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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_· 저자 소개 _1부 _ 진화하는 영화관1장 영화야,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거야1. 영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2. 팬데믹 이후 팬덤 헤게모니 /3. 이벤트적 상영과 영화제의 재발견 /4. OTT 시대와 영화라는 개념의 재정의 /5. 극장은 어떤 공간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2장 지워진 용어 ‘활화(活?)’에서 연쇄극(連鎖劇)으로1. 들어가며: 포스트 스크린 시대의 개막 /2. 한국 최초 상설상영관인 야외 상영관으로서의 ‘동대문 활동사진소’ /3. 지워진 용어 ‘활화(活?)’: ‘살아있는 그림’으로서의 스크린 문화 /4. 활화로서의 연쇄극과 단성사: 상연되는 활화 /5. 나가며: 활화에서 시네미디어로 /2부 _ 포스트 시네마의 관객3장 두 시간 남짓의 삶1. 계승인가 변절인가 /2. 자발적인 감금 /3. 거울 스크린 /4. 사랑에 관하여 /4장 ‘볼’ 필요가 없는 영화들1. ‘보기 귀찮아 하는’ 관객을 전제한 콘텐츠들 /2. 이미지가 할 일을 대사가 대신할 때 /3. 왜 이런 콘텐츠가 많아졌나 /4. 본편을 보기 전에 이미 알게 되는 것들 /5. 극장은 답이 아니라 조건이다 /6. ‘봐야만 하는 영화’의 가치 /3부 _ 살아 숨 쉬는 영화관5장 용문객잔에게 안녕, 을 고하기 전에1. 극장은 죽었다? /2. 공간 페티시-공간의 육체를 관음하는 카메라 /3. 분비하는 몸-유기체의 증거 /4. 구멍-떠도는 몸들이 조우하는 교차점 /5. 걷는다, 고로 살아 숨 쉰다-미술관에서의 보행 /6장 소란에서 침묵으로, 그리고 다시 응원의 공간으로1. 소란의 무성영화, 침묵의 유성영화 /2. 100년 만에 돌아온 목소리 /3. 영화관으로 간 TV와 OTT /4. 이어지는 극장의 진화 /4부 _ 경계에 선 영화인7장 우리가 집에서 보는 그것은 여전히 영화인가1. 극장에 가는 사람들 /2. 아카이브의 주체에서 흔들리는 ‘핸드헬드'의 주체로 /3. 거장들의 자발적 연대가 증명하는 ‘극장성’ /4. 액체로 흐르는 영상 /5. 다시, 영화관에 간다는 것 /8장 영화관의 변신과 영화의 은밀한 매력1. OTT 시대 영화관의 위기 /2.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 영화관의 무거운 현재와 암울한 미래 /1) 과거 영화의 전성시대와 현재 영화관의 폐관2) 영화의 다양성과 멀티플렉스의 어두운 미래 /3) 영화인의 생존전략과 한국영화의 미래3. 〈극장의 시간들〉: 영화/현실의 경계와 영화관의 미래 /1) 〈침팬지〉: 현실/환상의 경계와 관계의 의미 / 2) 〈자연스럽게〉: 현실/영화의 경계와 영화의 자기반영성 /3) 〈영화의 시간〉: 극영화/다큐멘터리의 경계와 영화관의 의미 /4. OTT 시대 영화관의 아우라와 영화의 은밀한 매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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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사라지는 대신 변해왔다1부 ‘진화하는 영화관’에서 정민아는 팬데믹 이후의 위기를 영화사의 여러 전환과 나란히 놓는다. TV의 보급과 블록버스터의 획일화가 영화의 종말을 불러오지 않았듯, OTT 시대에도 영화는 새로운 형식과 관람 경험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영화관의 생존은 대형 화면과 첨단 음향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낯선 영화를 발견하게 하는 큐레이션, 상영 전후의 대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 극장의 고유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본다.김연호는 시선을 초기 한국의 스크린 문화로 돌린다. ‘활화’라는 말과 동대문 활동사진소, 광무대와 단성사, 변사와 연쇄극을 추적하며 오늘날의 다중 스크린과 퍼포먼스가 디지털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는 처음부터 무대와 스크린, 필름과 현장 공연이 뒤섞이는 문화였다. 극장을 고정된 상영 장소가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매체와 관객이 만나는 장으로 보는 이 글은, 책 전체의 역사적 토대를 놓는다.관객의 시간과 눈을 다시 생각하다2부 ‘포스트 시네마의 관객’은 관람 방식의 변화를 파고든다. 김현승은 두 시간 남짓 한자리에 머무는 극장 관람을 ‘자발적인 감금’이라 부른다. 