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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권씩 발간될 총 12권의 시리즈, 그 1차분 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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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Proust,Marcel Valentin Louis Eugene Georges Proust
마르셀 프루스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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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느 과자의 입에 물려 있던 시간의 기억
--- 문은실 (bowls@hanmail.net)
“지나가 버린 우리들의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수고이다. 우리가 아무리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는 우리의 의식이 닿지 않는 아주 먼 곳, 우리가 전혀 의심해 볼 수도 없는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대상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
중년이 된 `나'가, 어린 시절의 어느 땐가 여름을 두 번 보낸 콩브레에서의 기억을 버림 받는 데 대한 공포감으로밖에 간직하지 못하던 `나'가 콩브레에서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는 것은 저 유명한 마들렌느 과자를 통해서이다. 추운 겨울 날, 홍차에 적셔 먹던 마들렌느 과자에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시간이 장막을 걷고 터져나온다. 언제나 데자부(deja-vu)로 감각 어느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기억이 `순전한 우연', 다시 말하면 프루스트라는 예술가의 상상력, 그 탁월한 기억력과 예감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프랑스의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권을 각색하여 12권으로 나누어 1년에 한 권씩 펴낼 계획을 하고, 먼저 세 권을 내놓았다. 이 세 권은 프루스트의 원작 1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세 권이 우리 나라에서도 1999년 첫 편을 시작으로 모두 번역·출간되었다. 이제 아홉 권이 남았으니, 역자 정재곤 씨가 첫 책 `콩브레편'의 역자의 말에서 말한 기다림의 시간 11년은 이제 9년으로 줄어든 셈이다. 예외적으로 `본문'이 시작되기에 앞서 따로 페이지를 차지한 `역주(譯註)'며(역주를 앞에 둔 것은 여전히 의아하다. 너무 겁부터 먼저 준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다^^), 페이지마다 빼곡한 글자가, 역시 만화로 그리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본문에 들어서서 글과 그림을 주거니 받거니 보고 있다 보면 그러한 생각이 무지에서 발로하는 만화에 대한 편견을 그 얼마나 보여주는 소치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물론 반대로, 만화이니 무조건 훌륭하고, 영상으로 보여주니 다 따고 들어간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외에의 훌륭한 그림이, 글자로만 보면 힘겹게만 느껴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가독성이 극대화시키는, 정말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문의 노란 칸에는 프루스트 원작의 내용이 발췌되어 그대로 담겨 있는데, 외에가 그린 그림과 각색한 대사가 보기 좋은 충돌을 이루며 이 책에 녹아 있다. 프루스트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프루스트를 연구해온 역자의 노고도 책의 면면에 함께 스며들어 있다. 시간의 짐을 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억을 상실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의 화자 `나', 마르셀은 자신의 존재와 기억이 뿜어져 나온 시골 마을 콩브레에 대한 기억을 잊고 산다. 늘 누군가와 저녁 식사와 사교 모임을 하던 부모에게서 굿나잇 키스를 받지 못한다는, 매일 밤마다 버림받았다는 기억만 얄궂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홍차 향기와 입 속에 녹아든 마들렌느 과자가 이끌어낸 기억은 너무도 급작스럽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은 점점 차분하고 선명하게 마르셀의 마음을 채워간다. “물이 담긴 사기 그릇에 형체 없는 종이 조각들을 넣자마자 좋이가 퍼지고, 윤곽이 생기고, 색깔이 나타나고, 또 제각기 서로 다른 모양이 만들어져 꽃이 되고, 집이 되고, 우리가 잘 아는 사람 모습이 되는 일본 놀이에서처럼.” 마을 사람들이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을 아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기는 레오니 이모, 부모님, 르그랑댈 씨, 블로크, 프랑스와즈. 아돌프 종조부, 뱅테이유와 그의 딸, `지오토의 자비상' 부엌데기, 스완 씨, 그리고 그이 딸 질베르트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감각과 의식의 저 한 편에서만 확실했던 것이 선연한 언어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귀족이 되고 싶은 욕망을 기어이 부여잡고 살던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들. 부자의 불행에는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가난한 부엌데기에게는 잔인한 하녀 프랑스와즈, 사람들이 발길을 끊게 하고 그녀 자신도 사람들에게서 발길을 끊었으면서도 여전히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 알아야 하는 콩브레 집의 주인 레오니 이모. 게르망트 쪽으로 난 산책로에서 만난 질베르트, 경멸의 눈빛을 한번 보내는 것만으로 마르셀의 사랑을 얻은 질베르트, 그리고 이상적인 작가 `베르고트' 같은 글을 쓰기를 꿈꾸는 나, 마르셀. 콩브레 시절의 어린 마르셀과 중년의 마르셀은 마음의 성당 안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이제 막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9년이라면, 여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지성스러움이 필요할 법하다. 