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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2. 도둑들 3. 물집 4. 낭만주의 5. 빗소리 듣는 동안 6. 헛것을 기다리며 7. 얼음 매미 8. 사냥 9. 고드름 10. 겨울 편지 11.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12. 폭설, 그 이튿날 13. 대설 14.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15. 도미 16. 저 풍경 17. 봄똥 18. 이른 봄날 19. 물의 입 20. 입춘 - 이하 생략 - |
安度眩
안도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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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위의 기관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철없이 철없이도 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 울어야 네 슬픔으로 꼬인 내장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 때로 아무 것도 아닌 것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 --- p.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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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가 주는 것들
처음에는 당연히 꽃을 보여주지요 쌀 안치는 소리를 내면서 피는 꽃들 말이지요 그 꽃들 지고 나면 잎을 보여주고요 그러면 잎은 그늘을 주지요 그 다음에는 풋살구를 주지요 풋살구를 주고 나서는 아픈 배를 주지요 아픈 배가 다 낫기를 기다리다가 놇게 통통 잘 익은살구를 주지요 (살구를 장에 내다 팔면 돈을 주지요) 작고 파란 것들이 이파리에 오물오물 몰려드는 건 이맘때쯤이지요 살구나무는 온몸을 내주지요 야금야금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들의 눈에 이파리의 온갖 무늬를 다 보여주지요. --- p.4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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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나갔더니 어라, 물소리가 들린다
얼음장 속 버들치들이 꼭 붙잡고 놓지 않았을 물소리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허리춤이 헐렁해진 계곡도 되도록 길게 다리를 뻗고 참았떤 오줌을 누고 싶을 것이다 물소리를 놓아버린 뒤에도 버들치들은 귀가 따갑다 몸이 통통해지는 소리가 몸 속에서 자꾸 들려왔기 때문이다 --- p.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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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겨드랑이에 날개 대신 숭숭 자란 검은 털아,
50센티미터만 뛰어오른 뒤에는 어찌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술통 같은 몸아, 그동안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굳은살이 박인 발바닥아, 슬퍼도 자지러지게 울어본 적 없고 분노 앞에서도 핏발 서지 않는 눈아, 한 번도 알 껍질을 쪼아본 적이 없는 입술아, - '내가 저 여린 싸리나무 가지 끝에 날아가 앉을 수 없는 이유를 아느냐' 중에서 - --- p.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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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잎에 내리는 햇살은 감나무 잎사귀만 하고요
조릿대 잎에 내리는 햇살은 조릿대 잎사귀만 하고요 장닭 볏을 만지는 햇살은 장닭 볏만큼 붉고요 염소 수염을 만지는 햇살은 염소 수염만큼 희고요 여치 날개에 닿으면 햇살은 차르륵 소리를 내고요 잉어 꼬리에 닿으면 햇살은 첨버덩 소리를 내고요 거름더미에 뒹구는 햇살은 거름 냄새가 나고요 오줌통에 빠진 햇살은 오줌 냄새가 나고요 겨울에 햇살은 건들건들 놀다 가고요 여름에 햇살은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요 -<햇살의 분별력>전문 --- p.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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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어느 계집이 제 서답을 빨지도 않고 능선마다 스리슬쩍 펼쳐놓았느냐 용두질 끝난 뒤에도 식지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것을 햇볕 아래 서서 꺼내 마리는 단풍나무들. --- p.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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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낙동강」으로 등단한 후, 20년 동안『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리운 여우』『바닷가 우체국』등의 시집을 통해 독자들의 속살 깊이 다가선 안도현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가 <현대문학북스>에서 출간되었다.
가혹한 시대의 현실과 민중적 정서를 그린 초기시부터 낭만적 정서와 유려한 시의 질감을 보여준 안도현 시인은『그리운 여우』이후, 소담스러운 언어 미학과 삶의 소박한 풍경들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선보여 왔다. 이번 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에서 더욱 깊고 다채로운 빛깔로 시인을 둘러싼 세계와 내면의 풍경을 물들인다. 언제나 작은 것에 대한 각별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던 안도현은 이번 시집의 제목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섬세한 발견의 기쁨과 그것을 통한 삶의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생뚱맞고도 능청스러운 입담을 통하여 질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안도현 시인의 중요한 삶의 원질(原質)은 순박한 자연과 함께하는 농촌의 일상과 전라도의 토속 정서이다. '봄똥'을 생각하며 '전라도'에 눌러앉아 살고, 5월의 마른 목은 '논물'로 축여가는 시인은 여름에는 쌔빠지게 일하다 가고, 겨울에는 건들건들 놀다 가는 '햇살의 분별력'과 그 호흡을 맞추어나간다. 그렇게 '헛것'을 기다린 세월의 '밤길을 걸어 그 허망하다는 시의 나라를 찾아가겠다'는 의지는 여전히 뜨겁게 건재하여 흐드러진 전라도의 풍광 속에서 그 생명력 넘치는 동력장치를 발견해낸다. "생명에 대한 미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안도현의 시는 생태문학(생명문학)의 이상적인 경지를 가늠하게 해준다"고 풀이하는 김수이 씨의 해설처럼 이번 시들은 자연의 섭리, 인간의 삶의 원리, 시의 원리를 하나로 융해시키는 합일의 순간을 포착해내고 있다.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 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살구나무 발전소> 중에서 하지만 그 합일과 관계맺음의 과정에는 언제나 상처와 아픔이 따른다는 이치를 자신의 삶과 시적인 내력에서 경험한 시인은 생명력 가득한 자연의 삶인 '살구나무 발전소'와 상처에 함몰된 현실의 삶인 흉한 '물집'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면서 그 상처 치유와 변화의 작업에 낭만주의를 사용한다. 시인이란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자의 운명을 지닌 존재임을 은연중에 역설하면서, 낡은 배를 산으로 데려가기 위해 20년 간 끙끙대며 시를 써왔고, 배를 뭍에 올리자 배도 바다도 모두 환해졌으며, 배를 밀고 국도와 보리밭으로 갈 때 그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귓구멍이 뻥 뚫리도록 뱃고동을 울려주"겠다는 말을 통해 자신의 시가 퇴행이나 도피와는 다른, 무한한 꿈의 과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얻은 대중적인 인기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우러나는 깊은 맛을 쟁여두고 있는 안도현의 시세계는 여전히 따뜻하고도 도저한 시인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순정한 시인에서 질박한 농사꾼, 건들건들한 건달에 이르기까지 여러 빛깔의 자아를 소화하며,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삶의 작은 발견과 고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심을 표출해 온 그의 시적 취향은 이번 시집에서 생명의 원리에 대한 통찰과 자연에 대한 미적 인식, 농촌의 삶과 토속적 세계에 대한 애정, 꽃과 나무 등의 자연물을 묘사하는 새로운 시각, 시쓰기에 대한 자의식과 자아 성찰 등 많은 주제를 아우르고 있다. '낭만적 현실주의'에서 '현실적 낭만주의'로 변화해가면서 현실성과 낭만성의 함의(含意)를 함께 바꾸어나가고 있는 안도현의 이번 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는 자신의 20년 시적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정성, 미래의 시의 지향점을 분명히 보여주면서 그의 시세계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