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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노바를 시작할 땐... 이 앨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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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1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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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브라질이란 나라는 펠레와 호나우두로 대변되는 축구와 사순절 사흘 전에 행해지는 카니발 그리고 삼바라는 유희성 짙은 단어로 각인 되어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백여 년 전 포르투갈의 탐험가 알바레스 페드로 카브랄에 의해 서구세력에 노출된 브라질은 아메리카 전 대륙이 그러하듯 유럽의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였고, 남미에서는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기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여타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있다. 유럽의 멜로디와 아프리카의 리듬이 만나 재즈가 탄생되었듯이 열대지방의 감성과 열정, 낙천적 사고방식이 담긴 그들의 음악 '삼바'는 무릇 재즈와 만나 '보사노바'라는 음악을 탄생시켜 세계인들과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1950년대 중반 미국에서 소위 웨스트코스트 계열의 백인 뮤지션들의 주도하에 펼쳐졌던 쿨재즈(Cool Jazz)의 영향은 브라질에 그 파급효과를 미쳤는데, 바로 보사노바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안토니우스 카를로스 조빔이 수신 상태가 좋지 못한 라디오를 통해 미국의 재즈방송을 들으며 삼바의 리듬과 쿨재즈의 멜로디 라인을 혼합하여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사실 '새로운 경향'이라는 의미인 보사노바는 후세에 와서 장르화로 정착된 것이며, 브라질 본토인이나 60년대 미국에서는 보사노바라는 단어보다는 '삼바' 혹은 '재즈 삼바'로 통용되고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삼바와 보사노바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뚜렷이 존재하는데, 삼바는 타악기 위주의 리듬 음악이라면 보사노바는 기타 중심의 단선율적 멜로디와 가사전달을 우선으로 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작곡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더불어 보사노바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작사가 비니시우스 데 모라에즈를 꼭 기억해야만 한다. '조빔과 모라에즈의 콤비가 창조한 곡들은 보사노바의 명곡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될 만큼 이들은 아름답고 뛰어난 곡들을 창조해냈다. 어쨌거나 브라질에 국한된, 그것도 중상층의 계층에서 소수만이 즐겼던 보사노바가 세계 무대에 최초로 어필했던 것은 1958년 미국무성 주최의 문화사절단으로 브라질 공연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가 그곳에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들을 듣고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때맞춰 1959년 영화 「흑인 오르페」의 사운드트랙이 조빔과 루이즈 봉파의 곡들로 채워지며 대중과 뮤지션들 사이에 보사노바가 회자되기 시작한다. 1962년 테너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와 찰리 버드가 함께 발표한 『Jazz Samba』앨범에서 'Desafinado'가 반향력을 일으키며 재즈의 어법적 한계에 부딪힌 웨스트코스트 계열의 뮤지션들에게는 보사노바는 새로운 돌파구로 작용하였고, 이듬해 조앙 질베르토, 어스트루드 질베르토 부부와 스탄 게츠가 함께한 『Getz/Gilberto』앨범에서 우리에게도 너무도 친숙한 'The Girl from Ipanema'가 빌보드 차트에서 비틀즈를 끌어내리며 그 절정에 이른다. 『GETZ/GILBERTO』, 게츠-질베르토-조빔의 삼위일체 이렇듯 본작은 바로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의 대표앨범이자 보사노바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스탄 게츠는 자신은 이 앨범을 통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있다는 인생의 정설처럼 게츠의 음악적 업적은 '보사노바'로만 국한되어졌고 조명받았다는 역작용도 있었다. 그의 4~50년대의 쿨재즈 시대와 70년 이후의 하드밥 스타일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피해갔고 또한 이후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팬들의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는 못했다. 물론 이는 100% 『Getz / Gilberto』의 성공에만 기인한 현상이라기보다 60년대 초반 비틀즈의 British Invasion이 미국의 대중을 강타한 이후 대중음악의 판도가 재즈에서 팝으로 완전하게 자리바꿈을 했던 요인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을 한 것이 우선이겠지만. 아무튼 『Getz / Gilberto』는 'Desafinado' 이후 재즈삼바의 열풍을 몰고 온 재즈의 시장에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확고부동하게 심었던 작품으로 앨범의 대부분의 곡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곡들로 채워졌으며 아울러 조빔과 함께 1958년 브라질에서 『Chega de Saudade』 앨범을 레코딩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조앙 질베르토와 그의 부인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호흡이 절묘하게 녹아 스며 있다. 특히 'The Girl from Ipanema'와 'Corcovado'에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소녀적 보컬로 단숨에 재즈계에 떠오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의 경우 본작을 녹음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공연이나 레코딩 경험이 전무한 아마튜어였었다는 점이 무척 특이하다. 여하튼 이 작품의 성공으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정한 뒤 보사노바쟀 전령사로의 역할을 수행하며 1994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조앙,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부부 역시 스탄 게츠의 후속 작 『Getz Au Go Go』이후 솔로 활동을 펼쳐갔는데 조앙 질베르토보다는 부인인 아스트루드의 레코딩활동이 더욱 활발했다. 1964년 『The Shadow of Your Smile』의 솔로앨범을 필두로 『The Warm World of Astrud Gilberto』(64), 『The Astrud Gilberto Album』(65), 『Look to the Rainbow』(65), 『A Certain Smile, A Certain Sadness』(66) 등을 비롯하여 1971년 『Gilberto with Stanley Turrentine』앨범을 끝으로 잠정 은퇴할때까지 솔로보컬리스트로서도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