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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포템킨
리처드 휴 저 / 김성준 역
서해문집 200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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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역사책방

책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지은이 서문

제1장 구더기 문제
제2장 폭동의 도시
제3장 짜르의 선전포고
제4장 부둣가의 순교자
제5장 장례
제6장 포격
제7장 오데사 밖에서의 싸움
제8장 우왕좌왕하는 수병들
제9장 흑해 순항
제10장 망명객들

부록 : 러시아혁명과 포템킨 호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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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리처드 휴
1922년 영국에서 태어난 리처드 휴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바 있으며, 1946년부터 출판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1955년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출판사의 중역과 자문역을 맡아 일했다. 그는 소설과 아동서를 쓰기도 했으며, 해양사에 관한 저서로 특히 명성을 얻었다. 지난 1999년에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는 Captain Bligh and Mister Christian, First Sea Lord: A Life of Admiral Fisher, Nelson the Hero 등이 있다.
역자 : 김성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해양박물관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영국사학회 학술이사,『해양과 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유럽의 대항해시대]『영화로 읽는 바다의 역사]『중국의 배](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약탈의 역사],『역사와 바다],『서양해운사] 등 다수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6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36g | 153*224*20mm
ISBN13
9788974832544

책 속으로

마뚜쉔꼬와 그의 동지들은 도화선에 불을 붙여 폭발시킬 때가 드디어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은 고기가 보급되었고, 군의관이 이 고기의 폐기를 거부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폭력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만일 장교들이 스스로 자멸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면, 사태를 이보다 더 수월하게 이끌어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마뚜쉔꼬는 들고일어날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닥친 것이다.
푸른빛 상하의를 입고 칼을 꽂은 소총으로 무장한 위병 12명이 갑판장의 지휘에 따라 두 줄로 줄지어 후갑판에 도착했다. 위병들이 부함장을 마주 보며 정렬했고, 그 뒤에는 열지어 수병들이 자리 잡고 서 있었다. 길리아롭스끼이는 위병들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그들 머리 너머에 있는 수병들을 응시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정렬해 있는 위병들과 달리 수병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 p.31 '제1장 구더기 문제‘ 중에서

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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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1. 구더기 문제
세바스토폴을 출항한 포템킨 호는 1905년 6월 25일 텐드라 만에 닻을 내렸다. 그날 저녁, 어뢰정 N267정이 부식과 육류를 포템킨 호에 보급했으나, 날이 어두워 고기가 썩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6월 26일, 아침 당직자들이 갑판을 청소하다가 고기에서 악취가 나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썩은 고기가 보급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졌고, 수병들은 “일본인들도 이런 음식을 우리들에게 먹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군의관 스미르노프는 고기를 검사한 뒤 이상이 없다고 함장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수병들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고기로 끓인 스프를 먹으려 하지 않았고 저항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를 목격한 부함장 길리아롭스끼이 중령은 사태의 심각함을 함장에게 보고했다. 함장은 즉시 수병 670여 명을 후갑판에 집합시켰다. 함장은 사병들에게 엄포를 놓고는 해산을 명령했다.

2. 방수포 사건과 봉기
길리아롭스끼이 부함장은 상황을 확실히 종결시키기 위해 해산하려는 수병들에게 방수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반란자들을 방수포로 뒤집어씌우고 총살하겠다는 위협이었다. 위병 12명이 갑판장의 지휘에 따라 총을 들고 두 줄로 갑판에 도열했다. 부함장은 고기스프를 먹지 않겠다는 수병 중에서 임의로 몇 명을 골라냈다. 부함장은 위병들에게 발사준비를 명령했다. 이때 마뚜쉔꼬가 앞으로 나서며 위병들에게 총을 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총과 탄약으로 무장하라. 이제 우리가 배를 장악한다”라는 소리가 대열에서 퍼져나왔다. 부함장은 위병들에게 총을 발사하라고 명령했지만, 위병들은 총을 내려놓았다.
수병들은 무기고에서 무기를 갖고 나와 악질적인 사관들을 사살하고 배를 장악했고, 탈출하려던 함장을 잡아 사살했다. 봉기로 장교 7명이 죽고, 11명은 중상을 입었다. 2명의 사관은 봉기에 가담했다. 생존한 장교들은 N267정의 정장 끌로뜨 대위와 함께 감금되었다. 1905년 6월 27일 오후 3시, 포템킨 호는 봉기군이 완전 장악했다.

3. 노동자의 시위와 포템킨 호의 오데사 입항, 그리고 선전포고
1905년 당시 오데사는 제정러시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이 무렵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르샤바, 크림 반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곳곳에서 폭력시위가 발생하고 있었다. 4월 21일을 기점으로 오데사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봉기가 성공한 뒤 포템킨 호의 수병들은 전체회의를 열고 30명으로 구성된 인민위원회를 결성했다. 인민위원회는 파업과 시위가 번져가는 오데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6월 28일 아침, 포템킨 호의 인민위원회는 봉기의 와중에 죽음을 맞은 봉기 주동자 바꾸린축의 주검과 호소문을 육상으로 보냈다.

