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Gaku Yakumaru,やくまる がく,藥丸 岳
야쿠마루 가쿠의 다른 상품
민경욱의 다른 상품
|
뺨에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껴, 천천히 눈을 떴다.
짙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천천히 떨어진다. 눈이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뺨과 손끝에 느껴지는 통증의 이유를 깨달았다. 쌓인 눈 위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데 있지? 꿈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뺨과 손끝에 느껴지는 냉기는 틀림없는 현실이다. 눈을 짚으며 일어났다. 순간 뒷머리에 둔중한 고통이 느껴져 손으로 눌렀다. 발밑으로 펼쳐진 일면이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 이상한 광경에 위화감을 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2층짜리 저택이 불타오르고 있다. 어떻게 된 거지…….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바라봤다. 드디어 어렴풋 기억이 돌아온다. 자신들은 저 집 안에 있어야 했다. 어째서 이런 데 쓰러져 있고 저 집은 불타고 있을까. 동료들은-. 번뜩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어둠이 펼쳐져 있을 뿐 인기척은 없다. 설마 저 저택 안에 남겨진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격렬하게 타오르는 저택에 다가갈 수는 없었다. 문득 바로 앞의 눈에 반쯤 파묻힌 종이다발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다가가 눈 속에서 종이다발을 집어 들었다. 띠지로 묶인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다. 서둘러 다운재킷 주머니에 쑤셔 넣고 눈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들 틈을 비집고 부지에서 나와 조금 전 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산길에 세워둔 차에 도착했는데도 동료들의 모습은 없었다. 운전석에는 키가 그대로 꽂혀 있다. 모두 어디로 간 거지? 럼-, 버번-, 테킬라-. 정적에 휩싸인 주위를 둘러보면서 동료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다. 어둠을 가르듯 타오르는 불기둥을 보고 격렬한 초조함에 시달렸다. 일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 본문 중에서 |
|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소재로 비정한 사회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다
“너희들이 대단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할머니를 죽이고 내 인생을 짓밟은 거야!” 본 책 『하드 럭』은 『천사의 나이프』, 『어둠 아래』, 『허몽』 등의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진지한 사회 비판을 담은 짜임새 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꾸준히 발표해온 야쿠마루 가쿠 작가가 2011년 발표한 신작 미스터리 장편이다. 평범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비정한 사회의 일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도 살인범으로 몰린 주인공이 진범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은 수작이다. 발표 당시 일본 현지에서, 한 청년에게 닥친 비참한 현실과 바닥까지 추락한 처지를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현대 일본 사회의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었으며, 더욱 심화되어가는 범죄에 대한 구조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일본 현지의 평가처럼 『하드 럭』에는 현대 일본의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많은 범죄들이 등장한다. 보이스피싱, 계좌이체 사기, 개인정보 매매, 부동산 사기 등등. 하지만 본 책에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전혀 낯설지 않다. 연일 뉴스를 통해 듣던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펼쳐지는 일들은 한국의 독자인 우리에게 현실감 있게 전달된다. 과연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하드 럭』은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에게 생생한 현실감과 함께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들 것이다. ●후더닛 등 미스터리적 구성에도 충실한 미스터리 장편소설 『하드 럭』은 사회 병폐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는 책은 아니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회 문제를 주요 소재로 삼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틀은 미스터리 독자에게 익숙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바로 미스터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후더닛(범인 찾기) 스타일과 경찰소설의 전형인 범인 추적의 두 축을 이야기 흐름의 주된 구조로 사용한다. 주인공 아이자와 진은 일발역전의 기회를 노리려다 본의 아니게 강도짓에 가담하게 되고, 같이 모였던 익명의 동료들 중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다. 증거는 모두 자신이 범인임을 보여주고 있고, 하루하루 경찰의 추격망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현실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진범―그날의 동료들 중 누군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틀 동안 만나면서 발견하고 기억하는 사소한 단서를 쫓아 동료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후더닛 스타일로서만 봐도 전혀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인다. 또 다른 축은 그를 쫓는 형사를 통한 경찰 소설의 틀이다. 주인공과는 다른 시각에서, 또 드러난 여러 증거와 사건 정보를 통해 주인공을 진범이라 생각하고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경찰 소설의 흐름대로 시시각각 범인의 숨통을 조이듯 수사의 범위를 좁혀나간다. 그리고 그 수사의 중심에 선 한 형사가 가지는 사건에 대한 의문과, 경찰 조직과는 다른 개인적 시각은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던져준다. 이 두 가지 축을 통해 마지막 반전의 순간까지 독자들의 추리를 비웃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완성시킨 『하드 럭』은 미스터리 소설로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 구원의 메시지, 그리고 희망 이 작품을 읽은 뒤 느끼는 건 이런 비정하고 냉혹한 사회에도 희망은 존재한다는 작가의 메시지다. 『하드 럭』은 한 청년의 개인적 추락과 그로 인한 범죄, 그리고 절박한 추적의 미스터리 드라마이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악행이 만들어낸 치명적 범죄와 병폐, 그로 인한 희생자들의 아픔, 그리고 구원받을 수 없는 악인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인간 구원의 힘은 인간이라는 역설이 아니었을까. 본 작품의 에필로그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 장면에서 느껴지듯 작가는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에둘러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 생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과 의지의 힘. 아직 세상은 희망이 있다는 이 모든 구원의 힘에 대한 메시지는 미약해 보이는 개인들의 의지와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일러주려는 게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