빨리 감기와 요약 영상이 시간을 절약해준다고 말하는 시대에, 영화가 요구하는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은 다른 삶과 감각을 받아들이는 경험이 된다. 그에게 극장은 영화를 소비하는 장소인 동시에, 영화와 함께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다.송상호는 쇼츠와 결말을 알려주는 리뷰 영상, 화면의 정보를 대사로 거듭 설명하는 콘텐츠를 통해 관객의 눈을 믿지 않는 영상 환경을 비판한다. 영화의 이미지와 리듬은 관객이 직접 보고 따라갈 때 비로소 작동한다. 그래서 극장은 답이라기보다 조건이다. 관객이 끝까지 봐야만 완성되는 영화가 가능하도록, 시선을 붙들고 낯선 작품과의 만남을 마련하는 조건 말이다. 두 글은 ‘어디서 보느냐’의 논쟁을 넘어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살아 있는 공간, 다시 모이는 사람들3부 ‘살아 숨 쉬는 영화관’에서 이승희는 차이밍량의 영화 속 낡은 극장과 늙어가는 몸을 함께 응시한다. 극장은 쇠락한 건축물이 아니라 기억과 소리, 몸의 흔적을 품은 유기체처럼 그려진다. 인물이 극장의 복도와 폐허를 느리게 걷는 장면은 영화가 극장을 떠나 미술관으로 이동하는 과정과도 맞물린다. 공간을 오래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관객을 새로운 감상의 장소로 이끈다는 해석이다.송영애는 무성영화 시절 관객의 소란에서 유성영화의 침묵으로, 다시 콘서트 실황과 싱어롱 상영의 환호로 이어지는 극장 문화를 살핀다. 영화관은 애초부터 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었고, 관객이 함께 웃고 반응하는 공간이었다. 오늘날의 변화 역시 극장의 종말이라기보다 공동의 감각을 나누는 공간으로의 재편일 수 있다. 이승희가 극장을 기억을 품은 몸으로 바라본다면, 송영애는 그 몸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관객들을 조명한다.영화의 미래를 지탱하는 사람들마지막 부 ‘경계에 선 영화인’은 영화관의 현재를 기록하고 사유하는 영화인들의 시선에 주목한다. 이지혜는 다큐멘터리 〈미스터 김, 영화관에 가다〉에서 김동호의 흔들리는 카메라를 읽어낸다. 극장을 직접 찾아 걷고 기록하는 몸짓은 영화가 데이터로 유통되는 시대에 물리적 장소의 의미를 되묻는다. 집에서 보는 영화도 영화일 수 있지만, 극장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함께 영화가 하나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서곡숙은 이 다큐멘터리와 옴니버스 영화 〈극장의 시간들〉을 나란히 분석한다. 전자가 영화인들이 말하는 영화관의 사회적 공유 경험을 담는다면, 후자는 〈침팬지〉 〈자연스럽게〉 〈영화의 시간〉을 통해 현실과 영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흔든다. 서로 다른 형식의 두 작품은 영화관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면서 영화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영화와 영화관』의 미덕은 극장을 향수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이 책은 위기의 원인을 산업 구조에서 찾고, 관객의 습관을 살피며, 초기 상영 문화의 역사와 동시대 영화의 형식까지 함께 논한다. 그 덕분에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영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확장된다.영화관의 미래를 단일한 해법으로 제시하지 않는 점도 책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극장은 스펙터클을 키우거나 공동체적 상영을 회복하며, 때로는 미술관과 공연장의 경계로 이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 속에서도 영화가 관객의 시간을 붙들고, 서로 다른 삶과 감각을 만나게 하는 힘을 잃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이 옹호하는 것은 건물로서의 극장만이 아니다. 함께 보는 행위가 영화에 더해온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 경험을 다음 세대에 건네려는 비평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와 영화관』은 극장의 위기를 다룬 책인 동시에, 영화가 아직 우리 사이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믿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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