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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권태응 동요 이야기
이오덕
소년한길 200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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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한길 어린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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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한평생과 작품
농사일을 보여주는 동요
아이들의 삶과 마음
'감자꽃' 이야기

2.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노래
나라와 겨레를 생각함
사람다운 마음

3. 온갖 형태로 나타난 운율
푸짐한 우리말
산문과 절필, 연보
동요찾아보기

저자 소개 1

李五德

1925년 11월 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이던 1986년 2월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이원수의 권유로 어린이문학 평론을 쓰게 된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1977년에 어린
1925년 11월 4일에 경북 청송군 현서면 덕계리에서 태어나 2003년 8월 25일 충북 충주시 신니면 무너미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 열아홉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예순한 살이던 1986년 2월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스물아홉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처음 만났고, 다음 해에 이원수가 펴내던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이원수의 권유로 어린이문학 평론을 쓰게 된다. 1973년에는 권정생을 만나 평생 동무로 지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1977년에 어린이문학 평론집 『시정신과 유희정신』을 펴냈다. 이 책에서 절대 자유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한 어린이문학 정신을 ‘시정신’, 그에 반하는 동심천사주의 어린이문학 창작 태도를 ‘유희정신’이라 했으며,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문학의 ‘서민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어린이문학인이 새로운 문명관과 자연관, 아동관에 서지 않고서는 진정한 어린이문학을 창조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가들과 함께 어린이문학협의회를 만들었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2003년 작고 전까지 아동 문학 평론가로서 어린이들이 올바른 글쓰기 교육을 하도록 이끌었고,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어린이문학협의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들을 꾸렸으며,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여는 바탕이 되었다. 한국 아동문학상과 단재상을 받았으며, 어린이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 일과 어린이 문학, 우리말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쳤다.

그동안 쓰고 엮은 책으로 『아동시론』, 『별들의 합창』, 『까만 새』, 『시정신과 유희정신』, 『일하는 아이들』, 『삶과 믿음의 교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이 땅의 아이들 위해』, 『울면서 하는 숙제』, 『종달새 우는 아침』, 『개구리 울던 마을』, 『거꾸로 사는 재미』, 『삶·문학·교육』, 『우리 문장 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참교육으로 가는 길』,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문학의 길 교육의 길』, 『나무처럼 산처럼』, 『어린이책 이야기』,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감자를 먹으며』, 『우리 말 살려쓰기(하나),(둘)』, 『고든박골 가는 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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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오덕
1925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1944년부터 퇴직하기까지 43년 동안 교사로, 아동문학가로 지냈다. 제2회 한국아동문학상, 제3회 단재상을 수상했으며 농사를 짓는 아들손자 내외와 함게 충주에 살면서 우리 말 살리기 운동과 어린이문학 연구, 그리고 글쓰기 교육 운동을 계속해 왔으며, 2003년 8월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597g | 153*224*30mm
ISBN13
9788935652761

책 속으로

'풀섶'은 원고에 '풀섭'이라 적어 놓은 것을, 받침을 잘못 쓴 것이라 보아서 '풀섶'으로 고쳐 썼다. 이 말을 또 사전에 찾아 보니 없다. 지방 말을 올려 놓은 한글학회 사전에는 '풀숲'이 표준말이니 거기를 찾아 보라고 했다. '풀섶'은 함경남도 사투리라 했는데, 이 동요에 나오는 것과 같이 충청도에도 썼고, 내 고향 경상도 사람들도 잘 아는 말이다. 그리고 '풀섶'과 '풀숲'은 좀 다른 말이다.

'장끼'는 수꿩을 가리키는 말. 암꿩은 '까투리'라 한다. 닭은 숫놈을 장닭이라 하과, 소는 숫소를 황소라 한다. 이런 말을 요즘 젊은이들이 잘 분간해서 쓰지 못하니 안타깝다.

'꼭대'는 '꼭대기'란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이런 말도 요즘 신문기자들이나 방송인들은 쓸 줄 모르고 '산정' '정상'이라고 하지.

'산등성이' '산등'이라고 할 것을 '능선'이라 하고, '골짜기'는 모조리 '계곡'이라고 하니, 우리 말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는지 답답하다.

--- p. 335

출판사 리뷰

『감자꽃』으로 유명한 동요작가 권태응의 문학세계 본격 조명
『감자꽃』이란 동요로 유명한 고(故) 권태응. 권태응의 동요 세계는 그동안 그 본질이 왜곡 · 탈색된 채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이원수의 『고향의 봄』만큼이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자꽃』이지만, 권태응 자신이 의도했던 농사꾼과 농촌, 농촌 아이들의 해맑은 정서가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권태응 문학세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을 배제한 채 도시감각 위주의 문학평론으로 그의 동요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동문학가인 저자가 기존 작품 이외에 미발표 동요 214편과 권태응의 대표작인 『감자꽃』에 대해 새로이 해석하고, 권태응 아동문학의 현재적 의의를 연구한 책이다.

저자는 권태응의 문학세계에 대해 농사꾼과 농사꾼 아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는 것을 먼저 강조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몇천 년을 살아온 역사는 바로 땅을 갈아 곡식을 심어 가꾸면서 살아온 농사꾼의 역사라는 것을 볼 때, 우리말의 알맹이는 농민들의 말이고, 우리 문화의 바탕은 자연 속에서 일하면서 살아온 농민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권태응의 작품이 갖고 있는 소중함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산업사회 이후 모든 것이 편리성과 도시화로 귀결되어 버린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요즈음의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세계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 별로 없고, 비록 그러한 작품이 있다하더라도 어른들의 시각에서 해석된 아동문학만이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권태응의 문학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화 · 산업화 사회 속에서 제대로 해석될 여지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굳이 그 본질을 짚어야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시인의 동요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왜 이렇게 오늘날 이 막가는 세상판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권태응의 동요가 오늘날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씌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이 사회질서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고, 그저 그 옛날 벌써 사라진 우리 조상들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서 감상에 젖는 한편, 그 가난하게 살던 시대에 견주어 지금 우리들은 참 잘살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자료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추천평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

한때 동요로 널리 불렸던 `감자꽃` 으로 유명한 동요시인 권태응(1918∼1951)은 충북 충주 칠금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1932년 충주 교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이 중국에 쳐들어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에 제일고보(지금의 경기고교)를 졸업했다. 그후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과에 입학했지만, 1939년에 '독서회' 사건으로 1년 동안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 갇히게 되고 학교도 중퇴당했다.

감옥에서 폐결핵에 걸리게 되자 1940년 6월 출옥하여 고국에 돌아왔다. 1941년 인천 적십자요양원에 입원, 3년 동안 요양생활을 하다가 1944년 퇴원해서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주로 충주의 고향집이나 그 밖에 농촌에서 지냈다.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하여 두 차례 피난을 하게 되고, 요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피난생활에서 병세가 악화되어 1951년 3월, 33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968년 5월 5일, 제8회 어린이날에 윤석중 선생과 이해곤 동문 등의 후원으로 지금의 탄금대에 「감자꽃」 노래비를 세웠다. 한국 아동문학사상 농촌과 자연 속의 삶을 가장 잘 묘사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감자꽃」「고추밭」「율무」「옹달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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