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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쌍벽 황진이.이매창 … 천 년 절조絶調의 여성 예인 가장 낮은 것의 눈부신 솟구침, 비천卑賤의 비천飛天|나를 보겠거든 너를 보여라|대담한 감흥, 넘치는 시재詩才|검은 거문고의 딸, 지음知音의 인연을 맺다|허균, 황진이와 매창을 잇는 기묘한 고리|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한 조각 얼음을 품은 다정多情|늘 그리운 사람, 유희경|천 년 절조의 여성 예인 2. 동경 허난설헌.허소설헌 … 나는 그녀의 환생이다 난설헌이 되고 싶다|경계인, 변방의 적적한 삶|그 마지막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난설헌의 시에 운을 맞추어|홀로 고결한 난초를 그리다|세상에 음을 아는 이 없구나|마침내 만난 두 시인 3. 회우 운초.죽향 … 시인과 화가, 가슴속에 품은 우정 시로 쌓은 계단|자기 긍정의 힘|엉뚱한 재치, 구김살 없는 시흥|50년 연상의 남편|운초의 친구들, 그리고 특별한 벗 죽랑|조선의 여성 화가, 죽향|시인과 화가의 우정|가슴속에 품다 4. 대칭 김명순.김일엽 … 매장된 미완의 예술가 억울한 그녀들의 신원伸寃|미쳐 버리고 만, 근대 조선의 첫 번째 여성 작가, 김명순|자기 증명으로서 소설 쓰기|‘정숙한 처녀’와 ‘자유로운 신여성’ 사이, 내적 파열|1924년, 거대한 소문의 폭풍|“봄이 오면 자살하렵니다.”|짐작과는 다른 그녀, 김일엽|그들이 말하는 ‘최악의 탕녀’, 김일엽|소문에 묻혀 버린 ‘미완’의 작가, 김명순과 김일엽|이제 방탕함으로 성숙해지는 그녀들 5. 석연 나혜석.백남순 … 별들의 운행, 단 한 번의 스침 애석한 만남, 나혜석과 백남순|‘나혜석’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나혜석이라는 ‘인간’의 여러 풍경|파리에 가기 전, 화가로서의 고민|파리, 나혜석 앞에 열린 두 개의 문|별들의 운행, 단 한 번의 스침|백남순의 예술적 결기|‘조선의 한 쌍 보물’, 백남순 부부|완벽한 절망, 재가 된 그림들|나혜석과 백남순, 절멸 이후의 삶 6. 대구 윤심덕.최승희 … 세상보다 키가 컸던 두 여자 키 큰 여자|우여곡절의 윤심덕|자유분방한, 관대한 윤심덕|양보하는, 손해 보는 윤심덕|감상적인, 충동적인 윤심덕|탄탄대로의 최승희|엄격한, 독선적인 최승희|야심에 찬, 손해 보지 않는 최승희|고집스러운, 이성적인 최승희|두 여자가 기억되는 방식 7. 홀림 이화중선.김소희 … 소리에 홀린 사람 예술의 본질, 홀림|명창 이화중선의 전설|그녀의 삶, 조선 소리꾼의 생애|득음得音, 소리를 얻는다는 것|‘구름에 달 가듯’ 표표飄飄한 목소리|애기 명창의 천재 수학기修學期|다재다능한 팔방미인, 축복받은 예술가|기품의 판소리|홀림, 도취와 희열의 순간 8. 반조 이월화.복혜숙 … 여배우의 의리, 여배우의 우정 여배우들, 서로를 비추다|아찔한 도취, 난데없는 신예의 탄생|신파극, 신극, 영화를 모두 거친 여배우|추문을 몰고 다닌 출생의 비밀|여배우의 의리, 여배우의 우정|여배우의 관례를 깬 여배우|배우들의 왕언니|반조, 서로를 비추는 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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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예술가의 열정, 여성 예술가의 슬픔
그림 속에는 암녹색의 배경에 검은 옷을 입고, 굵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중년의 여자가 앉아 있다. 한때 거세게 타올랐을 정념을 가라앉힌 듯, 깊고 무거운 눈빛의 그녀는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어둡고 우울한 시선은 대체 어디를, 무엇을 향하고 있는 걸까. 조금은 지친 듯, 조금 은 근심스러운 듯, 고집스럽고 애처로운 눈으로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 예술가들을 이어 주는 끈 시인, 소설가, 화가, 무용가, 성악가, 판소리 명창, 배우. 황진이에서 복혜숙까지, 시대가 다르고 분야가 달라도 이 책에 소개되는 여성들은 대부분 ‘최초’이자 ‘최고’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더욱 눈에 띄었고, 남성 예술가였다면 겪지 않았을 오해와 편견과 냉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지은이가 ‘그녀’의 삶을 증언하는 작품과 자료를 뒤지던 중 그녀의 삶에 어른거리는 ‘또 다른 그녀’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녀들은 비슷한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갔던 동료이기도 했고, 한 세대를 격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준 스승이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들의 관계가 지은이에게 때로는 설렘을 주었고, 때로는 안타까움을 주었다. 그녀들이 서로에게 드리울 수 있는 그림자가 조금 더 짙을 수 있었다면, 나혜석의 그림 속 여자의 눈빛은 좀 덜 외롭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서로의 삶에 조금 더 깊이 관여할 수 있었다면, 그녀들이 견뎌야 했던 슬픔의 중량도 조금은 덜어지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이 책의 두 번째 강조점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여성 예술가들이 서로의 삶에, 서로의 예술 세계에 대해 주고받은 관계와 영향을 중심에 둔다. 아름다운 연대로 ‘슬픔을 놀다’ 책의 제목인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는 김승희 시인의 시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 시는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에 바쳐진 것이지만, 그냥 그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위무라 해도 좋을 듯했다.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오늘의 여성 예술가인 김승희와 공옥진이 느끼는 슬픔이 이 책의 주인공인 황진이, 이매창, 허난설헌, 허소설헌, 운초, 죽향,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 백남순, 윤심덕, 최승희, 이화중선, 김소희, 이월화, 복혜숙이 느낀 슬픔과 무어 그리 다르겠는가.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가슴속의 열정으로 새 길을 만들어 내고 싶어한 사람들이다. 그 꿈이 이루어졌든 좌절되었든…….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인 ‘입김’의 일원으로 활동 중인 화가 류준화의 <검은 드레스>를 본다. 그림 속에는 검은 원피스 자락에 맨발인 채로 팔랑팔랑, 한 여자가 화폭 밖으로 걸어 나가려 한다. 그런데 그림 속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녀, 춤추듯 슬픔을 놀아 보려는 그녀는 나다. 아니, 당신이다. 아니, 우리 모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