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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한반도 분단을 보는 시각 불완전한 해방 1941~1945 과도기 건국 준비운동 1945. 8.16 ~ 9.6 미국의 진주와 미군정의 수립 과정 소련군의 진격과 민정부의 수립 분단 체제 구축의 내부 구조 마련 분단의 대외적 구조 마련 분단 체제 구축의 내부 구조 마련 발문 참고자료 후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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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을 보는 시각"에서는 분단이 민족사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현상이며, 이러한 분단은 외세가 가져다 준 것이지만, 이러한 분단을 고착화시킨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주장을 편다. 따라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민족 내부를 단합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며, 여기에서 통일의 주체는 민족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불완전한 해방"에서는 신탁통치 문제를 논의한 ‘모스크바 의정서’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이 의정서에 숨겨진 미·소 양국의 의도를 분석한다. 탁치는 당시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독립이라는 목적을 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호정부 수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의 상대적 우세를 보장하여 우호적 정부 수립을 기도하였다면, 소련은 국내 정치세력을 끌어들여 우호적 정부 수립을 꾀하였다. 탁치는 형식적으로는 독립의 수단으로 소련에 의하여 규정되었으나 이는 자신들의 숨은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며,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 칼 레너가 “공산화는 소련에 예속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실질적으로는 우호적 정부 수립을 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과도기 건국 준비 운동기"와 "미군의 진주와 미군정의 수립과정"에서는 오스트리아와는 달리 우이는 내부 분열로 말미암아 민족의 단결된 힘을 과시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과정을 살피면서, 특히 우리의 지도자들이 상황판단에 뒤짐으로써 적국이 아니었음에도 피점령국의 대접을 받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소련군의 진격과 민정부의 수립"에서는 소련이 북조선에 진주하면서 시행한 외교정책의 핵심목표는 무엇인가를 검토하였다. 특히 스탈린이 유고의 질라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영토를 점령하는 자는 또한 자기 자신의 사회제도를 그곳에 강요하는 법이다”라고 시인했듯이, 슈티코프 미소공위 수석대표 인사 연설문(112~113쪽)을 분석함으로써 친소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으며, 북한 지역에 대한 통제권 확보라는 기본목표를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소련은 점령군 사령부 안에 ‘소련 민정(민정부)’라는 특별기관을 설치하고 제35군의 군사회의 위원이었던 로마넨코 소장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들은 미군정과는 달리 엄격한 보안 속에 신중하게 움직였다. 소련 군인은 한국인의 행정부서에 고문관으로 기용되었고, 소련계 2세들이 모든 부서의 부책임자로 임명되었지만 이들 소련인들이 한국인의 행정부서에 나타난 적은 없고 대신 한국인이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분단의 대외적 구조 마련"에서는 모스크바 의정서 처리를 위한 미소고위를 중심으로 한 미·고위가 찬탁과 반탁문제로 대리하는 상황에서 갈등관계를 검토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소련의 민정부는 1946년에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는 과정을 소개, 남과 북은 이미 통일을 이룰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섰음을 밝힌다. 한편 남한에서는 단정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밝혔다. "분단체제 구축의 내부구조 마련 Ⅰ"에서는 미군과 남한 정치 세력 간의 관계와 소군과 부관 정치 세력 간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여기에서 먼저 미군의 준비 부족과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일어난 시행착오와 갈등관계를 다루고, "분단체제 구축의 내부구조 마련 Ⅱ"에서는 조만식이 제거되고 김일성이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못한 상황 소에서 아직도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