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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1부 _009
2부 _105
3부 _185
4부 _261
5부 _327
6부 _403

저자 소개 1

198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를 수료했다.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원초적 취미>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2009년 계간 《문학동네》에 발표한 <갈매기는 끼룩끼룩 운다>가 2010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고, 2010년 계간 《자음과모음》에 발표한 <머리 위를 조심해>가 2011 젊은 소설에 선정되며 일찌감치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로 제4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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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115*188*35mm
ISBN13
9791141603748

책 속으로

애리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을 때, 손님의 뺨에는 투명한 눈물이 예고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애리는 손수건을 찾기 위해 앞치마 호주머니를 뒤졌으나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애리는 티슈를 여러 장 뽑아 손님에게 건네며 물었다.
“누가 죽었어요?”
손님은 애리가 건네는 티슈와 손을 함께 움켜쥐며 대꾸했다.
“네, 제가 결혼해요.”
애리는 세면대에 거품을 뱉곤 거울을 향해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반듯한 이마가 한껏 구겨졌다 도로 펴졌다. 근규를 처음 만난 날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어쩌면 애리는 근규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사랑을 예감했는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선명하여 농도 짙게 아려오는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p.65~66

기억이 재현되는 방식은 언제나 연쇄적이다. 돌아온 그 시간이 어떻게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끈적끈적한 액체가 되어 근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근규는 거울을 보고 싶은 충동에 눈동자를 굴려 상담실 내부를 훑었으나 어디에도 얼굴을 비출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인을 알 수 없는 눈동자들이 근규를 둘러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중 최현민의 등뒤로 떠올라 근규를 노려보는 사람은 진작에 흘려보냈던 그년과 닮아 있었다.
지금 내 얼굴의 주인은 누구인가.
김근규인가,K인가.
그것을 알 수 없었던 근규는 고개를 떨어뜨리고선 다시 들지 못했다. 샤워기 아래 식어가는 몸을 방치하는 지금처럼.
---p.123

“네 이니셜 트리플 케이구나.”
영어 학원 교재에 이름을 적는 근규에게 세나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트리플 케이, 근규는 그 명명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부지런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어른들이 강제한 이름 김근규. 근규는 단 한 순간도 그 이름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K.K.K.
근규는 자신이 셋으로 분절된 것처럼 느꼈고 그 감각이 기꺼웠다. 첫번째 성씨인 K가 집과 학교에서의 김근규라면 두번째는 세나의 친구 K, 세번째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작가 K였다. 첫번째를 제외한 K들이야말로 근규가 느끼는 괜찮은 자신이었다. 근규는 자신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p.237~238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네가 날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욕심을 내가 감히 부려도 되는 걸까. 이해받지 못하는 면을 근규만큼이나 겁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헤어지지 않았어. 내가 도망친 거야.”
그럼에도 근규는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이것은 근규에게 도박이다.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비난할 순 없다고. 아니, 상대가 너이기에 네가 날 비난하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p.378

“나는, 나는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좋지 않은 일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잘 지내고 있었고 …… 벌써 오래전의 일이고, 내 잘못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때 내가 ……”
“뭘 잘못했는데요? 근규씨 말이 맞아요. 피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죠. 아무나 피해자가 될 수도 없어요. 피해자란 게 법적으로 말하자면 싸울 준비가 된 사람이란 뜻이나 다름없거든. 모든 이들이 그런 각오를 하진 않아요. 내가 나빴다, 내가 나인 게 문제다, 하고 넘어가버리기가 부지기수죠. 또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입은 게 피해인지 몰라서 피해자가 되지 못하기도 해요.”
---p.425

“하지만…… 우리가 헤어지면 어떻게 해?”
근규가 몸을 틀어 애리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서로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해?”
애리는 물에 젖어 검게 보이는 보랏빛 단발머리를 이마 너머로 넘긴다. 애리의 시선에 근규의 피부가 따끔거린다. 애리의 속눈썹에서 물방울이 하나 톡 떨어진다. 애리가 근규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그래도 나는 언니 곁에 있을 거야. 언니를 아끼는 사람으로 남아 언니를 응원하고 지지할 거야. 언니가 다시는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멀리서 나는 그럴 거야.”
---p.448

