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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토니오 크뢰거
에세이_ 이소호

저자 소개 2

저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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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ann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에게는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는 소위 니체가 말하는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모순]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토마스 만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족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자로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된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토마스 만은 일찍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1893년에는 산문 습작을 했으며, 자신이 발간하는 『봄의 폭풍우』지에 글을 기고했다. 토마스 만은 다니던 김나지움을 그만두고 가족이 이미 1년 전에 이주한 뮌헨으로 가서 화재 보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하지만, 곧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1895년에서 1896년까지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시절, 김나지움 시절부터 이미 그를 사로잡았던 슈토름, 헤르만 바르, 폴 부르제, 헨리크 입센 등을 탐독하였고, 직접 『짐플리치시무스』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이 무렵 단편소설들을 모아 단편집『토니오 크뢰거』(1903)도 발표하였다.

1905년 뮌헨 대학교 수학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카챠라는 애칭으로 불림) 프링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가 태어났다. 하지만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의 두 여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듯이,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고,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다가 남편을 잃은 모니카 만은 정신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1912녀 폐병 증세가 있어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문병을 간 토마스 만은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 체류하는 손님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느낀 인상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런 체험을 글로 쓰기 시작, 점점 방대해져 12년 후에 완성된 것이 『마(魔)의 산』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평론집 『비정치적 인간의 성찰』(1918)과 같은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독일 문화와 독일 시민 계층의 와해를 걱정하며 국수주의적 입장을 보이며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게 되지만, 평론「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 계급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던 중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31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이후 나치에 협조하지 않은 작가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1933년 바그너 서거 50주년이 되던 날, 토마스 만은 뮌헨 대학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뇌와 위대성]이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끝으로 그는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35년에는 나치 정권에 대해 공개 반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193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주, 프린스턴 대학의 객원 교수가 되어 나치 타도를 부르짖었으며,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으로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토마스 만은 현실의 공산주의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인 사회적 평등을 존중했다. 그래서 구동독 정권에 대해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매카시 위원회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다. 이에 환멸을 느낀 토마스 만은 1952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향했다. 1955년 동독 및 서독에서 F.실러 사망 150주년 기념강연을 하고, 고향 도시 뤼베크의 명예시민이 되어 스위스로 돌아왔지만, 혈전증 진단을 받아 8월 12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교회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저서로는 『키 작은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1897),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1901), 「트리스탄Tristan」(1903), 「굶주린 사람들Die Hungernden」(1903), 「글라디우스 다이Gladius Dei」(1903), 「토니오 크뢰거」(1903), 「신동Das Wunderkind」(1903), 「벨중족의 혈통」(1905), 「피오렌차Fiorenza」(1906), 「대공 전하」(1909),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 「주인과 개Herr und Hund」(1919), 『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무질서와 젊은 날의 고뇌」(1926)등이 있으며, 『요셉과 그의 형제들』(1943)는 1926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야 비로소 완간되었다.

또한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1939),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1947), 『선택받은 사람』(1951), 「속은 여자Die Betrogene」(1953)가 있으며,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Die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이 소설은 그의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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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번역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독과를 졸업했다. 역서로『빌둥』,『죽은 자가 말할 때』,『자유로운 이기주의자』,『당신의 속도로, 당신의 순간에, 날마다 용감해지기』 등이 있으며 출판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다양한 분야의 독일서를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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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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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0.9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6.5만자, 약 2.1만 단어, A4 약 41쪽 ?
ISBN13
9791175918634

출판사 리뷰

20세기 독일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토마스 만이
스물일곱에 완성한 자화상이자 모든 예술가의 초상


예술과 삶, 정신과 육체의 긴장을 끝까지 파고든 위대한 사유의 작가이자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이 ‘일종의 자화상’이며 “모두 그곳에 있다”고 밝힌 소설 《토니오 크뢰거》가 위픽 클래식으로 출간된다. 《토니오 크뢰거》는 예술가의 본질을 심미적이고 귀족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이고 평범한 것에 대한 사랑, 이른바 ‘시민적 사랑’에 둔다. 카프카의 오랜 벗이자 작가인 막스 브로트는 프란츠 카프카 역시 “크뢰거의 이야기를 사랑했고, 만의 글을 한 줄도 빠짐없이 경건하게 찾아 읽었다”고 회고했다.

북독일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토니오 크뢰거는 검은 머리와 이국적인 외모, 시인의 예민한 기질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게 ‘길 잃은 시민’이 된 토니오는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간다. 그곳에서 시인으로서 명성과 기교를 쌓아가지만, 예술적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그는 점점 더 차갑고 메마른 인식자가 된다. 삶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위기감과 예술의 대가로 삶 바깥에 머물러야 한다는 좌절감 속에서도 토니오는 “금발과 푸른 눈의, 삶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들”을 끝없이 동경한다. 그리고 13년의 여정을 끝으로 자신은 결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음을 절절히 깨닫는다.

‘나는 왜 이들과 다른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평생에 걸쳐 되물었던 단 하나의 질문


1929년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의 문학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나는 왜 이들과 다른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거쳐 《파우스트 박사》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가까이 그의 작품을 관통한 그 질문이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인 형태로 터져 나온 작품이 바로 《토니오 크뢰거》다.

실제로 뤼베크의 곡물상이던 아버지와 브라질 태생의 어머니를 둔 토마스 만은 자신의 삶을 소설 한가운데 세워둔다. 열네 살 토니오는 한스 한젠을 사랑하지만 한스의 관심은 늘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게 향하고, 열여섯 살 무도 강습에서는 금발의 잉에보르크에게 빠지지만 명랑한 잉에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토마스 만은 “자신이 사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사랑하면서 사랑을 분석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토니오의 일생을 톺아 조명한다. 이러한 토니오의 성장담은 토마스 만이 죽을 때까지 숭배했던 바그너의 음악처럼 아름다운 이미지와 문장으로 변주되어 당대 청춘을 위한 교향곡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 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이 지극히 사적이면서 더없이 보편적인 이야기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혼자였던 적이 있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쪽에 서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온다. 그 다름이 결국 삶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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