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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책소개

목차

-옮긴이 머리말
-서 론

제1장 개척의 주요 단계
1. 초기 개간시대
2. 대개간 시대
3. 중세의 대개간으로부터 농업혁명까지

제2장 농경생활
1. 구(舊)농업의 일반적 특징
2. 윤작의 유형
3. 경지제도: 기다란 개방경지제
4. 경지제도: 불규칙한 개방경지제
5. 경지제도: 울 쳐진 경지제

제3장 14~15세기 위기까지의 장원제
1. 중세 초기의 장원제와 그 기원
2. 대토지소유자에서 소작료 수취생활자로의 영주의 변모


제4장 중세 말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장원제와 토지소유의 변천
1. 장원제의 법적 측면에서의 변화와 농노제의 운명
2. 영주 재산의 위기
3. ‘영주적 반동’ 및 대토지소유와 소토지소유

제5장 사회집단
1. 망스와 가족공동체
2. 농촌공동체와 공유지
3. 농촌사회의 계급

제6장 농업혁명의 개막
1. 집단용익권의 최초 철폐 사례: 프로방스와 노르망디 지방
2. 초지에 대한 집단용익권의 소멸
3. 농업기술 혁명
4. 농업의 개인주의화: 공유지와 울타리 치기

제7장 현재에 대한 과거의 영향

-옮긴이 해제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 1886~1944)
프랑스 리옹의 유태인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공부했으며, 독일의 라이프치히대학과 베를린대학에 2년간 유학한 바 있다. 1908년에 역사학 및 지리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고, 1920년에는 소르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몽펠리에 고등학교와 아미앵 고등학교의 교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대학과 소르본대학 등에서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실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가진 실천적 역사가였던 그는 공화주의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했으며, 나치의 프랑스 점령 아래서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가 1944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58세의 나이로 고향 근처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면서도 박사학위 논문인 “왕과 농노”를 비롯하여 10여 권의 저서와 100편에 이르는 논문 등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연구업적은 질적 수준 면에서도 우수한 것이어서, 그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역사연구는 단순히 탁월하다는 데 그치지 않고, 사학사적으로 역사학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역사학의 신경지를 개척했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세기 이래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사건사 내지 제도사 위주의 랑케사학과는 달리, 그는 인간은 복합적?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집단적 연관성과 장기 지속적 거대 구조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역사는 전체사적이고 사회구조사적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획기적 역사인식과 이에 따른 혁신적 역사연구 방법론은 이른바 아날(Annales)학파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후 기존의 전통적 랑케사학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세계 역사학계를 주도한다. 그의 새로운 역사학이 가장 잘 표현된 대표적인 고전적 저서로는《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외에《봉건사회》를 들 수 있다.
역자 : 이기영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3년 이래 현재까지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사학위 논문인 “고전장원제하의 농업경영”을 비롯하여 서양 중세의 농촌사회와 농업에 관한 20여 편의 논문이 있으며,《서유럽 농업사 500~1850년》,《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등의 번역서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7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153*224*35mm
ISBN13
9788930082426

책 속으로

엄청난 노력이 경주되었던 이런 개간작업에서 최대의 난제는 나무와의 싸움이었다. 나무 때문에 오랫동안 경작지의 확대는 별 진전이 없었다. 십중팔구 오늘날보다 더 건조한 기후의 덕을 보았을 신석기 시대의 경작자들이 즐겨 그들의 촌락을 건설했던 곳은 가시덤불로 뒤덮인 땅이거나 풀이 무성한 땅, 또는 스텝이나 황야였다. 나무를 캐내는 일은 보잘것없는 연장을 사용하는 그들에게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시대, 즉 로마시대부터는 다수의 울창한 숲의 개간이 시작되었으며, 프랑크 시대에도 이런 개간작업은 계속되었다. 예컨대, 9세기 초에 루아르 강과 알렌 천(川) 사이에서 영주 탕크레드가 라노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촌락의 토지를 취득하게 된 것은 “울창한 숲의 제거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중세 초기의 숲, 곧 먼 옛날 프랑스의 숲은 일반적으로―심지어 숲 속의 빈터에 경작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다른 방식의 이용이 없거나 인적이 끊겼던 것은 아니었다.

---본문 내용 중에서

출판사 리뷰

블로크의 획기적인 역사인식과 이에 따른 독창적인 연구방법론이 그의 저서들 가운데서도 가장 잘 표현된 저서가 바로《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이다.

이 책에서 사용된 연구방법과 사료는 혁신적이다. 이를테면, 블로크는 문헌기록이 드문 역사분야의 연구에서는 문헌사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구체적인 과거 사회의 제도적, 물질적 흔적의 관찰을 통해 과거의 모습이 재구성되어야 한다면서, 시간의 역방향으로 추적하는 소급적 연구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또 프랑스 농촌사에서 일어난 변화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유럽적 차원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교사적 연구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료에서도 전통적 농업사 연구자들이 특허장과 같은 증서류를 주로 사용한 데 비해, 그는 지적부와 지적도, 관습집과 법률서적, 진정서, 각종 단체의 결의사항, 문학작품 등 그 전에는 이용되지 않은 것들을 개발하여 사용한다.

블로크가 이 책에서 제시한 연구지침과 연구방법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생산적임이 증명되고 있다. 그가 밝힌 견해도 오늘날에는 특히 세부적인 면에서 부분적으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지극히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적어도 농촌사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하거나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오늘날에도 농촌사를 비롯한 서양의 사회경제사 연구자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으며, 마르크 블로크는 그들 사이에서 학문적 ‘아버지’ 또는 ‘스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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