진실은 조용히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엔 언제나 비명이 동반된다.
근규는 입술 밖으로 흘러내리는 질문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는 뭘 하고 싶었어요? 날 가지지 않았다면, 외할머니가 엄마를 아버지 방에 밀어넣지 않았다면 뭐가 되고 싶었어요? 엄마는 왜 나를 지우지 않았어요? 내가 싫어진 게 엄마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어? 아니면 처음부터 내가 싫었어? 내가 자꾸 죽으려고 해서 지쳤던 거야? 그래서 내가 엄마를 죽고 싶게 만든 거예요?”
---p.506

출판사 리뷰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텔레비전 속에서 웃고 있다
사랑의 외피 아래 감춰진 폭력, 그 겹겹의 진실을 향하여

소설은 아이를 등에 업고 부엌에 선 근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겉으로는 의사 남편과 귀여운 딸을 둔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근규의 유일한 기쁨은 열세 살 어린 동성 연인 ‘애리’와의 밀회다. 두 개의 삶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그래,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어”(20쪽)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근규의 일상은 어느 날 텔레비전 속 한 남자를 발견하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아이돌 그룹 출신 쇼호스트 ‘정희주’의 남편이자 유명 부부상담센터 원장으로 승승장구중인 ‘최현민’. 그는 근규에게 처음 사랑을 알려준 ‘복연’의 아들이자 근규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수년 전, 현민은 제 어머니의 애인인 근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연은 근규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아들에게 칼을 들고 근규를 향해 외친다. “도망쳐, K.”(350쪽) 그후 근규는 현민이 죽었으리라 믿은 채 결혼으로 도피했다. 그런데 최현민이 버젓이 살아 텔레비전 화면 안에서 너털웃음을 치고 있다니. 충격에 휩싸인 근규는 내담자로 위장해 최현민의 상담센터를 찾아간다. “부부 문제라고 하셨죠. 어떤 문제가 있나요?”(111쪽) 근규를 알아보지 못한 최현민의 태연한 질문 너머로, 근규 안에 잠들어 있던 또다른 자아 ‘K’가 다시 고개를 든다. 거울을 볼 때마다 근규를 노려보는 낯선 얼굴은 그가 버리고 외면해온 자신의 일부다.

그날 시작된 모든 것을 되돌리려면, 근규는 결국 그날 그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 애리를 이끌고 복연과 살던 옛집을 찾은 근규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애리에게 그날의 일을 털어놓는다. “신고는 했어?”(381쪽) 애리가 던진, 단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가능성, 그리고 먼지 쌓인 방에서 발견한 복연의 노트 한 권. “신경 쓰이는 아이가 있다.”(384쪽) 복연의 글씨로 남은 그 시절의 자신과 마주한 근규는 마침내 봉인된 과거에 맞설 준비를 시작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그날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동시에 근규를 둘러싼 인물들의 상처를 낱낱이 헤아려 복잡하고 입체적인 삶의 모양을 묘파한다. 언제나 거침없고 당당해 보이는 애리에게도 열다섯 살, 닿을 수 없는 사람을 마음에 품었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딸의 결혼을 제 삶의 성공처럼 여기며 근규를 옥죄어온 엄마 역시 한때는 누군가의 뜻에 떠밀려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던 딸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들이 있지. 사랑도 마찬가지야.”(313쪽) 복연의 이 한마디는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친구와 연인, 가족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랑이라 믿어온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어왔음을 『레츠 비』는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모두의 A가 아니라 나만의 B를 향해 나아가도 된다고.”
스스로 존재하기를 택한 이들의 이름, 레츠 비

