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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개정판」 작가의 말 틀 해설 │ 홍기돈 피로써 피를 씻는 자 누구인가 작가·작품 연보 작품목록 |
朴範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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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를 잘라 새로이 짓는 예배당의 제단을 만들 것입니다. 반대하는 분이 계시면 손을 드시오. 감히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팽나무를 잘라 예배당 제단을 만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했다. 하나님이 정말 전도사님께 팽나무를 자르라고 했을까? 형국이는 물었다. 이 새꺄, 의심하는 것이 가장 큰 죄인 걸 몰라서 그러니? 의심하는 것이 큰 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한 사람도 없을 터였다. 커다란 줄톱이 하루 종일 팽나무의 살 속을 파고들었다.
넘어진다. 넘어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가득 차 몸을 떨었다. 삼백오십 살이나 되는 나이답게 팽나무가 쓰러질 땐 참으로 굉장했다. 쿵하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렸다. 집에 있던 사람들도 집집마다 바로 자기 집의 대들보가 내려앉는 것 같았었다고 말했다. 무당인 병국이 할머니가 안 된다, 라고 소리치면서 넘어지는 팽나무에게 달려들다가 깔려 죽는 바람에 봄도 되기 전 상여가 또 한 차례 수문을 넘어갔다. 전도사님은 강 진사보다 훨씬 더 무섭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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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이 억압의 틀로서 작용하지 않는 사회가 지금도 그립다. 전체의 ‘틀’이 견고하되 개인이 가진 삶의 틀과 부딪히지 않고, 그리하여 그 전체의 ‘틀’이 부드럽게 우리들 개인의 숨은 꿈들 속으로 녹아들어서, 보이진 않으나 마침내 합일하는, 그런 세상이 여전히 그립다.
―「작가의 말」 중에서 “지배논리의 틀” 세계사 박범신 문학전집 17 『틀』이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밝히듯이, “애당초 우리의 현대사가 보여주는 잘못된 구조의 지배논리가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한 씨족부락에 한정시켜 암시적으로 쓴 것이다.” 이 작품의 원작 격에 해당하는 단편소설 「역신의 축제」를 작가가 집필할 70년대 말은 유신이라는 폭력적인 정치권력이 우리 사회를 억누르고 있던 시기였다. 작가는 이 암울한 시대의 모습을 작은 마을을 통해 그대로 투사한다. “강 진사”로 대표되는 “강씨들”과 “전도사”로 대표되는 “비강씨들”의 대립구도는 권력을 손에 쥔 자들과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를 통해 사유화된 권력은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지만, 이를 무너트린 또 다른 사유화된 권력 역시 얼굴만 바꾼 위험하고 폭력적인 힘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3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이 작품은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물음 앞에 초판 「작가의 말」을 수정하지 않은 채, 말미에 초판의 생각이 확고했음을 또한 최근의 파시즘 논쟁과 더불어 여전히 유효함을 씁쓸하게 내비치고 있다. “피로써 피를 씻는 자 누구인가” 논의를 확대하여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는 주체의 안과 밖, 공동체의 안과 밖을 대립하여 사유하는 방식으로 출발한 시대이다. 데카르트가 창안한 기본 단위인 주체 ‘나’는 ‘너’를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하나의 ‘관계-쌍’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너’는 기껏해야 싸늘한 ‘사회 계약’ 위에서나 공존이 가능할 따름이며, 그런 까닭에 ‘너’는 ‘나’에게 인격을 잃은 ‘그것’으로 미끄러져서 다가오기 일쑤인데, 사회 계약에 동의하지 않는/못하는 대상은 그저 투쟁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하나의 ‘민족(국가)’이 다른 ‘민족(국가)’에 대하여 존립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제국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는 응당 척결해야 할 불량 국가에 불과하다. 바깥에 있는 존재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죄악은, 진정 그렇게, 바깥에서 안으로 이식되는 것일까. 근대가 직면한 막다른 벽 앞에 이르러 이러한 반성은 더욱 유효해진다. ‘폭력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길이 아직 열리지 않았으니 그러하다.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박범신의 『틀』은 이러한 성찰의 여지를 제공해 준다. 『틀』은 세계가 동서로 나뉘어 대립하던 소위 ‘냉전 체제’가 허물어진 1993년에 벌써 출간된 바 있다. 당시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라며 “역사의 종말”을 주창하던 세력도 있었으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근대의 쌍생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극히 희극적인 장면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가시적인 대결이 사라졌으니 근대 체제 자체를 사유해야만 할 시점이 도래하였다고 파악해야 온당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근대 체제는 ‘세계화’라든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섭게 확장해 나갔으며, 그로 인해 세계는 결국 전체 차원의 위기에 봉착한 형편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나마 다시 ‘폭력 메커니즘’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절판되었던 『틀』이 2009년 초 새롭게 출간되는 의미는 아마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홍기돈, 작품 해설 중에서 《박범신 문학전집》을 펴내며 한국문학사에서 박범신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고 또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시기로 기억되는 7, 80년대는 소설의 전성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박범신 문학은, 이 소설의 전성시대가 낳은 아이이자 소설의 전성시대를 낳은 어미이다. 그의 문학은 소설의 전성시대에서 소설의 위기시대를 가로지르며, 문학의 대중적 존재방식에서 문학의 엘리트적 존재방식을 가로지른다. 그의 전반기 문학의 미덕으로 지목되는, ‘욕망의 사회학’과 ‘욕망의 심리학’을 동시에 아우르는 유니크한 주제의식, 화려한 문체와 단단한 서사 등은 물론이고, 90년대의 극적인 절필 이후, 고백적 성찰로부터 미학적 리얼리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다양한 변모를 거듭해가고 있는 박범신 문학을 다시 읽는 것은, 소설의 침체와 아울러 서사성의 실종이 지적되고 있는 오늘, 우리문학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박범신 문학전집》 기획위원 | 이경호·이순원·남진우·권명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