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출구 없는 성
2. 승자와 패자 3. 도망자 4. 황야에 등불 하나 5. 돌아눕는 산맥 |
|
도엽은 두 손을 포켓에 찔러넣었다. 밤송이 머리의 고향집은 지금쯤 바다 같은 호수의 물밑에서 잠잘까. 내쫓긴 그의 고향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디로 떠돌고 있을까. 그는 그러나 가급적 바다만을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힘차게 부서지는 포말, 사기그릇 같은 백사장,파아랗게 시린 수면......그러나 이상스럽게 그런 바다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물건처럼 아름다운, 싱싱한 바다는 오염되어 더러운 바다에 가리어 있었다. 트럭이 검문소 앞에 멎었다. 경찰과 정복 헌병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도엽은 그들의 시선을 피해 검문소 뒤의 앙상한 벗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헌병이 그냥 가도 좋다고 뒤편을 향해 절도 있게 손짓을 했다. 도엽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 위험한 고비는 지난 것이었다. 오성면에 내려 버스든 기차든 빨리 떠날 수 있는 것으로 출발하면 밤에는 서울역에 닿게 되겠지. 그러나 오, 옥상의 방마저 갈 수 없다면 나는 서울의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고향 읍내의 절름발이 거지처럼 찔뚝뺄뚝 찔뚝뺄뚝 빌딩 사이를 부랑하다가 마침내 혹독한 겨울바람 속에 새우처럼 등을 오그려붙이고 얼어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예정된 비극을 향해 쏜살같이 밀려가는 것을 명징하게 느꼈다. --- pp.140-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