소설의 제목 ‘레츠 비’에는 여러 의미가 겹쳐 있다. 양성애를 뜻하는 바이섹슈얼(Bisexual)의 B, ‘존재하다’를 뜻하는 영어 동사 Be, 그리고 모두의 정답 A 대신 나만의 답을 뜻하는 B…… 여기에 한 장면이 더 포개진다.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인 ‘세나’와 주고받은 편지가 발각되던 날, 딸을 무릎 꿇린 아버지는 묻는다. “너, 네가 레쓰비언이냐?”(246쪽)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를 캔 커피 상품명으로 잘못 발음한 이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는 소설을 거치며 ‘Let’s Be’에 사람을 뜻하는 ‘-an’이 붙은, 자기 자신으로 서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명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근규가 나고 자란 ‘이 도시’의 공간성 또한 근규의 상처와 맞닿아 있다. “어떤 핏물을 밟고 마시며 자라고 있는지를”(281쪽) 배워온 아이들, 그리고 편견과 낙인을 피해 말씨를 고치고 고향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던 어른들이 공존하는 도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공간이자 지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출신지로서의 ‘이 도시’는 상처를 다루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다. 근규는 상처를 억지로 지우는 방식으로는 결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고향 땅 위에서 깨달아간다.
스스로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혼란해하는 근규에게 애리는 말한다. “난 사실 모든 사람이 퀘스처닝중이라고 느껴.”(437쪽) ‘퀘스처닝’이란 질문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레츠 비』에서 퀘스처닝은 성 정체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로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고 무엇을 폭력이라 부를 것인가. 정해진 답 앞에서 끊임없이 되묻고 흔들리며 저만의 답을 고쳐 써나가는 근규의 모습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퀘스처닝임을 일깨운다.
소설 초반, 애리를 기다리던 근규는 공기 탈취제의 레버를 한 번 당기고는 곧장 후회한다. ‘숲속 향기’라는 이름의 인공적인 향을 맡으며 근규는 그것을 만든 이가 “필시 숲이라곤 가본 적 없는 사람일 것”(23쪽)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근규 자신도 제대로 된 숲에 가본 적이 없다. 흉내낸 숲의 향기 속에서 숨죽여온 근규가 진짜 숲의 냄새에 닿기까지,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이 여정은 한 사람이 비로소 자신이 “숨쉴 수 있는 자리”(534쪽)를 찾아가는 기록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근규만의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 반드시 당신의 자리가 있으리라는 단 하나의 희망”(작가의 말)이 이 소설을 펼칠 모든 이에게 가닿을 것이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

‘읽는’ 소설에서 ‘보는’ 소설로

국내 최고의 작가들이 만들어나가는
무수한 취향의 테마파크!
흥미진진하고, 몰입감 높으며,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남기는
웰메이드 장편소설의 퍼레이드가 펼쳐집니다.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플레이(PLAY)’라는 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 읽기를 ‘놀이’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문학 테마파크를 지향한다. 또한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쓰이지 않은 감각적이고 탄탄한 장편소설을 엄선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생’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문학을 선보이고자 한다. 앞으로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는 평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국내 최고의 작가들과 함께하며 재미와 감동을 함께 전하는 뛰어난 작품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추천평

당하거나 빼앗겼든, 숨기거나 회피했든, 애초에 없거나 몰랐든, 자신과의 괴리를 겪는 이유는 나를 살고 있지 않아서다. 나를 살려면 나를 찾아야 하고, 나를 찾는 길은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 말고는 없다. 무력해서 당한 폭력과 억압의 기억을 뒤져, 그 장면에 눌어붙어 있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두려움을 노려보아야 한다. 노려볼수록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해석이 달라지며, 자신의 과녁과 마주하게 된다. 『레츠 비』의 서사와 문장들은 자신의 과녁을 찾아 내면의 동굴 앞에 선 사람들에게 소설가 이수진이 건네는 전짓불이자 화살이다. -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소설가)
어머니와 딸, 친구와 연인이라는 우리의 오랜 적들. 서로에게 구원이기를 바랐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들에게 이 소설은 묻는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이 두려웠으며, 무엇으로부터 도망쳤는가. 물음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뿐이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워두었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수진 작가는 겹겹이 쌓인 사랑과 욕망의 지층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마침내 오랜 침묵을 폭발시킨다. - 정한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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