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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範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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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매혹적인 서사와 문체
박범신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도 시대를 뛰어넘어 읽혀지는, 재미와 감동이 지속되는 소설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지만 늘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을 품고 살아온 상류층 여주인공과 기둥서방, 도배장이 따위의 별 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도적의 사랑 이야기에 많은 독자들은 호기심을 보일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을 작가는 너무도 현실감 있게 그려내기에 우리는 박범신 소설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남편 ‘정인학’은 경제학 박사답게 논리적인 사람이며, 우아한 지식인이다. 그는 주인공인 아내를 자기 방식에 맞춰 길들이려 하고, 결국에는 아내를 정신분열자, 알코올중독자로 몰아 정신병원에 가둔다. 주인공은 점점 어둠 속에 갇혀 자아를 상실해가고 만다. 수요일마다 남편과 주인공의 배다른 동생 ‘경혜’는 부산으로 내려가 정사를 나누고 돌아온다. 비가 내리는 어느 수요일에 주인공은 또다시 혼자가 되고, 청동빛 피부와 불의 눈을 가진, 휘파람을 잘 불며 손재주가 많고 자존심까지 강한 도적을 만나게 된다. 도적은 아무도 없는 빈집인 줄 알고 들어와 목욕탕에서 비누질을 하고, ‘콰이강의 다리’를 휘파람으로 불며 샤워를 할 정도로 엉뚱하고 대범하다. 주인공이 미지의 도적에 대해 공포감보다는 비상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주인공은 남편이 가둔 정신병원에서 도적인 ‘신준일’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게 되고, 신준일을 따라 도적의 집, 장애 아이들의 공간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이전까지의 주인공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신준일은 주인공의 남편 정인학이 쏜 총에 맞아 붙잡히게 된다. 정인학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주인공을 잡지 못하고 결국 한 발의 총성을 울려 깊은 어둠의 막을 내린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게 된 주인공은 다시 돌아올 ‘도적’을 기다린다. 박범신의 눈물은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진정성 이번 개정판에서는 신진소설가 이기호의 발문을 책 뒤에 추가하였다. 소설집의 뒤에 해설이 아닌 발문을 붙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이는 작가 박범신이 대학 강단(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기호는 ‘눈물의 배후’라는 제목의 발문에서 ‘눈물’이라는 키워드로 소설가 박범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박범신은 문단에서 눈물이 많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박범신은 느닷없이, 아무런 예고와 징후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 노래 가사 때문에도 울고, 제자의 소설 때문에도 울고, 평소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시인의 부음 때문에도 운다. 어떤 날은 술을 마시다가 울고, 또 어떤 날은 노래를 부르다가 울고, 또 어느 날은 자신의 소설을 읽다가 운다. 손대면 금세 툭, 하고 눈물을 떨굴 것만 같은 박범신의 눈물 그것이야말로 그의 진정성이고, 그가 평생 견지해왔던 삶의 한 양식이 아닐는지. 남성 작가가 그린 탁월한 여성성의 소설 박범신은 우리 문학사에선 아주 드물게도 남성 작가에 의해서, 여성성에 도달하려는, 여성을 이방인화하지 않고 남근중심화하지 않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를 읽는 동안 독자는 남성 작가의 여성 심리를 표현하는 감각과 기법에 먼저 놀라게 되고, 돌발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그의 시적 감수성에서 비롯된 유려한 문체와 묘사의 힘에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고백적 성찰로부터 미학적 리얼리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다양한 변모를 거듭해가고 있는 박범신 문학을 다시 읽는 것은, 소설의 침체와 아울러 서사성의 실종이 지적되고 있는 오늘, 우리문학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