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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상 가장 오묘한 인물, 알렉산드로스의 매력을 극대화한 소설
역사소설이 풍미할 때 거기에는 대개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사회 상황이 과거의 어떤 인물을 반추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이다. 즉,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직간접적인 해답을 줄 만한 대상으로서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고,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계시를 주는 것이다. 이 경우 독자 접근과 관련한 소설의 키워드는 "누구는 그때 이렇게 했었다"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헤쳐나갈 의지"를 부여하는 것인데, 양자의 연결 라인이 설득력을 가질 때 그 소설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게 된다.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낙담에 빠져 있던 일본인을 일으켜 세웠다는 평가를 듣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등이 그러한 예이다. 다른 하나는 인물이나 사건 자체가 갖는 매력과 호기심이다. 이때 그 소설의 성패는 작가의 이야기 솜씨에 크게 좌우된다. 허준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극대화시킨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고대 이집트에 관한 붐이 일었을 때 등장하여 각광을 받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가 그러하다. 물론 역사소설의 성패를 가늠할 때 위의 두 가지 측면을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만프레디의 『알렉산드로스』에 대하여 굳이 말하자면 이 소설은 후자에 좀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로서 알렉산드로스는 견줄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신격화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진면목은 다중의 시야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고 도식화된 이해에 머물 우려가 있다.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로서 나열되곤 하는 '위대한 정복자', '대제', '청년 사자왕' 등등은 그의 위업에 걸맞은 표현들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이 좀더 내밀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욕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도 실상은 그 대부분이 가려져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저자 만프레디가 1998년 이탈리아에서 『알렉산드로스』를 발표하여 영국, 프랑스 등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이어 미국 시장에까지 화제 속에 진입시킨 최대의 이유는 바로 그렇듯 '화석화'된 껍질을 제대로 벗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고고학자이자 고전문학가인 그는 역사의 흐름을 충실히 견지하면서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의 매력을 최대한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한편으로는 당대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고자 노력하면서도, 이와는 반대로 현대 독자들의 가독성을 배려하기 위해 과감한 현대적 용어들을 차용하기도 했다. 이는 저자가 클래식한 역사소설이라는 평판을 듣기보다는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의 궤적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야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결과이다. 어쨌든 전3권 1,562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미리 기가 질려버릴 독자들은 일단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면, 왜 이 소설이 그토록 유럽에서 또한 미국(특히 할리우드 영화가)에서 화제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캐릭터를 가지고 생생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 역사의 무대가 충실히 재현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맛깔스러운 대사들이 여기저기서 번뜩이고 있다는 것 등등은 이 소설의 최고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하여 고대 역사에 관해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도 알렉산드로스라는 기묘한 인물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가, 독서 후에는 이 위대한 인물에 관한 것뿐 아니라 고대사의 많은 지식도 얻게 되었다는 보람을 갖게 될 것이다. ■ 왜 알렉산드로스인가? 오늘 우리는 왜 알렉산드로스를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을 정의 내리고 내일을 점치기 힘든 시대다. 이처럼 불명확한 오늘, 내일을 꿈꾼다는 것은 헛된 몽상가의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꿈을 가졌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했던 알렉산드로스를 되짚어보면, 바로 그러한 몽상가적인 자세야말로 위기를 희망으로 바꾸는 동력이 됨을 알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알렉산드로스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충실한 기반으로 삼아 미지의 미래를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 노력가이기도 했다. 13세 때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역사와 철학을 배운 이래 기나긴 원정길을 지나 죽음의 길에 이르기까지 크세노폰의 {1만 병사의 퇴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우스』 등의 역사책을 항상 옆에 두고 있었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선물 받은 『일리아스』, {오디세우스』는 단순한 서적이 아니라 그의 꿈을 키워준 모태였다. 알렉산드로스에게 그리스의 고대사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듯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렉산드로스의 역사는 우리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한 축을 이룰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마케도니아의 왕이었고, 33세에 요절했으며, 이집트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정복자라는 것 외에 어떤 것을 알고 있을까? 사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신격화된 전설 또는 야설에 근거한 것들이다. 역으로 역사 자료들은 2,3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소멸·퇴색됐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다시 알렉산드로스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모습을 예측할 수 없는 난해한 인물이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었으므로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좀더 유연한 방식에 충실할 수 있었다. 군대를 지휘할 때 그는 아킬레우스였다. 인내의 본보기를 보여줄 때는 헤라클레스, 인도를 통과했을 때는 디오니소스, 세계제국을 다스릴 때는 키로스 황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냉정함과 격정을, 빠름과 느림을, 무절제와 절제를, 잔인함과 동정을, 교만과 겸손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이렇듯 알렉산드로스는 한 가지 빛깔로 정의하기엔 너무나 오묘한 인물이었다. 작가는 사실 그 자체에 충실할 뿐, 다양한 색을 가진 알렉산드로스를 애써 평가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작가의 주관은 단지 역사적 사실이 소멸된 공간을 개연성으로 엮어낼 때만 투영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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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자체가 플롯을 이루는 소설 『알렉산드로스』
이 작품은 소설인 동시에 엄정한 학술적 연구에 바탕을 둔 전기다. 이 소설에는 일부러 꾸며낸 상황이란 게 거의 없다.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의 역사 자체가 그대로 플롯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만프레디는 "이 플롯에 위압당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알렉산드로스는 32세 때 위대한 일을 이룩했다. 바로 그 나이 때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70개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며, 11번의 부상을 입고, 다뉴브 강에서 인더스 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자연의 힘이 가하는 모진 운명 앞에선 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를 망각하기 위해 싸웠고, 상상도 못할 행동들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해준다. 만프레디는 "이러한 역사적 결과들을 기록해놓은 산문들이 나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고 집필 방향에 대해 설명한다. 또 이 소설은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음식, 의복, 노래, 저주와 맹세의 말들, 캐릭터, 매춘부의 기원 등을 소상히 되살리고 있다. 소설 속 대화도 당대의 희극과 비극에서 가는 체로 건져올리듯 섬세하게 끌어온다. 한마디로 약동하는 생동감과 섬세함이 넘치는 소설이다. 이러한 점은 독자들이 쉽고 빠르게 알렉산드로스에 접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알렉산드로스의 모험을 매우 사실적이고 방대하게 이야기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소설로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문학작품이든 유물遺物이든 가능한 한 자료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현대적인 언어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로코스'나 '스트라테고스'라는 단어 대신 '대대'나 '장군' 같은 현대적인 용어들을 사용했으며, 고대 외과용 도구를 '메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또 무조건 역사적 자료에만 기초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그라니코스 전투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다. 유명한 칼리스테네스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상상력으로 엮어 묘사했다. 그렇지만 밀레투스, 할리카르나소스와 티로스의 포위 공격은 전술·전략적인 차원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재구성했으며, 작가가 직접 돌아보고 쓴 이수스, 가우가멜라 전투의 경우도 그러하다. 심지어 알렉산드로스가 맞이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순간들을 윤색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현했다. 다만 역사적 자료에서 부정적으로 제시하는 몇몇 일화는 작가의 판단에 근거해 원래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재현시켰다. 역사적인 사실과 관련해서는 플루타르코스와 시켈로스 등의 글을 기본으로 삼았다. 인류학적이고 풍습적인 배경은 플리니우스, 발레리오 마시모, 테오프라스토스 등의 행보에 대한 생생한 일화집을 토대로 했다. 그 외에도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의 전술과 프론티누스의 『전술론』, 그리고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인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