그러나 70페이지 남짓 되는 책을 1년에 걸쳐 쓰고 그리는 저자와, 우리 말 맛에 맞게 다듬는 번역자의 공을 생각하면, 그 기다림은 아무래도 비길 것이 못 되는 수고이다. 우리는 그저 영 잊지만 말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고 또 찾아오는 `성찬'에 초대 받을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될 일이다. (북키앙 53호 '고전/Oldies But Goodies'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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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진풍경 뒤에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숨어 있었다. 그 문제는 다름 아니라, 이 거대한 수족관의 유리가 그 속에서 유유히 떠다니며 잔치를 벌이는 신기한 바다 생물들을 바깥 세상으로부터 언제까지 보호해 줄 것인지, 지금은 구경꾼들이 어둠에 묻혀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고만 있지만 이들이 언제 수족관을 덮쳐서 그 안의 물고기들을 잡아먹을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어둠에 묻힌 채 넋을 놓고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인간 어류학'에 능통한 문필가도 끼어 있을 수 있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는 음식물을 삼키는 여느 늙은 암컷 물고기의 주둥이를 관찰하면서 이를 종에 따라 혹은 선천적 성질에 따라 분류하고픈 욕망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후천적 성질에 따라 분류할지도 모르는데, 이 여자는 바다 물고기 주둥이를 하긴 했지만 라로슈푸코 집안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포부르 생 제르맹이란 민물에서 성장한 물고기란 사실을 간파할 것이기 때문이다. --- pp. 20~21 (2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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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불을 환히 밝힌 호텔 식당으로부터 사방으로 빛이 퍼져 나갔다. 그때 호텔 식당은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으로 변모하는 동시에 바깥의 어둠에 파묻힌 채 발벡 공장 노동자며 어부며 근처에 사는 서민들의 무리가 앞다투어 수족관 유리에 얼굴을 부벼대며 호텔 내부를 구경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감미로운 황금 물결 위로 부유하는 호텔 손님들의 호사스러운 몸짓은 가난한 그들에게는 마치 신기한 물고기나 연체동물을 보는 듯이 별천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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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은 파티가 끝나고 내가 호텔로 돌아와 비로소 나 혼자가 되었을 때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그 기쁨은 사진술에서 느끼는 기쁨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면하고 있을 때는 그저 '찰칵'하고 네거티브 필름만 찍은 셈이어서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야 현상을 할 수 있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닫혀져 있는 내 안의 암실에 홀로 들어앉아 있을 때라야 비로소 차분히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교계 모임 중에 우리의 이름이 주인의 입을 통해 소리 높이 고해지는 순간, 그것도 엘스티르와 같은 인물에 의해서 이름이 고해질 때, 마치 동화 속 요정이 대번에 사람을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것과도 같은 이 엄숙한 순간에, 우리가 그토록 곁에 있고 싶어하던 사람은 일시에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법이다. 아가씨에게 접근을 해서 궁금했던 것들을 점차로 알아 가는 동안, 아가씨에 대한 인식은 마치 뺄셈처럼 이루어졌다. 내가 가장 먼저 수정해야 했던 것은 그녀의 이름과 가족상황에 관한 것이었다. 다음으론 사근사근해 보이는 아가씨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마침내 나는 이 아가씨가 말할 때마다 '아주'란 단어 대신 '완전히' 란 부사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랐다. "그 여잔 완전히 미쳤어요. 하지만 마음은 아주 착한걸요" '완전히'란 말이 귀에거슬리기는 했지만, 이 말은 자전거 선수 차림에 골프에 미쳐 있을 정도로 끼가 있고 톡톡 튀는 여자라고 여겼던... "그 사람은 완전히 진부하고 완전히 따분한 사람이예요..." 이 아가씨가 어느 정도의 지식과 교양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나는 알베르틴과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눈 밑에 있는 점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순간, 그날 저녁 마침내 그녀가 엘스티르 씨 댁을 떠나는 무렵 그녀의 턱 위에서 점을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중에 알베르틴을 다시 만날 때마다, 그녀가 얼굴에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하지 않은 나의 기억 때문에 언제나 점의 위치가 달라 보였다. --- p.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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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극도의 희열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이 희열감이 홍차와 과자 때문에 생겨나긴 했지만,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운 것이다... 그후, 연거푸 열 번은 더 마셔 봐야 했는데...
