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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박홍규
필맥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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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인용에 대해

1. 내 친구 소로
2. 시대와 청년 소로
3. 소로의 자연
4. 소로의 저항과 희망
5. 소로가 끼친 영향

맺음말

저자 소개 1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놈 촘스키』, 『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비주류의 이의신청』, 『불편한 인권』 등 다수의 책을 쓰고, 『오리엔탈리즘』, 『간디 자서전』, 『자유론』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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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15쪽 | 224g | 118*178*20mm
ISBN13
9788991071520

책 속으로

《윌든》을 읽고서 전원생활을 꿈꾸게 되어 귀농했다는 사람들은 《월든》을 무슨 성경인 것처럼, 소로를 무슨 성인인 것처럼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로는 귀농은커녕 제멋대로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대략 2년 정도 건들건들 놀았을 뿐이다. 그 기간에 그는 심심해지면 마을에 가서 놀았고,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가 숲 속 호숫가로 잠시 은둔한 이유는 농촌생활을 동경해서도 아니었고, 농사짓는 일을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일로 여겨서도 아니었다. 돈독이 오른 사람들이 돈벌이에 미치는 것밖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고들 하는 통에 화가 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죽어라 일에 매달리는 것을 싫어한 그는 일주일에 엿새 일하고 하루 쉴 게 아니라 하루 일하고 엿새 놀자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말한 것도 그가 숲으로 간 행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실험, 하나의 모험일 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늘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멋대로의 삶’이었다.---p.24~25

“나는 강제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숨을 쉰다”라는 말이 그가 추구한 삶의 핵심이다. 소로가 살아있었을 때의 미국에서나 지금의 한국에서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를 하는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틀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며 산다. 그러나 소로는 강제에 적응하거나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철저히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좋다. 단지 금욕적인 자연주의자라면 첩첩산중 암자의 선승을 찾을 노릇이다. 많은 이들이 소로를 마치 선승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어떤 선승도 우리에게 멋대로 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소로가 필요하다. 멋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p.36

1844년 4월에 소로는 낚시를 하고 고기를 굽다가 숲에 불을 냈다. 소로는 마을로 지원을 요청하러 갔다가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가까운 언덕 위에 올라가 숲이 불타고 사람들이 불을 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을 끄는 사람들이 보여준 넘치는 에너지의 아름다움이 숲의 소멸을 충분히 보상했다는 식으로 일기를 썼다. 함께 불을 낸 사람이 마을 유력자의 아들이어서 구속은 면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숲을 태운 자’라고 불렸다.---p.96

월든 호숫가의 오막살이를 시작한 지 1년 반쯤 된 1846년 7월 23일 저녁에 소로는 수선을 맡긴 구두를 찾으러 마을에 갔다가 세리이자 간수와 경찰도 겸직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소로에게 몇 년간 내지 않아 밀린 세금을 내라고 했다. 소로는 노예를 두고 있는 나라의 정부에는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난처해하는 친구에게 소로는 세리의 일이 힘들고 거북하면 그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친구는 소로에게 세금을 계속 체납하면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소로는 지금 당장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도 좋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감옥에 갇혔다. 면회 온 에머슨이 “왜 거기에 있소?”라고 묻자 소로는 “당신은 왜 여기에 있지 않소?”라고 반문했다.---p.157

나는 소로가 1850년에 도망노예법이 의회를 통과한 데서 큰 충격을 받아 비폭력주의에서 폭력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도움을 준 도망노예 토머스 심스와 앤서니 번스가 각각 1851년과 1854년에 체포된 사실에서도 충격을 받았던 게 틀림없다. 그는 《시민저항》을 쓴 시점과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변호》를 쓴 시점 사이에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를 썼는데, 이 글에서 그는 도망노예법을 저주하고 그 법을 지지한 보스턴의 여러 신문을 규탄했다. 그는 ‘개혁자의 무기’였던 신문이 ‘노예제 자체보다 더한 노예근성’을 발휘하는 타락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p.186~187

《원칙 없는 생활》에서 소로는 황금을 찾아 미쳐 날뛰고 유행에 환장한 당시의 풍조를 유머러스하게 풍자하면서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참된 삶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글의 시작부터 “온통 장사꾼들의 세상이다”, “일, 일,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세상을 비판한다. 측량사이기도 했던 소로는 자기가 측량작업을 할 때 사람들은 정확한 측량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에게 더 많은 토지를 안겨주는 쪽으로 측량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p.188

그는 더 많은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나는 내 자유를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나와 사회의 관계나 사회에 대한 나의 의무가 지극히 사소하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내 생계를 유지시켜주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얼마간 도움도 되는 나의 시시한 노동은 지금 나에게 하나의 즐거움일 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소로는 욕심을 부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자신을 사회에 판매하는 사람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생계를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인간만큼 치명적인 실패자는 없다”는 것이다.---p.188~189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소로가 다시 부상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미국 각지에서 생태주의, 다원적 문화주의, 페미니즘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생태주의 측면에서 그들은 자연문학으로 통칭되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문학양식을 창조했는데 그 시조로서 소로가 재인식되기 시작했다. 환경사학자인 내시(Roderick Frazier Nash)는 《자연의 권리(The Right of Nature)》(1989)에서 종교와 철학의 생태화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그 근저에 소로가 있다고 했다.---p.205

소로에게 자유와 자연은 하나였다. 문명이 자연에 대한 반대이듯이 국가는 자유에 대한 반대였다. 그러므로 그를 반문명의 자연인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히려 그를 반국가의 자유인으로 이해해야 반문명의 자연인이라는 그의 면모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p.214

출판사 리뷰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로가 20세기 들어 재평가되면서 주목받게 된 과정도 흥미로운 동시에 소로의 진면목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지은이에 따르면 소로는 자신의 나라인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먼저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특히 “소로를 스타로 만드는 데 처음으로 기여한 외국인”은 러시아의 작가인 레오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1900년경에 우연히 소로의 《시민저항》을 읽었고, 이 글에 감동을 받은 그는 “미국인은 왜 국가를 거부하는 모범을 보인 소로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백만장자나 장군 등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한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는 소로의 《시민저항》을 언제나 곁에 두고 읽었다고 하고, 미국의 흑인인권 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서 킹도 《시민저항》에 표현된 저항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보수화의 기류가 지배적이었던 1970년대 미국에서는 소로가 거의 망각됐지만 1980년대 이후 자연주의, 생태주의가 세를 얻게 되면서 소로가 자연문학(Nature Writing)의 선구자로 부활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에 소로의 책을 찾아 읽는 독자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렇게 부활한 소로의 모습은 그 전과 달리 자연주의자의 색채가 강한 반면에 정의롭지 못한 기존질서에 맞섰던 저항적 자유인의 이미지는 탈색된 것이라는 점에서 “마치 박제된 표본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반문명의 자연인 소로’도 중요하지만 ‘반체제의 자유인 소로’를 보지 않고는 소로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는 소로의 삶을 살펴보고 그가 남긴 저작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소로 읽기’의 길안내를 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소로의 저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소로를 알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소로의 저작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으면 ‘보다 깊이 있는 소로 읽기’에 도움을 받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은이는 자신이 관심을 두는 소로의 측면은 그가 관습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멋대로 살았다’는 측면이라면서 “나는 소로를 위인이나 영웅이 아니라 ‘멋대로’ 산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여러분 중 이미 ‘멋대로’ 살고 있거나 앞으로 ‘멋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읽고 소로를 친구로 삼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라고 말한다. 소로가 부쩍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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