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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2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
통나무 2002.08.31.
베스트
불교 top100 7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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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바하르의 묵상
수자타와 뭄따즈
인도라는 판타지-아유타에서 온 허왕후-
쫑카파와 겔룩파
내가 처음 본 인도-아라비아 바다-
싯달타부터 아쇼카까지
아쇼카의 대각
아쇼카와 진시황
히란냐바티강의 사라나무-붓다의 육신과 진리-
4성지의 탄생
빈과 장,화장과 매장
사리의 환상-사리 8분 종족-
스투파와 탑
전탑,목탑,석탑
탑중심구조와 불상중심구조
아이콘과 비아이콘,스투파와 차이띠야
아쇼카의 석주
아쇼카와 마하보디 스투파
혜초스님의 감회
사암 한기 속의 꿈
찢겨진 돈뭉치
보드베가스의 세자매
수자타의 마을,우루벨라의 정경
암도라는 천막집
헤어드레서 엘리자베쓰
수자타 아카데미
룸비니의 총각김치
생과 사의 찰나
번역과 문명

저자 소개 1

KIM, YONG-OK,金容沃,도올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왔으며, 한국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왔다. 그는 유교의 핵심 경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와 《효경》의 역주를 완성하였으며, 그의 방대한 중국고전 역주는 한국학계의 기준이 되는 정본으로 평가된다. 그의 《중용》역주는 중국에서 번역되어(海南出版社) 중판을 거듭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자로서도 권위 있는 성서주석서를 많이 저술하였고, 영화, 연극, 국악 방면으로도 많은 작품을 내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왔으며, 한국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왔다. 그는 유교의 핵심 경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와 《효경》의 역주를 완성하였으며, 그의 방대한 중국고전 역주는 한국학계의 기준이 되는 정본으로 평가된다. 그의 《중용》역주는 중국에서 번역되어(海南出版社) 중판을 거듭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신학자로서도 권위 있는 성서주석서를 많이 저술하였고, 영화, 연극, 국악 방면으로도 많은 작품을 내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국학國學의 정립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문헌과 유적의 연구에 정진하고 있다. 또 계속 진행되는 유튜브 도올tv의 고전 강의를 통하여 그는 한국의 뜻있는 독서인들을 지속적으로 계발시키며 쉼 없이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그의 저서,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금강경 강해》, 《우린 너무 몰랐다》, 《노자가 옳았다》,《동경대전1·2》, 《용담유사》, 《도올 주역 강해》, 《도올 주역 계사전》는 모두 그가 새로운 국학의 여정을 밟고 있는 역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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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2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33쪽 | 1050g | 153*224*20mm
ISBN13
9788982640827

책 속으로

지금까지의 나의 기나긴 논의의 결론은 이러하다. 소승, 대승을 막론하고 원시불교의 모든 종교운동은 스투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투파란 무엇인가? 스투파는 탑이다. 탑이란 무엇인가? 탑이란 부처님의 무덤이다. 부처님의 무덤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향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스투파는 원시불교에 있어서 비아이콘적인 형상으로서 허용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물론 스투파 외로도 부처님 발자국이라든가, 보리수나무라든가, 부처님이 앉아 계셨던 금강보좌 등등을 들수 있지만 이것은 모두 법신사상에 의한 것으로, 인간 싯달타의 인간적인 형상 즉 등신불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것이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법신의 현현이며, 마치 그가 그곳에 살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가 구현하려 했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곳의 상징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유골(사리)은 당시의 부처님과 관계 있었던 8종족에게 분배되었고, 그들에 의하여 부처님 생애 중에서 우리 후대의 사람들에게 기념이 될만한 인상깊은 곳에 스투파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부처님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곳에 끊이질 않았다. 이 발길들로 구성되는 모종의 유대감이 바로 최초의 승가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며 문헌과 고고학적 발굴로써 입증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투파의 신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전국적으로 확대시킨 사람이 바로 전륜성왕 아쇼카였다. 아쇼카는 최초의 부처유골이 들어간 8개의 스투파를 다시 개봉하여 그것을 모아 가루로 빻아서 다시 분배하여 8만 4천개의 스투파를 건립하였다. 8만 4천개라는 숫자가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엄청난 숫자의 스투파가 아쇼카시대에 인도전역에 건립된 것은 고고학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아쇼카의 8만 4천탑 조립의 설화는, 중국 한국 일본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모두가 8만4천탑 중의 하나가 자기네 땅 어느 곳에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진신사리'의 설화의 배경인 것이다.

(...) 부처님과 관련된 뼈 항아리 재, 이렇게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물증을 그 상징으로 담아 스투파를 건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쇼카시대에 스투파신앙이 성행하게 되면서 이 스투파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모이는 일반신도들 중심으로 대승불교의 보살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마하승기율> 권 33에 보면 이런 재미있는 말이 있다.

부처님 뼈가 들어있으면 그것을 스투파라 부르고, 부처님 뼈가 들어있지 않으면 그것은 차이띠야라고 부른다.
有舍利者名塔, 無舍利者名枝提

이러한 '마하상기카 비나야'의 언급이 정확한 구분기준으로 지켜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것은 부처님의 뼉다귀를 얻지 못한 많은 탑들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즉 이것은 탑의 성격이 부처님의 무덤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의미로부터 점점 추상화되고 형식화되고 상징화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시 스투파는 승가와 특별한 관련이 없이, 평신도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독자적으로 유지된 오픈 스페이스였다. 그런데 이 스투파 신앙이 보편화되고 성행하게 되자 스투파를 승가 내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차이띠야(caitya)다. 차이띠야는 우리 감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상 대신 부처님의 부도를 모신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영묘, 사당 등으로 의역되는 것만 보아도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이 초기 차이띠야의 원형들은 아잔타의 석굴 사원에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차이띠야와 승려들의 생활공간이었던 '비하라'와의 접합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 가람이 형성되어 갔던 것이다.

