 깃들어 있는지도요. 먼 길 찬 어둠 속을 걸어 깨끗한 물을 길어 오는 수고를 감내하고서라도 자식에게 지극한 염원이 담긴 미역국을 끓여 주려는 마음, 또 바로 그와 같은 마음으로 새벽의 숲이 건네 오는 시선을 정성스레 그러모아 화선지 위에 펼쳐 놓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끝’을 숙명으로 삼고 있는 ‘살아 있음’에게 ‘영원’이라는 축제를 약속하는 새끼손가락인 것이지요. 그와 같은 시선 속에서라야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내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세상이 나를 담는 그릇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던 것이지요. 새벽의 걸음걸음, 비워내고 닦아내며 더욱 투명해진 시선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마침내 품을 수 있는 세상은 더 넓어집니다.

온전함 속에 머무르는 자유로운 손

나는 이제 곧게 뻗은 뿌리와 올곧게 돋은 심지로 소나무와 바위처럼 쉬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영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르게 휘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인 것처럼, 먹은 마음을 따라 먹을 붓질해낼 수 있으려면 굳은 마디마디 힘을 빼고 홍시처럼 붓을 쥐어야 합니다. 지극한 예술의 기쁨은 ‘완벽함’이 아니라 ‘온전함’ 속에 있다 하던가요. 아버지, 저는 이제 알겠습니다. 새하얀 화선지 위에서 학을 날아오르게 하고 바람을 춤추게 하며 태양과 달을 매일같이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그럴듯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뻣뻣하게 굳은 근육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 나와 내 주변의 세상을 자각하는 소박한 시선 안에 깃들어 있는 한 떨기 자유로운 손짓 안에 있다는 것을요.

한 폭의 그림 안에 깃든 새롭고도 오래된 약속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나선 새벽 숲의 공기가 담긴 벼룻물 안에는 영원을 약속하는 한 폭의 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는 그림, 우리가 그리는 선율, 우리가 그리는 글들은 이미 그렇게 예언처럼 존재하고 있던 것일지도요. 길을 모르는 채로 여정을 나서도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듯,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모르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오래 알아 온 자장가처럼 낯선 선율을 써 내려가듯···. 깨끗한 벼룻물 앞에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선과 색을 깨워내는 것처럼 날아오르는 붓질과 함께 우리는 춤을 춥니다. 영원을 염원해 온 오랜 조상들의 소망은 그저 한낱 허구의 이야기 속에나 나풀거리는 허망한 속삭임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새로이 피어나는 ‘십장생도’가 전해 주듯, 우리 바로 곁에 존재하는 만물 속에서 이미 살아 숨 쉬고 있는 오래된 약속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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