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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 Kim Jung Man
열화당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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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사진문고

책소개

목차

작가론: 나르키소스의 수면(水面), 어느 떠돌이별의 기록 / 이건수
작품과 사진설명
국문연보
영문연보

저자 소개 2

195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971년 정부 파견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로 갔다. 1년뒤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수료하였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그는 5분만에 현상되는 사진의 매력에 빠졌다. 1970년대 이제 막 프랑스에서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사진이었기에, 그의 지도교수들은 그의 전향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파격적인 사진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1975년 니스의 쟝 피에르 소아르니에서 개최한 개인전으로 데뷔하였다. 이듬해인 1976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중 최연소
195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971년 정부 파견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로 갔다. 1년뒤 혼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수료하였다. 서양화를 전공하던 그는 5분만에 현상되는 사진의 매력에 빠졌다. 1970년대 이제 막 프랑스에서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한 사진이었기에, 그의 지도교수들은 그의 전향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파격적인 사진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그는 1975년 니스의 쟝 피에르 소아르니에서 개최한 개인전으로 데뷔하였다. 이듬해인 1976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중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었고, 1977년 프랑스 ARLES 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엘르','보그'지 등과 일했으며, 1979년 귀국하여 국내의 여러 여성지와 패션사진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85년 외국 국적자가 미리 신고를 하지 않은 전시회를 개최했다는 이유로 추방되었고 이듬해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강제추방 되었다. 1988년 한국 국적을 회복한 후 작품사진과 인물사진, 패션사진을 찍었다. 1995년에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에서 사진학을 강의했으며 NEOLOOK편집인으로 일했다. 2000년 KOREA.COM 33인의 문화인에 선정되었고, 현재 청담동에서 스튜디오 벨벳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34년간 단 하루도 카메라를 놓은 적이 없는 그는 다작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재도 인물,·풍광,·동물,·꽃 등 다양하다. 그는 광고사진가와 인물사진으로 유명하다. 패션사진, 광고, 영화 포스터, 1000여 명에 이르는 스타 사진을 많이 찍은 작가다. 찢어진 청바지에 낡은 운동화를 신은 가수 김현식의 마지막 발 사진, 이영희 한복의 우아한 뒤태를 잡아낸 '바람의 옷', 영화 '달콤한 인생' 포스터 등을 제작하였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는 그는 2006년 상업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 어린시절부터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선행을 하고 있다. 사진 100만장을 찍는 것이 목표인 그는 사진의 대부분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집으로는 『불새』, 『넋두리 김현식』, 『인스턴트 커피』, 『오키드』,『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등이 있다. 유승준, 신화, 강타, 성시경의 화보집을 촬영하였고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 에 사진을 싣기도 하였다. 한국 스타의 인물사진집 『AFTER RAIN』한국판과 일본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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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글쓰기, 강의, 전시기획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방송이나 무대를 통해 대중의 예술화를 설파하다가 ‘그남자(그림 읽어주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에 동시대 예술을 올려놓고 비교미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모더니즘의 전개 과정이 우리의 예술과 삶을 어떻게 규정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의 사회사를 통해 현대미술의 리얼리티를 조명해보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남은 생애 동안 우리 미술의 삼대三代를 연결하고 소통시켜 우리 미술의 당당한 자의식을 회복시키려는 ‘애국적’ 행위도 하고 싶
미술에 대한 글쓰기, 강의, 전시기획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방송이나 무대를 통해 대중의 예술화를 설파하다가 ‘그남자(그림 읽어주는 남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에 동시대 예술을 올려놓고 비교미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모더니즘의 전개 과정이 우리의 예술과 삶을 어떻게 규정했는지에 관해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의 사회사를 통해 현대미술의 리얼리티를 조명해보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남은 생애 동안 우리 미술의 삼대三代를 연결하고 소통시켜 우리 미술의 당당한 자의식을 회복시키려는 ‘애국적’ 행위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다수의 대학에서 강의했고, 미술전문지 『월간미술』의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6편의 개념영화도 만들었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러시아 미술사』(1996)를 번역하여 출간했고, 필름아트북 『깨끗한 눈』(2001)과 한국현대미술 1세대 작가들의 작가론집 『토착과 자생』(2002),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 20인을 인터뷰한 『혼을 구하다』(2010), 세계 미술의 현장을 체험하고 기록한 미술산문집 『Editorial』(2011) 등의 저서가 있다. 그의 글은 “심미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선,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를 “옛날 사람”이라 부르며 이 책에 나와 있는 예술작품들을 많은 젊은 세대가 하나하나 직접 체험해보기를 원하는, 그래서 소통과 구원의 미술세계가 형성되길 원하는 그는 앞으로도 섬세한 감수성의 예술 중개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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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36*156*20mm
ISBN13
9788930104920

