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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해설ㅣ신형철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 지면 |
Eun Hui Gyeong,殷熙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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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알은 달게 씹혀 목구멍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내 몸이 미칠 듯이 환호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장이 춤추듯 꿈틀거렸으며 뱃속이 흐뭇할 만큼 따뜻해졌다. 자, 네가 그토록 원하는 탄수화물이다. 숟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나는 이상한 감동으로 국밥을 퍼먹고 있었다. 굶주린 자식을 먹이는 아비의 마음을 넘어 고통받아온 몸을 구원하는 메씨아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자포자기, 그리고 자기 파괴적이며 충동적인 악의가 팔에 속도를 붙였다. 잔칫집의 초대받지 않은 식객답게 입가로 국물까지 흘리면서 나는 탐욕스러운 속도로 순식간에 국밥 그릇을 깡그리 비우고 말았다. 국물까지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자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이 상복 여인이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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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이던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서는 서른다섯번째 생일날,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전작이었던 장편 『비밀과 거짓말』이나 소설집 『상속』의 표제작에서 은희경이 바라보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어릴 적 아버지와 만나던 이태리 식당에 걸려 있던 보띠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잊을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는 뚱뚱한 모습만을 보였고, 이제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은 아버지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매일 먹는 밥을 거부하는 다이어트란 결국 인간의 문명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은, 끝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달라진 모습으로 빈소를 찾고, 아버지는 「비너스의 탄생」을 유품으로 남긴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을 거부하는 현실에서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부정이 음식에 대한 거부와 연결된다. 또한 이번 소설집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긴장과 착종이다. 서사를 따라 충실하게 읽다보면 소설 속에서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 현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은 사람들이 사고하는 일정한 패턴을 배반함으로써 긴장을 만들어”(「의심을 찬양함」)내듯이, 하나의 허구(소설) 안에 허구적인 설정이 겹겹으로 등장한다. 바깥의 허구(소설 속의 현실)보다 더 허구적이고 황당한 상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소설 속 삶과 현실은 오롯하게 다른 차원의 삶으로 열리며 진정성을 얻는다. 겹겹의 허구 속에서 한 차원 다른 생의 진실을 만날 수 있다. 「고독의 발견」에서 거짓말도 못하고 별볼일도 없는 만년고시생 주인공 K는 생일날 찻집에서 몽환적인 노래를 들으면 잠에 빠졌고, 그뒤로 펼쳐지는 일들은 꿈속처럼 묘한 분위기이다. 한 사내가 나타나 W시의 여관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W시에서 난쟁이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자신을 여러 개로 쪼갤 수 있다고 말하며 나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모두 꿈속 상황이고 인물이다. 다시 꿈에서 깬 K는 제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고독을 발견하고 소리없이 오열한다. 「의심을 찬양함」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도플갱어를 설정해놓고, 현실의 우연과 필연의 통계학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주인공 유진은 친구 S의 결혼식에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자신이 서점에서 산 책과 똑같은 책을 들고 탄 남자와 동석을 하게 되고, 오피스텔 밀집 지역에서 살던 당시의 일을 떠올린다. 유진은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 잘못 배달된 사과상자의 주인이라며 찾아온 오피스텔 옆동 남자를 동일인으로 생각하고 만날 약속을 하지만, 정작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은 그 남자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신의 형이 고의적으로 유진에게 접근했다며 세상에 운명이나 우연은 애초에 없고 과학과 인과관계의 법칙에 의해서만 지배될 뿐이라고 유진에게 강변한다. 「날씨와 생활」에서는 꿈 많은 몽상소녀 B가 출생의 비밀이나 언젠가는 세상을 놀라게 할 자신을 끊임없이 상상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고, 오히려 냉혹하기만 하다. 잔뜩 긴장한 B는 할부 책값을 받으러 온 수금원과 어머니의 담담한 모습에 주체할 수 없이 큰 웃음을 터뜨린다. 상상(혹은 환상)과 현실의 팽팽한 긴장이 풀리며 쏟아져나온 그 허탈한 웃음이야말로 은희경 문학의 진정한 페이소스이다. 끝까지 비극인 인생도, 마냥 희극인 인생도 없다는 명확한 이치를 깨달은 어린 소녀는 누구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삶이 녹녹하지 않듯이 소설도 쉽고 잘 읽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작가는 문장 하나하나에도 공을 들여 수사적 긴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로 말하자면, 질문과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인 채로 아름답고 낯설고 (섣부른 전망을 거절한다는 의미에서) 끝내 허망하기까지”(해설 ?거대한 고독, 인간의 지도?) 하다고 풀이한다. 선 굵은 서사 대신 독특한 서사와 인물을 통해 작가는 범상치 않은 일상과 현실의 단면을 극적으로 클로즈업함으로써 냉소와 위악 대신, 조용하고 나직한 공감과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수사든 서사든 무색무취하게만 느껴지지만, 삶과 현실을 관통하는 힘은 그의 전작이나, 요란한 그 무엇보다 힘이 세고, 그래서 아름답다. 이를 두고 김중혁은 흑백영화의 무궁무진한 색감에 비유하며 “그곳은 조금 불편할지 모르지만,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더 잘 깨달을 수 있고, 불편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뒤표지 글)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날씨와 생활」을 오디오북으로 꾸며 책과 함께 선보인다. 꿈많은 어린 몽상 소녀의 유쾌 발랄한 상상 속 세계와, 상상과 다른 냉혹한 현실을 빗댄 이 작품은 누구나의 유년시절일 법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오디오북에는 작가의 육성으로 소개하는 작품 설명과 성우들이 낭송한 작품이 실려 있다. 책과 문자로만 만나던 문학작품을 오디오로 듣는, 귀로 읽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