지금 내 안에는 과자 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과연 내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갑자기 내 눈 앞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레오니 이모) 이 맛, 이 맛은 바로 콩브레에서의 일요일 아침, 레오니 이모께서 홍차나 티욀차에 적셔 주시곤 하던 마들렌느 과자의 맛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레오니 이모" 물이 담긴 사기 그릇에 형체 없는 종이 조각들을 넢자마자 종이가 퍼지고 윤곽이 생기고, 색깔이 나타나고, 또 제각기 서로 다른 모양이 만들어져 꽃이 되고, 집이 되고, 우리가 잘 아는 사람 모습이 되는 일본 놀이에서처럼, 이모네 정원에 핀 꽃, 스완 씨네 넓은 뜰의 온갖 꽃들, 또 비본느 강의 연꽃은 물론, 순박한 마을 사람들, 작은 집들, 그리고 마을 성당, 나아가 콩브레 전체와 그 근방, 이 모든 것, 마을과 정원들이 모두 내 홍차 잔으로부터 고스란히 살아서 나왔다. --- pp. 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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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제방에서 멀리 떨어진 발벡 신시가지에 있는 엘스티르 씨의 아틀리에를 마지못해 찾아나섰다.
엘스티르씨가 살고 있는 집은 외양이 꽤나 흉칙한 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집을 택해 사는 까닭은, 이 집이 발벡에서 그가 아틀리에로 쓰기에 충분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집이기 때문이었다. 엘스티르씨의 아틀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일종의 실험실처럼 보였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의 아틀리에에 있는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그가 발벡에서 그린 바다 풍경화들이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그의 그림이 간직하고 있는 매력이, 이를테면 시에서 은유라고 부르는 기법과 마찬가지로 대상을 변모시키는 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이 변모의 기법은, 육지와 바다를 함께 그리면서도 이 둘 사이의 경계를 없애 버리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예컨대 이런 종류의 은유는 엘스티르가 불과 그 며칠 전 완성한 캬르크튀이 항구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데, 화가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마을은 바다의 요소를 빌려 표현하고, 반대로 바다는 뭍의 도회지적 요소를 빌려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항구를 그린 그림이긴 하지만, 이 그림은 바다가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고, 육지는 바다의 속성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물과 뭍 모두에 사는 양서류처럼 그려지고, 사방에 바다의 활력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 p. 14 (3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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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차분 완간
행복한 고전(古典)이란 많은 독자들이 오랫동안 읽고 또 늘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명성에 비해 극히 적은 독자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la recherche du temps perdu)』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한 문장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끝없이 중첩되고 혼재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연구자들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국내 독자들은 물론 프랑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려 애를 쓰지만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 포기하고 안타까워하곤 한다. 이렇게 자자한 명성에 비해 난해하기 그지없는 고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프랑스의 영상 전문가 스테판 외에가 만화로 부활시켰다. 만화가 외에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작품 전체를 열네 번이나 정독했고, 이야기체 감각을 보여줄 문장들을 점차적으로 골라냈다. 또 사진 자료를 수집하고, 프루스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파리 외곽의 콩브레-일리에 지역의 풍경과 건축물을 답사하고 일일이 스케치했으며, 그 시대의 의상을 연구하고, 프루스트의 특이한 삶을 보여주는 여러 곳을 방문하는 등 이 년간 이 작업을 위해 준비했다"(『선데이 타임스』)고 한다.
