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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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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카페 프란스
슬픈 인상화
파충류 동물

따알리아
산엣 색시 들녘 사내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
옛 이야기 구절
바다 1
바다 2
바다 3
바다 4
새빨간 기관차
내 맘에 맞는 이
숨기 내기
향수
바다 5
석류
종달새
슬픈 기차
해바라기 씨
오월 소식
황마차
선취 1
태극선
우리나라 여인들은
갈매기
바람 1
겨울
유리창 1
바다 6
피리
저녁 햇살
호수 1
호수 2
아침
바다 7
바다 8
절정
유리창 2
성부활주일
그의 반
눈물
난초
바람 2
바다 9

조약돌
기차
고향
은혜
임종
별 1
갈릴래아 바다
시계를 죽임
불사조
승리자 김 안드레아
비극
다시 해협
바다 10
유선애상
파라솔
옥류동
백록담
꽃과 벗
선취 2
별 2
애국의 노래
무제
여제자
의자
녹번리
내 마흔아홉이 벅차겠구나
곡마단
네 몸매
나비
학생과 함께
대단치 않은 이야기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에게
정지용 연보

저자 소개 1

鄭芝溶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
1902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옥천보통공립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2년 고교생 때 첫 작품 풍랑몽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문학,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 후에는 이화여전교수, 경향신문주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납북되어 사망했다고 알려졌으나, 전쟁으로 인해 폭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1926년 일본 유학중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9인회를 결성하고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을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1935년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문장]의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뒤에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 생생하고 선명한 대상 묘사에 특유의 빛을 발하는 시인 정지용. 한국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상을 비롯하여 조지훈, 박목월 등과 같은 청록파 시인들을 등장시키기도한 시인이었다.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북 옥천읍에서 좀 떨어진 구읍의 청석교 바로 옆 촌가에서 한약상을 경영하던 영일 정씨 태국(泰國)을 아버지로 하동정씨 미하(美河)를 어머니로 탄생한 그는 그 당시 풍습에 따라 12살 때(1913) 동갑의 부인 송재숙과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처가에서 결혼하였다. 이 부인 사이에 3남 1녀가 태어났으며, 그 가운데 차남과 3남은 6.25사변중에 행방불명 되었고, 현재 장남 구관과 장녀 구원만 생존해 있다.

그는 휘문고보 재학 시절 [서광] 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느 대표작의 하나인 「향수」를 썼다. 1930년에 시문학 동인으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전개하였고, 구인회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며 문장지의 추천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이 되서는 경향신문의 주간으로 일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에 출강하여 시론, 수필, 평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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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40g | 110*180*20mm
ISBN13
9791186643020

출판사 리뷰

추천글

“근대적 애수의 가장 리얼한 숨결.” -김기림

“[향수]는 시인이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의 헌사.” -유종호


[카페 프란스] 한국 현대시 태동의 전조

한국 현대시는 정지용 이후와 정지용 이전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그의 위치는 확고하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모국어의 음악성, 정제된 시어로 현대시 확립에 기반을 마련한 정지용은 도시샤대학 영문학과 재학 시절에 발표한 [카페 프란스](1926)로 본격적인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조선인 유학생 문예지 학조 창간호에 발표한 [카페 프란스]는 정지용이 공식 지면에 발표한 최초의 모국어 시였다는 점에서, 근대와 전통이 혼성하는 새로운 시적 형식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에서 모더니즘 시가 태동하는 전조로 평가되고 있다.

“언어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

정지용은 도시샤대학 졸업 후 1930년대에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유리창] [호수] 등 훗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애송시들을 창작했다. 이 시기는 정지용이 구인회(九人會)와 시문학 등에 가담하여 카프의 계급문학에 반하는 ‘순수문학’을 추구했던 때이다. 그는 첫 시집 《정지용 시집》(1935) 출간으로 한국 시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정지용의 현대시는 그의 말대로 “언어미술”이며, 이 바탕은 감각적이고 토속적인 한국어 특유의 아름다움에 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향수]가 “고향과 조국과 모국어에 바친 최고의 헌사”라고 평가했고, 영문학자 이양하는 정지용을 “조선말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알게” 해준 세계문단에 내세울 수 있는 시인으로 극찬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기림은 정지용 시의 우수성을 “우리는 항상 그 속에서 떨리는 일종의 영탄의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표현했다.

정지용의 아리땁고 슬픈 노래들은 계속된다.

해방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정지용은 좌익 계열의 조선문학가동맹에 관계했다는 이유로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조직한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다. 사상 검증의 광풍 속에서 정지용은 전향 강연에 종사하지만, 좌익 필자군으로 분류된 그의 이름은 1988년 해금 때까지 40여 년간 삭제되지 않았다.

1950년 7월경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정지용은 “[사대]문 안에 갔다 옴세.”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행방불명되었다. 현재 그의 사망 원인은 납북 중에 폭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티초크의 《카페 프란스》는 정지용이 비운의 시인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극적인 삶과 아름다운 시 세계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아울러 이번 시선집에 포함된 정지용의 주옥같은 산문들과 생생한 사진 및 증언들은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의 시와 삶을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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