4. 순교자의 장례
수많은 사람들이 바꾸린축의 주검에 조의를 표하기 위해 부두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영화에서 오데사의 계단으로 나오는 리슐리외 계단에서 카자흐 군의 무자비한 발포로 수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학살당했다. 리슐리외 계단에서 발생한 학살 소식을 들은 포템킨 호의 인민위원들은 즉각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는 육지에서 온 사회민주당원 둘이 참석했다. 사회민주당 대표단은 카자흐 군대를 막기 위해 육상으로 무장병력을 파견하여 도시의 행정건물을 장악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인민위원회는 무장병력 상륙이나 포격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민위원회는 장례식을 꼴하노프 장군의 허락을 받아 거행하기로 하고, 협상단을 파견했다.
바꾸린축의 주검은 군인묘지에 안장되었다. 카자흐 군대는 장례식을 마치고 시가를 행진하는 시민 대열에 총을 발사하여 시민 몇 명이 쓰러졌다. 빠르멘 신부와 수병 9명은 보트를 타고 되돌아왔지만, 수병 3명은 실종되었다.

5. 오데사 시에 대한 포격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포템킨 호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소집되어 격론 끝에 오데사 시에 포격을 가하기로 결정한다. 마뚜쉔꼬는 장례단이 돌아온 뒤 포격을 개시하자고 제안했지만, 포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전체회의에 이 안건을 상정한다.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장례단이 귀선하여 수병 3명이 살해되었다고 보고한다. 이제 포격을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의 행정건물에만 포격을 하기로 결정하고 세 번에 걸쳐 포격했으나, 제대로 조준하지 못해 포격은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다.

6. 해군의 반격과 추격전
포템킨 호를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제정러시아 해군의 1급 전함 7척 중 2척이 봉기에 가담했다. 추흐닌 대장은 40명의 장교로 구성된 ‘자살분대’에게 포템킨 호를 나포하거나 침몰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이를 위해 220톤급 최신예 전함인 스뜨레미쩰느이 호가 투입되었다. 7월 1일 아침, 포템킨 호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게오르기이 빠베다노쎈 호가 포템킨 호에서 이탈하여 달아나던 중 좌초되었다. 게오르기이 빠베다노쎈 호가 항복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포템킨 호의 수병들은 ‘루마니아로 갈 것’을 결의했다. 사회민주당원들은 설득하려고 했지만, 수병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7월 2일 오후 4시경, 포템킨 호는 루마니아의 콘스탄차 항에 입항하여 식량과 석탄을 보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루마니아 당국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포템킨 호는 논란 끝에 페아도시아로 가기로 결정했다. 페아도시아 군수는 식료품은 제공할 수 있으나, 식수와 석탄은 보급할 수 없다고 했다. 석탄을 공급받기 위해 나섰던 마뚜쉔꼬와 수병들은 오히려 페아도시아 군의 공격을 받아 수병을 3명을 잃었다. 그들은 결국 루마니아의 콘스탄차로 돌아가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7. 망명
포템킨 호는 7월 8일 아침 2시에 콘스탄차 항에 닻을 내렸다. 마뚜쉔꼬는 군사령관에게 포템킨 호를 헌납한다는 조건으로, 포템킨 호의 전 수병이 루마니아 국적을 취득하여 영주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루마니아에 남기를 거부하는 사관과 수병은 세바스토폴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되돌아온 수병들 중 7명은 종신형, 19명은 시베리아 유형, 35명은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루마니아에 남은 600여 명은 1906년 사회민주당이 주도한 루마니아 농민봉기가 일어나자 85명은 재판 없이 투옥되었고, 봉기가 진압된 뒤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마뚜쉔꼬와 그의 동료 4명은 1907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사면되어 고향으로 되돌아가던 중 국경에서 체포되어, 마뚜쉔꼬는 반역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4명은 시베리아로 유형되었다. 마뚜쉔꼬의 오른팔이었던 드미첸꼬는 동료와 그 가족 31명과 함께 1908년 여름 루마니아를 탈출하여 런던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추천평

포템킨 호의 역사를 재창조한 뛰어난 작품이며, 매혹적인 해군 이야기
San Francisco Chronicle
전혀 꾸미지 않은 역사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그만인 작품이다. 이 책에서는 극적 요소보다 학자적인 객관적 연구가 더 중시되었다.
New Yorker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서막이었던 이 놀라운 해양의 이야기가 경탄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과 감정, 그리고 지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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