출판사 리뷰

사진의 발견

1970년, 김중만은 정부 파견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로 떠나게 된다. 당시 열여섯이었던 김중만은 학교도 마땅히 없는 시골 마을에 정착했기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다.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대학에 진학해 서양화를 전공하게 된 그는, 그림과 달리 짧은 시간에 인화되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유학시절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이질적인 시각 환경은 그의 청년기의 중요한 탐험지가 되었고 ‘순결한’ 흑백공간으로 탄생하게 된다.
김중만의 첫 프레임이 시작된 ‘섹슈얼리 이노선트(Sexually Innocent)’ 연작의 주된 매개는 손이다. 손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풍경과 표정으로 김중만은 감춤과 숨김, 그리고 드러냄의 미장센을 구성해낸다.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보다 손으로 가림으로써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손으로 가려진 얼굴과 은폐를 원하는 육체는 그것이 열려 드러났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본성을 드러낸다.
김중만 사진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5년과 1986년 한국에서 두 차례의 추방을 겪은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권력의 부당함에 항의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로스앤젤레스로 내쫓긴 김중만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비참했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추방인으로서의 삶은 그의 사진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고 ‘추방의 나날’ 연작으로 남았다. 다른 사진가와 구별되는 김중만 본연의 색채와 톤, 화면의 밑바탕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어두운 색채의 심연(深淵)은 이때부터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섹슈얼리 이노선트’ 연작은 카메라의 검은 방에 놓인 타자의 세계에 집중했다면 1980년대 ‘추방의 나날’ 연작의 이미지들은 모든 피사체들이 김중만의 고독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사진가로서의 길

1998년 겨울, 김중만은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하셨던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의 대중적 파급력은 바로 이 ‘동물왕국과 아프리카 여행’ 연작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는 야생 동물들과 생동감 넘치는 맹수들의 움직임은 도시 생활에 길든 그를 자극했다. 케냐, 보츠와나, 탄자니아를 무대로 아프리카를 기록해 나가며 야생의 본능으로 충만한 아프리카 땅의 맨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매일 아침 초원에 나가 동물들을 뒤쫓다가 돌아오는 생활은 사진가로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중만 사진의 여러 갈래 중에서 지금의 그를 유명하게 만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장르는 인물과 패션이다. 오랜 기간 동안 상업사진계에 머물렀지만 특히 2000년부터 2006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가 이룬 업적은 우리 대중문화의 질을 한 단계 상승시킨 작업이었다. 투박하지만 진실함이 느껴지는 가수 김현식의 발, 일본군위안부였던 박옥련 여사, 니스 유학시절 우연히 만났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 등 당대 최고의 인사들과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달콤한 인생」(2005), 「괴물」(2006), 「타짜」(2006) 등의 영화 포스터를 작업했다. 김중만이 찍은 인물사진의 빛의 입자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아우라’ 가득한 사진은 감각적인 시선의 영역 너머에 있는 인식적인 기억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동시키며 눈앞의 차원이 아닌 저 너머의 세계일 듯한, 얼룩진 이상향을 보여 준다.

사진의 보편적인 향유

상업사진계에서 잘 나가던 김중만은 2006년 고비사막을 갔다가 종교적 결의에 가까운 예술적 개심(改心)을 하여 상업사진계를 은퇴하게 된다. 그 후 한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을 답사하며 그의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우리나라의 풍경과 그 속에 깃든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대 ‘한국의 재발견’ 연작은 서구화된 감성으로부터 한국인의 감성으로 전이하고 조정한 눈높이의 산물이다. 우리 문학과 회화에서 드러나는 ‘생략’이라는 미감을 김중만은 태생적으로 발견하여 쓰고 있다. 그는 고전주의적인 작법의 기준, 즉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이라는 예술의 기초에 충실하고 있다. 〈우리 다시 만나리〉(p.146)에서도 여지없이 생략과 축약의 모방법(mimesis)을 견지한다. 전부가 아닌 일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는 대규모의 전시를 꿈꾸면서도 전 세계인에게 자신의 사진이 일 달러 정도로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보급되길 소망한다.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의 민주적인 소비성을 논한 것과 마찬가지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간편한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누구나 사진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상업사진과 순수사진의 경계를 허물며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이 지닌 환경적 반목을 거의 완벽하게 극복해낸, 보기 드문 사진가인 그이기에 새롭게 변화하는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변화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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