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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과해드립니다
추천의 말_ 박혜진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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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이 사과를 하죠? 대신 해주는 사과 따위 개나 주세요.
쏘아붙이는 말투에 꽃다발을 주지 못하고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 일을 의뢰한 남자는 마흔여섯 살의 택시 기사였다. 어제 전화를 받고 남자가 입원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는 두 다리와 목에 깁스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나를 맞았다. 입술은 보랏빛으로 퉁퉁 부어 있었고 깁스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 마치 남자는 킹크랩 같았다. 남자는 자신이 한 짓을 고백한 뒤 이혼한 아내에게 사과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고 전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대신 왔다고 알려줬다. -죽었어야 했는데. 그래야 결말이 해피 엔딩인데. 사과는 집어치우고 그 인간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읊어봐요. ---p.10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주관한 신부님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를 죽이고 구치소에 들어간 수용자를 대신해 사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이라 망설여졌다. 지금껏 의뢰받은 사과하고는 차원이 달랐지만 결국 수락하고 쏘냐에게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살인자의 사과를 대신 해달라고? 그걸 어떻게 우리가 해? 난 못 해. 쏘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맘에 드는 것만 골라 할 순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죗값을 받아야 할 살인자를 위해 사과를 해달라는 게 말이 돼? ---p.15 책상에 앉아 책을 펴보는데 인스타의 알림톡이 울렸다. ‘사과데이’에 대한 문의였다. 다가오는 10월 24일이 사과데이였다. 사과데이란 사과 향기가 그윽한 10월에 둘이 사과한다는 뜻에서 숫자 2와 4를 조합해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그날만 24퍼센트 할인을 한다고 인스타에 광고를 냈다. 사과 비용은 기본 오만 원이었고 난도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지방일 경우에는 고속버스나 KTX 요금 등 교통비가 추가됐다. 식사비와 쏘리 플라워 비용은 별도였다. 메모 어플에 정리해놓은 걸 복사해 의뢰자에게 보냈을 때 산호가 왔다. -일거리가 많나 보네? -사과데이라고 문의가 좀 들어왔어. 너는 사과할 사람 없어? -나도 있어. 내가 동구 코뼈를 부러뜨렸잖아. ---p.39 -이 일을 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에요. 세상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하고 싶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못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누구는 너무 미안해서 못 하고, 누구는 때를 놓쳐 못 하고, 누구는 너무 멀어서 못 하고, 누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못 하고……. 우린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사과해줌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게 하려는 거예요. 금남철도 그런 상황이에요. 영감님께 직접 사과하고 싶은데 올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p.88 -이 개에게 사과를 해주세요. 분홍색 레깅스가 나를 개 앞으로 밀었다. 물릴까 봐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개는 짖지 않고 나를 응시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까. 쏘리 플라워라도 사다 줘야 할까. 내 생각을 읽었는지 개가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사람보다 개에게 사과하는 게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처럼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p.137 -살인자들은 사람을 죽이고도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자기암시를 한다지. 당신도 하루 종일 자기 세뇌를 했겠지. 친구를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게 자신을 세뇌시키는 놈이 악마가 아니면 뭐겠어. 넌 악마야. 죽은 친구가 사과를 받아줄 거라고 생각해? 아니, 죽은 친구가 사과를 받아줄 거라고 자기암시를 했겠지. 입장 바꿔 생각해봐. 당신이라면 이런 사과를 받아주겠어? ---p.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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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사과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과 대행 서비스’ 주인공 ‘서 사장’이 ‘사과 대행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1년 전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우리 딸과 결혼하려면 교인이 되라”던 여자 친구 어머니의 말에, 서 사장은 성당을 다니는 제 어머니를 속이고 대형 교회에 딸린 재단에서 웃음 전도사로 일했다. 그날도 웃음 강연차 제주도에 내려가 있던 참이었는데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계단에서 쓰러지셨어. 강연장에는 백여 명의 성도가 서 사장을 기다리고 있고, 잘만 하면 강연 후에 잡혀 있는 주최 측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른 교회 강연도 여러 건 들어올 수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누워 자신을 찾는다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강대상에 올라 사람들을 웃겼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강연을 마쳤을 때, 누나에게 부재중 전화가 여섯 통이나 와 있었다. -엄마 돌아가셨어. 장례식이 끝난 뒤 서 사장은 웃음 전도사를 그만두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 성도들을 웃기고 있었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팠다. 전화를 받고 바로 왔다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봤을 텐데 그놈의 강연이 뭐라고. 서 사장은 어머니를 속이고 교회에 나가 웃음 전도사로 일한 걸 사과하고 싶었지만 이젠 사과를 받아줄 어머니가 없었다. “대신 해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대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하면 죽여줄 거야?” 서 사장의 동업자는 고려인이자 어머니의 친구였던 ‘쏘냐’다. 이혼한 아내에게 대신 사과해달라는 의뢰를 마치고 돌아와 인스타그램에 사과 내용을 올리고 있을 때 어머니의 장례미사를 주관한 신부님에게 전화가 왔다. 의뢰 내용은 친구를 죽이고 구치소에 들어간 수용자를 대신해 사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서 사장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이라 망설였지만 신부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수락한다. -살인자의 사과를 대신 해달라고? 그걸 어떻게 우리가 해? 난 못 해. 쏘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맘에 드는 것만 골라 할 순 없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죗값을 받아야 할 살인자를 위해 사과를 해달라는 게 말이 돼? 대신 해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대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하면 죽여줄 거야? _본문 중에서 한편, 남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러 다니는 서 사장에게도 사과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 서 사장의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나오다 계단에 놓인 옥수수를 밟고 굴러 돌아가셨다. 분명한 사고였지만 서 사장은 옥수수를 가져다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알 만한 동네 사람들에게 범인을 아냐고 묻고 다닌다. ‘대리 사과’를 통해 건네고 싶었던 질문 진정한 사과와 용서, 그 끝에 도달하는 구원에 대하여 신부님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구치소에 수감된 남자를 찾아간 서 사장. 남자는 자신은 억울하다며 고의로 친구를 죽이지 않았다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걸 모르고 운전대를 잡은 것뿐이라며 친구의 죽음이 사고임을 주장했다. 서 사장과 쏘냐는 남자를 만난 후 죽은 친구의 할아버지를 찾아가지만, 멀쩡한 손자를 하루아침에 잃은 할아버지는 당연히 남자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대리 사과라니.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을 이렇게 쉽게 사과하고 용서할 수는 없다. 많은 사과가 그렇듯, 서 사장의 사과 대행 역시 쉽지 않다. 시원한 웃음보단 씁쓸한 끝맛만 남는 사과 대행 서비스를 통해 작가가 건네고 싶었던 질문은 무엇일까. 과연 이 대리 사과는 진정한 용서를 넘어 구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번 가을 고요한 소설가의 『대신 사과해드립니다』와 함께 사과 여행을 떠나 보자. 소설과는 조금 달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때 신부님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눈물을 흘렸다. 이젠 됐다고.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제 어머니와 살았던 시골집은 폐허가 되었다. 그 폐허에는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폐허 위에 소설이라는 꽃을 피워보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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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질문을 경쾌하게 풀어내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심오한 주제를 조율해내는 고요한의 시선은 이제 한껏 무르익었다. 사과를 전하러 다니는 여정 곳곳에는 한 동네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하고 우스운 활기가 끼어들고 그 활기는 슬픔을 억지로 가리는 대신 슬픔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온기를 더한다. 소설을 덮고 나면 마음에 이상하리치만치 생생한 온기가 느껴질 것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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