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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미국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흑인 노예가 해방된 지 9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미국. 그러나 미국에서 흑인은 여전히 사회의 소외 계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흑인들은 흑인 전용 식당만 출입해야 했고, 흑인 아이들과 백인 아이들은 함께 놀수 없었다. 심지어 버스에서조차 백인과 흑인은 따로 앉아야만 했다. 특히 흑인 노예의 전통이 뿌리 깊게 남아 있던 남부 지역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고, 흑인들은 이에 대해 변변한 대응이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야했다. 하지만 1955년 12월 1일, 백인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로사 파크스를 보며, 흑인들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때 등장한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가 바로 마틴 루서 킹이다. 1929년 부유한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마틴 루서 킹은 교수가 되어 평온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사 파크스 사건이 미국 전역을 흔들자 억압받고 고통 받는 흑인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마음먹는다. 버스 안 타기 운동, 흑백분리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비폭력 시위, 흑인들과 백인들의 마음을 깨우기 위한 수많은 연설을 통해 킹 목사는 흑인 민권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견제와 비난도 뒤따랐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거리로 끌어내 백인들의 폭력 앞에 노출시켰다는 비난에서부터,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 흑인들을 이용한다는 의심까지, 백인과 흑인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킹 목사는 그런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인들만의 자치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 백인들도 흑인처럼 차별을 경험해봐야 한다는 역차별 논리에 킹 목사는 단호히 맞섰고, 언제나 평화와 비폭력을 부르짖었다. 그의 꿈은 억압받고 차별받는 소외된 모든 인간을 향한 사랑이었다. 1968년 인종차별주의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킹 목사는 오로지 평등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의 이러한 신념과 의지는 지금까지도 미국인, 아니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남아 감동과 교훈을 더해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