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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성 상귀의 성 하해설 : 가정소설의 문법과 반봉건적 인식의 조우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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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人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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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성 없는 소설이라는 오래된 혐의임화는 《귀의 성》을 두고 “후진하고 비속한 독자층의 애독물”(〈개설조선신문학사〉)로 폄하했고, 김윤식 역시 이 작품을 “가부장제에 바탕을 둔 고대소설의 연장선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정치소설’의 결여 형태로서의 신소설〉) 작품이라 평가했다. 이인직의 대표 작품인 《혈의 누》가 청일전쟁과 국제 정세라는 거시 정치를 배경으로 삼은 것과 비교하면 《귀의 성》은 확실히 왜소해 보인다. 실제로 《귀의 성》은 ‘가정소설’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세상에 나왔다. 1907년 6월 2일자 《만세보》에 실린 《귀의 성》의 광고는 이 소설을 ‘가정소설’로 표방하고 있다. 처첩 갈등처럼 다부제(多婦制) 아래서 빚어지는 가정 내의 희비극은 당대 대중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야기 문법이었다. 《혈의 누》가 제시했던 국가 단위의 정치 대신, 첩과 본처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서사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정치그러나 신소설은 무엇보다 1900년대 사회와 상호작용한 결과물이었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은 가정소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귀의 성》의 가족 서사는 1900년대 사회의 모순이 고이고 분출되는 공간인 것. 이것이 《귀의 성》을 낡은 가정소설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가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첩이 되어 시집도 친정도 아닌 자리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길순의 처지, 본처의 투기가 살인으로 비화하는 과정, 계집종 점순이 뒤로 꾸미는 흉계?이 모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미시 정치다. 《귀의 성》을 포함해 거의 모든 신소설의 중심에는 이러한 미시 정치를 온몸으로 통과하는 젊은 여성이 자리한다. 《혈의 누》의 옥련이 그러했듯, 《귀의 성》의 길순 역시 그 자리에 있다.■ 두 개의 서사, 하나의 질문더구나 《귀의 성》은 처첩 갈등 하나로 완결되는 소설이 아니다. 본처의 사주를 받은 계집종 점순과 정부 최가가 춘천집 모자를 살해하는 전반부의 축이 고소설의 문법을 계승한 것이라면, 그 죽음을 알게 된 강 동지가 벌이는 후반부의 복수극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돈을 위해 딸을 첩으로 들여보냈던 수동적인 인물 강 동지는, 딸의 죽음 앞에서 능동적인 존재로 바뀐다. 그는 점순과 최가를 직접 처단하고 김 승지 부인마저 죽인 뒤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토해 내는 적개심은 단순한 부정(父情)을 넘어 첩을 ‘상년’으로 취급하는 신분 질서 전체를 향한다. 익숙한 가정소설의 틀 위에, 신분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새로운 서사가 포개어지는 것이다.■ 서출(庶出)이 그린 축첩제의 파산이인직은 우의정과 좌의정을 배출한 명문가의 후손이었지만, 정작 서출이라는 이유로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귀의 성》이 축첩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밑그림으로 삼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개인사가 얼마간 작용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축첩제의 수혜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첩을 두었던 김 승지도, 그를 투기한 본처도, 딸을 첩으로 보낸 강 동지 내외도, 첩이 된 춘천집도, 심지어 그 살해를 사주받아 실행한 점순과 최가까지도 모두 이 제도의 피해자로 파멸한다. 결말에서 강 동지가 자신의 딸을 ‘시앗’으로 보낸 일을 참회하는 장면은, 축첩제를 옹호했던 스스로에 대한 뒤늦은 성찰이다.다만 이러한 개인사가 이인직의 이후 행적을 이해하거나 정당화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축첩제라는 봉건적 제도를 예리하게 통찰한 작가가, 같은 시기 조선의 식민화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귀의 성》이 보여 주는 것은 한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반봉건 의식과 친일 협력이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나란히 존재할 수 있었다는 이 시기 특유의 균열이다.■ 정본 《귀의 성》이 책은 1906년 10월 14일부터 1907년 5월 31일까지 총 134회(중복·누락 표기를 바로잡으면 139회)에 걸쳐 《만세보(萬歲報)》에 연재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귀의 성》은 연재본과 단행본을 나란히 살펴야만 온전히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두 판본 사이에 단순한 오탈자를 넘어서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재본은 원고지 11매 분량의 결말부가 유실된 채 전하고, 반대로 단행본에는 작품 중반부 원고지 2매 분량의 서술자 논평이 통째로 빠져 있다. 이 책은 중앙서관본(1908)과 동양서원본(1912)을 폭넓게 대조해, 어느 한쪽에 없는 부분을 다른 쪽으로 메운 정본 《귀의 성》이다. 전북대학교 국문과 이만영 교수(고려대학교 문학박사)가 편집을 책임졌다. 가정소설의 문법과 반봉건적 인식이 어떻게 한 텍스트 안에서 만나는지, 그 조우의 순간을 이만영 교수의 해설이 촘촘하게 되짚는다.■ 함께 읽을 신소설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혈의 누》,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은세계》,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이인직·김교제 지음, 이만영 옮김, 《치악산》,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모란봉/빈선랑의 일미인》,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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