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蔣正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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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독서일기》를 낸다. 첫 권을 낼 때는, 적어도 1년 6개월에 한 권씩은 출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초발심이 식은 것은 아닌데도, 이번 권은 많이 늦었다.
책을 읽고도 독후감을 쓰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 간다. 하지만 내가 이토록 게을러진 이유는 따로 있다. 《독서일기》의 저수원 역할을 하는 ‘문학작품’ 읽기를 의식적으로 포기했던 게 원인이다. 왜 그랬는지는 교정을 보는 지금도 궁금한 사항이다. 이번 권을 내기 전에 《공부》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연극과 음악에 대한 글은 따로 한 권씩의 책을 내고자 원고를 분리했다. 예전 같았으면 모두 《독서일기》로 묶였을 글이지만, 《공부》의 경우는 애초부터 개인적 독후와는 다른 목적과 형식을 가지고 쓰였다. 연극과 음악 부문 역시 《독서일기》 속에 흩어 놓기보다 한 주제로 묶는 게 성실로 여겨졌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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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때를 벗겨내기 위한 폭넓은 독서의 시도
한일공통교재 제작팀의 《조선통신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의 《미래를 여는 역사》, 박규태의 《일본의 신사》, 권오기?와카미야 요시부미의 《한국과 일본국》과 같은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를 포함한 한일 관계를 다루는 도서에서부터 리처드 솅크먼의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 노르베르트 레버르트와 슈테판 레버르트의 《나치의 자식들》, 마이클 파렌티의 《비주류 역사》, 박성래의 《레오 스트라우스-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와 같은 정치와 역사의 연관성을 살필 수 있는 도서 등 문학 외에도 사회적이슈를 담은 것들이 다수다. 이 도서들 중에는 이병주의 《대통령들의 초상》처럼 ‘기서’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면서도 자신의 관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비슷한 분야의 여러 도서(라츠네프스키의 《칭기스칸》과 라인홀트 노이만 호디츠의 《칭기스칸》)를 찾아 읽듯이 다양한 관점으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의 독서일기를 통해 썼던 작가의 다른 책에 대해 쓰면서 그때의 자신의 해석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해보는 도서도 있다(엠마뉘엘 카레르의 도서들). J.ㅇ.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서처럼 당해의 도서뿐 아니라 예전에 읽었던 도서라도 필요하다면 다시 읽고 독후감으로 남겨놓은 것도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의견이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기획 또는 변론이 간간이 사족으로 붙거나 원고째 첨부되어 있어 작가의 독자에 대한 소통이 일방적이지 않음도 보여준다. 책과의 만남을 주선하다 저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독서일기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읽기와 쓰기가 어떤 검열도 의식하지 않고 어떤 권위에도 연계되지 않는 혼자만의 쾌락이 되길 원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독자나 저자 누구에게도 아무런 암묵적 힘을 행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떠한 영향력도 고려하지 않은 그의 자유로운 책읽기와 독서일기는 오히려 일반 대중의 책읽기에 새로운 충격과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왔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이 읽어본 책들을 독서일기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와 자신의 책 읽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대중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베스트셀러류에 대한 서평의 역할까지 함으로써 독서의 편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중얼거림에서 대화하기로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관한 내 관념은 몇 차례나 바뀌었다. 젊었을 때는 그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책을 읽었다. 그때 책은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는 것과 같이 내 개인적인 재산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다른 사람과 이해와 사랑을 나눈 방법으로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무엇엔가 중독된다는 말은 곧 외로움으로 통하지만, 책에 중독된다고 해서 외로워지지는 않는다.(본문에서)” 자신의 독서일기에 대해 ‘기껏해야 중얼거림에 지나지 않는 쾌락’이라고 했던 장정일은 이번 책에서 변모된 독서관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이 책에 실린 《장정일의 공부》에 대한 답변을 초록한 일기에서도 ‘극단적인 텍스트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고 쓰고 있다. 강의를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