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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세계해설 : 문명 개화와 민족적 허무주의의 경계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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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人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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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새겨진 장르《은세계》 초판(동문사, 1908) 표지에서, ‘은(銀)’은 ‘신(新)’ 자를, ‘세(世)’는 ‘연(演)’ 자를, ‘계(界)’는 ‘극(劇)’ 자를 모아 만든 집자였다. 제목 자체가 이 작품의 장르, 즉 ‘신연극’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단행본으로 간행되기 일주일 전인 1908년 11월 13일부터 원각사 무대에 먼저 올랐고, 판소리 명창 김창환을 비롯한 광대들이 무대를 채웠다. 훗날 명창 이동백은 이 공연을 〈최병두타령〉이라 불렀다. 소설 《은세계》는 그 무대의 흥분을 옮겨 적은 기록이기도 하다.《은세계》의 전반부를 채우는 탐관오리 정 감사는 실제 모델이 있다. 1886년 전후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정태호로, 공금 횡령과 여색으로 이미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인물이었다. 아무 죄 없이 정 감사에게 끌려가 고문 끝에 죽는 최병도, 그리고 그를 구하려 몰려들었다가 흩어지는 농민들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건에 뿌리를 둔 서사인 것이다.■ 상권, 그리고 쓰이지 않은 하권초판 표지에는 분명히 ‘상권(上卷)’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하권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 소설이 쓰인 1908년은 의병전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인직은 어째서 하권을 쓰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은 없다. 다만 그 실마리는 이 소설의 후반부, 정확히는 옥남과 의병이 마주치는 마지막 장면에 있는지도 모른다.■ 갈라지는 평가, 갈라지는 절반《은세계》를 둘러싼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려 왔다. 한때는 개화기 최대의 정치소설로 꼽혔고, 이후에는 매국적 논리를 합리화한 작품으로 비판받았다. 이 엇갈림은 작품 자체가 반으로 쪼개져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최병도가 정 감사에 맞서고 농민들이 민요를 일으키는 전반부는, 봉건 질서의 붕괴를 생생하게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 소설이 도달한 하나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최원식, 〈《銀世界》 硏究〉, 《창작과 비평》, 1978년 여름호). 그러나 유복자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옥남이 등장하는 후반부에 이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옥남이 강원도 의병 앞에서 늘어놓는 연설은 이 소설에서 가장 문제적인 대목이다. 옥남은 의병을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로 몰아세우고, 황제의 통치 아래 실력을 기르는 것만이 살길이라 강변한다. 이는 정 감사와 대결하던 민중의 서사가 도달한 결론과는 정반대의 자리다. 봉건 지배층에 맞서 싸우던 민중은 후반부에서 국권을 위협하는 무뢰배로 뒤바뀌고, 저항이 아니라 순응이 살길이라는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반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인직이 하편을 잇지 못한 채 붓을 놓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인직이 그려 낸 민중은 어느새 자신의 논리로는 봉합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은세계》의 전반부가 이 시기 소설이 도달한 성취라면, 후반부는 그 성취가 어떤 방식으로 파탄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정본 《은세계》이 책은 1908년 동문사에서 간행된 초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다만 동문사본은 34~36면과 59~60면이 결락된 채 전하는데, 이 부분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신택영 필사본 《은세계》와 대조해 복원했다. 전북대학교 이만영 교수(고려대학교 문학박사)가 편집을 책임졌다.■ 함께 읽을 신소설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혈의 누》,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 발행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귀의 성》,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이인직·김교제 지음, 이만영 옮김, 《치악산》,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이인직 지음, 이만영 옮김, 《모란봉/빈선랑의 일미인》, 지만지한국문학, 2026년 10월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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