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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박석무 편역
창비 200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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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 머리에/박석무

1.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2)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3)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4)
학연에게 부치노라 (1)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5)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6)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7)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8)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9)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0)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1)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2)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3)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4)
학유에게 부치노라 (1)
두 아들에게 부치노라 (15)
두 아들 보거라 (1)
두 아들 보거라 (2)
두 아들 보거라 (3)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 (1)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 (2)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 (3)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 (4)
학연에게 답하노라 (1)
두 아들에게 답하노라(5)

2.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아들 학연에게 내려 주는 교훈 (1)
두 아들에게 내려 주는 교훈 (1)
두 아들에게 또다시 내려 주는 교훈 (1)
두 아들에게 내려 주는 교훈 (2)
두 아들에게 내려 주는 교훈 (3)
두 아들에게 또다시 내려 주는 교훈 (2)
두 아들에게 내려 주는 교훈 (4)
아들 학유에게 노자삼아 준 교훈 (1)
아들 학연에게 내려 주는 교훈 (2)

3.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둘째형님께 글월 올립니다 (1)
둘째형님께 글월 올립니다 (2)
둘째형님께 글월 올립니다 (3)
둘째형님께 글월 올립니다 (4)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1)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2)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3)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4)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5)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6)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7)
둘째형님께 답합니다 (8)
둘째형님께 답합니다(9)

4. 다산의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
윤종문에게 당부한다
윤종문에게 또다시 당부한다
윤종억에게 당부한다
다산의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정수칠에게 당부한다
윤종심에게 당부한다
의순에게 당부한다
이인영에게 당부한다

저자 소개 2

다산茶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호는 다산(茶山)이다. 1762년 경기도 광주부(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하여 28세에 문과에 급제했다. 1789년 대과에 급제한 이후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관료 생활을 했다. 곡산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지냈다.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 과학, 지리 등에도 밝아 1793년에는 수원성을 설계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정조 승하 후 당시 금지되었던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벽파의 박해를 받기 시작해 1801년(순조 1년)에 강진으로 귀양을 갔으며, 무려 18년에 걸친 귀양살이 동안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1818년 귀양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뒤 1836년 별세하기까지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500백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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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역박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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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錫武

194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전남대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신원특이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후 오랫동안 중·고교사로 근무했다. 유신반대 유인물 사건인 전남대학교 <함성(喊聲)>지 사건으로 수감되어 1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당시 복역 중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를 한 결실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이며, 5.18 민주화 운동 이후 내란죄를 피해 은신하면서 다산의 문집들을 번역한 것이 바로 『다산산문선』과 시선집 『애절양』이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며 이어진 복역과 수감생활
194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전남대 법과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신원특이자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후 오랫동안 중·고교사로 근무했다. 유신반대 유인물 사건인 전남대학교 <함성(喊聲)>지 사건으로 수감되어 1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당시 복역 중 다산 저술에 대한 연구를 한 결실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이며, 5.18 민주화 운동 이후 내란죄를 피해 은신하면서 다산의 문집들을 번역한 것이 바로 『다산산문선』과 시선집 『애절양』이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며 이어진 복역과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 본격적으로 다산 연구에 전념했다. 한중고문연구소장과 제 13·14대 국회의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단국대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장, 단국대 석좌교수, 성균관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고, 다산학술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다산학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새벽녘 초당에서 온 편지』, 『조선의 의인들』, 『다산 정약용 평전』, 『다산에게 배운다』 가 있고, 편역서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산문선』, 『애절양』, 『다산시정선 상, 하』, 『다산논설선집』, 『다산문학선집』(공편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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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9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6470647

책 속으로

이제 너희 사촌들이 5, 6명 되는데 내가 만약 임금의 은혜를 입어 살아서 고향땅을 밟게 된다면 이 대여섯 애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싶다.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효(孝)와 제(弟)에 그 근본을 두고 경사(經史)와 예악(禮樂), 병농(兵農)과 의약(醫藥)의 이치를 투철하게 알게 해주는 일이다. 짐작컨대 4,4년이 못되어 그 성과가 찬란할 것이고 비록 폐족 집안이긴 하지만 문학과 예학(禮學)의 교양은 뚜렷하게 돋보일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아침 저녁으로 북쪽을 바라보며 빨리 풀려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이유이며 나의 큰 계획이다. 하지만 너희들이 먼저 아버지를 섬기듯 큰아버지를 섬기는 모범을 세워야 봉륙이나 칠복이 비로소 자기 아버지처럼 나를 섬기게 될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이 좋지 않은 본보기를 남겨 우리 아버지만 아버지고 큰아벚나 작은 아버지는 집안 사람 가운데서 조금 더 가까운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면, 경사나 예악을 와서 배우려 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효나 제의 행실을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큰아버님 섬기기를 아버지 섬기듯 하여 봉륙이나 칠복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의이 계획은 참으로 큰 것이니 비록 너희들 마음에 썩 내키지 않더라도 힘써 이 뜻을 따라주기 바란다.

---p. 62-63

세상에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가지(動容貌, 出辭氣, 正顔色)가 학문을 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곳인데, 이 세가지도 못하면서 다른 일에 힘쓴다면,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고 재주가 있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다 할지라도 결국은 발꿈치를 땅에 붙이고 바로 설 수 없게 되어 어긋난 말씨, 잘못된 행동, 도적질, 대악, 이단이나 잡술 등으로 흘러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三斯]로써 서재의 이름으로 삼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난폭하고 거만한 것을 멀리하고 어긋난 것을 멀리하고 미더움을 가까이한다는 의미니라.

---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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