열화당에서는 이 시리즈의 첫째권 『스완네 집 쪽으로―콩브레』를 1999년 6월에, 둘째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을 2000년 6월에 독자들에게 선보인 바 있고, 이어서 셋째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I』가 이번에 출간됨으로써, 십이 년에 걸쳐 진행 중인 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장정 중 원작의 서두 부분이 독자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권은 만화가 스테판 외에가 일 년에 한 권씩 선보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둘째권이 출간된 지 근 이 년 만에 내놓은 것인데, 프랑스 현지에서는 만화가의 창작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한다. 대가의 문학을 만화로 압축해 보여주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 만화가 스테판 외에는 둘째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작에 보다 충실하고자 스타니슬라스 브레제와의 협동작업을 통해 각색에 보다 많은 정밀성을 더하고 있다. 만화가 자신은 주요장면들의 선택과 만화화 작업에 주력하는 한편, 스타니슬라스 브레제는 만화본 텍스트 전체의 가독성에 몰두한다. 만화가는 이 책에서 소설에서와 마찬가지의 엄밀한 구성원칙을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만화가 요구하는 서술방식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또한 둘째 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만화가 자신이 그림작업과 병행해서 채색을 담당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프루스트 원작소설이 요구하는 색채감, 빛 등의 핵심적 요소들을 보다 생동감있게 되살릴 수 있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이 프루스트의 문학적 향기를 흠뻑 느끼고, 또 이를 계기로 그 문학과 직접 대면하는 행복한 책읽기를 경험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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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개요
첫째권 『스완네 집 쪽으로―콩브레』는 원작 제1권의 제1부 「콩브레」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본격적으로 펼쳐질 소설 전체에 대한 도입부로서 소설의 주요골격이 제시된다. 소설은 시작부터 과거를 향해 있는데, 유명한 '마들렌느 과자'의 일화로 시작하여 까마득한 과거로, 바야흐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둘째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I』은 원작 제2권의 제2부 「고장의 이름: 고장」의 절반을 만화로 옮긴 것으로, 아무 거리낌없고 발랄하기 그지없는 '활짝 핀 아가씨들'은 어느새 사춘기에 접어든 마르셀에게 사랑과 여자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 주는데, 그 중 알베르틴은 장차 마르셀을 오랜 세월 광포한 사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게 된다. 셋째권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고장의 이름: 고장 II』 시리즈 둘째권에 이어서 셋째권에서는 『활짝 핀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를 완결한다. 이번 권의 무대는 시리즈 둘째권에서처럼 여전히 바닷가 휴양도시 발벡이다. 이 시점에 이르면, 우리의 주인공 마르셀은 그토록 갈망하던 '활짝 핀 아가씨들'과 관계를 맺는 데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한편, 장차 스스로 걷게 될 예술의 길을 비추어 줄 정신적 스승 중의 한 사람인 화가 엘스티르(Elstir)를 만나게 된다. 병약한 체질을 담금질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발벡을 찾은 마르셀은 이곳 해변을 거니는 같은 또래의 젊은 아가씨들에게 흠뻑 마음을 빼앗긴다. 마르셀에게 해변을 거니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거부하기 힘든 젊은 매력을 내뿜는 존재일 뿐 아니라, 바로 발벡이란 고장의 모든 매력이 집약되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에서 우연한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천재화가 엘스티르로부터 참다운 예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입문할 수 있었던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지적 소득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적 천재와의 만남도 '활짝 핀 아가씨들'과의 만남과 견주어 볼 때 그 중요성은 훨씬 못 미치는 듯하다. 제아무리 스스로 예술가적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또 제아무리 천재적 예술가를 바로 곁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이 시기의 마르셀은 아직 지적·예술적 추구의 욕구가 여성적 매력이 발산하는 위력에 훨씬 못 미치는 나이인 것이다. 이 거친 풍랑의 시기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마르셀은 감정의 성숙과 성찰의 깊이를 더해 갈 듯하다. 이처럼,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리즈 제3권은 이제 막 성년의 문턱에 들어서는 마르셀에게 있어서 '사랑'과 '예술'이란 삶의 커다란 두 방향이 서서히 형체를 띠어 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