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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 동아시아 나라들이 본 서양 근대 의학
1부. 한국이 도입한 서양 근대 의학 인정의 의술전통과 의료 근대화 국가의료의 중심, 서양 근대 의학으로 이동하다 조선정부와 의료 선교사의 동상이몽 2부. 일본·중국·대만이 경험한 서양 근대 의학 일본 : 홍모의학에서 출발한 의학 근대화 중국 : 공중보건과 나라 체면 세우기 대만 : 식민지배가 갈라놓은 의학계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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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의 의의
오늘날 의료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점하는 비중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의학과 병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반은 여전히 협소한 상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의학과 병원의 역사적 변천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그를 토대로 의료계와 국민 일반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간된 책이 바로 서울대학교 병원역사문화센터가 엮고 도서출판 태학사가 펴낸 『동아시아 서양의학을 만나다』다. 따라서 이 책이 그동안 소모적인 “뿌리 논쟁”으로 인해 한국 근대 의료사에서 주목되지 못했던 부분을 재조명하고, 세계사적 시야에서 한국의 경험을 재평가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유럽 의학이 제국의학(帝國醫學)으로 유럽 의학은 19세기 중반까지도 다른 세계의 의학을 압도하지 못하였다. 당시 인명(人命)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요인이었던 전염병에 대해서는 보건 위생의 영역에서 일부 두드러진 진전이 있었을 뿐, 유럽 의학도 확실한 치료 및 예방법을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반면 비유럽 세계의 의학은 특유의 풍토적 조건에서 누적된 임상 경험을 통해 독자적으로 발전해 왔고, 나름대로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서양 의학 수용 배경 동아시아의 청나라, 조선, 일본, 대만은 이러한 서양 의학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며, 이를 어떻게 발전시켰는가? 이러한 문제를 이 책은 총론에서 전체적인 개관을 하였으며, 제1부에서는 제중원·광제원·대한의원 등으로 이어진 근대 한국의 서양 의술 수용의 역사를 개관하였다.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는 대한의원의 정체(正體)로, 대한의원은 지금까지 일본의 통감부가 세운 침략 정책의 산물로 간주되었으며, 실제로 대한의원은 1910년 강제 병합 후에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일본에 의해 달성된 문명의 상징처럼 선전되었다. 그리고 1926년 경성제국대학의 개교 이후에는 의학부의 부속 병원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대한의원 창설의 배경에 관한 충분한 고찰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1907년 3월 대한의원의 출현은 결코 통감부의 독자적 시책의 산물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의 왕정(王政)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인정(仁政) 차원에서 농업기술과 함께 의술의 개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어왔다. 의술에 대한 이런 특별한 전통 덕분에 서양의 근대 의술을 만난 시점에서 그 수용문제에 대해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런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 관계의 난맥으로 뜻대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제중원과 그 학당, 광제원과 학부 의학교, 육군병원 등을 창설하여 나름대로 발전을 꾀하는 역사를 남겼다. 제2부에서는 청나라의 경우, 중국의 최고위 관료였던 리훙장(李鴻章)이 서양 의학을 우선 군사 부문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서양에 대한 군사력의 열세(劣勢)는 군진 의료의 열세(劣勢)와도 관련된 것이었고, 더구나 서양 의학의 외과술(外科術)은 중국 전통 의학이 갖지 못한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세기 중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개항한 직후, 서양 문물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막부(幕府)의 무능을 성토하고 서양 세력을 배격하는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면, 서양 문물을 신속히 도입하여 열강의 일원(一員)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양한 주장들이 착종(錯綜)하였고, 이는 내전(內戰)으로 이어졌다. 내전(內戰)을 통해 서양 의학의 외과술(外科術)의 우수성을 확인한 군부는 서양 근대 의학 수용의 주요 통로가 되었다. 개항 이후 내부의 저항에 직면한 막부는 수백 년 간 관계를 맺어 왔던 네덜란드에 군사 교관을 요청하였고, 네덜란드는 그 요청을 수락하면서 군의(軍醫) 폼페(J. L. C. Pompe van Meerdervoort)도 함께 파견하였다. 일본은 이렇게 받아들인 서양 의학을 제국의학으로 재생산하여 한국과 대만을 식민지화하는 데 적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