--- pp 384~390

인도에서는 어딜가나 막대기 하나 걸쳐있으면 돈을 내야 한다. 통행세를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해도 통행세를 내는 데 보통 30분 이상 걸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운전사와 통행인의 모든 인적사항을 세세하게 적고 구찮게 굴기 때문이다. 번문욕례의 간소화의 수준이야말로 문명의 수준의 척도다. (...)

인도 사람들은 비율적으로 다리가 엄청 긴 편이다. 그래서인지 변기의 위치가 우리나라보다는 매우 높게 달려 있다. 좋은 변소에서는 손을 씻고 나면 종이를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럼 돈을 주어야 한다. 피곤할 땐 그 사람은 변소바닥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인도인의 직업분담은 지극히 세분화 되어 있다. 테이블을 닦는 사람(수드라 계급)과 바닥을 치우는 사람(불가촉천민)이 다르다.

--- pp 415~416

우리는 차를 타고 다시 나이란쟈나강을 건넜다. 원시경전에 우루벨라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는 수자타의 마을을 가보기 위해서였다. 수자타의 마을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무엇인가 포근한 고향의 품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태고적부터 같은 탯줄로 이어져 내려왔던 어떤 동포의 숨결이라고나 할까? 사방에 어린 아이들이 내가 어릴 때 놀았던 것과 똑같은 '자치기'를 하고 있었고, 또 한 구텡에서는 제기를 차고 있었다.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탈곡을 하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너무도 나의 고향같이만 느껴지는 유족한 농촌의 풍경이었다. 둥글둥글 거대하게 쌓아놓은 짚더미 사이로 우리 나라 토종과 똑같이 생긴 황소들이 음메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은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짚새기를 꼬으고 있었다. 이러한 풍요로운 인심속에서 수자타의 유미죽도 탄생되었을 것이다.

나는 김수로왕의 무덤에 있는 특이한 쌍어문,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그 문양이 아요댜(Ayodhya)지역에서 지금도 흔하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들어 <가락국기>의 허황후 설화의 진실성을 논증한 김병모 교수의 주장은 천번만번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었다. 가야는 당대의 조선반도 어느 나라보다도 선진의 철기문명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한제국의 문물도 일찍 받아들였으며, 인도와도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어떤 해상의 대제국을 건설한 특이한 나라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 pp 425~427

'라마교'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티벹불교"라 해야 옳다. 라마교라는 표현은 마치 한국불교를 "스님교"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은 그릇된 표현이다. "라마"라는 말은 스승(구루)에 해당되는 티벹어일 뿐이다. 청조는 티벹불교를 숭상하였다. 옹화궁은 원래 옹정제의 동궁이었다. 건륭 9년(1744)에 이궁을 티벹불교(라마교)의 사원으로 만들었다. 그곳 법륜전에 겔룩파의 시조 쫑카파의 거대한 상을 모셔 놓았다.

출판사 리뷰

도올 김용옥 교수는 “KBS 도올의 논어 이야기” 이후 기나긴 침묵을 지키다가, 그 침묵에 대한 세인들의 기대를 방대한 언어와 영상으로 보답했다. 그가 3권의 책을 단숨에 완간했다는 것도 그의 저술 스타일로 볼 때 처음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인문학 출판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 감행하여 온 그의 모험의 역사에 있어서 본서는 하나의 분수령을 기록한다.

도올은 말한다: “이 책은 3권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실제로 나는 9권의 책을 썼다.” 이러한 그의 독백은 그가 이 책에 들인 노심의 공력을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지만, 본서의 각 권은 실제로 3원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본문은 일반대중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순 한글로 집필되었으며 또 평이한 양식으로 서술하였다.

둘째, 이러한 본문의 평이한 서술이 단순히 평이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세계 불교학계, 인도철학계의 학문적 논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상술하는 매우 학구적인 후주(後註)가 하나의 독립된 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인용문에 대하여 <팔리어삼장> <한역대장경> 등의 정확한 출전을 제시함으로써 불교를 연구하는 학도들에게 구체적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도올의 언어의 배경을 누구든지 쉽게 도서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셋째, 본문의 흐름과 평행선을 이루며 본문의 내용을 보강하기도 하고, 본문의 내용과 무관하게 새로운 지식을 첨가하는 다양한 몽따쥬기법을 활용하는 사진과 그 사진설명이 또 하나의 영상적인 책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사진들은, 달라이라마와의 대담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올 자신이 저자의 시각에서 찍은 것이다. 사진 자체가 인도문명에 관한 심도있는 레포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도올 자신이 본문의 흐름에 맞추어 직접 편집한 것이다. 80년대부터 연극과 영화에 관심을 쏟고 최근 칸느상을 획득한 <취화선>의 대본자로서 활약한 그의 영상적 감각을 본서에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우리사회가 세계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어떤 새로운 도덕성을 획득하는 계기로서 활용될 수 있기를 갈망한다. 나는 이 책이 우리민족에게 종파와 무관하게 큰 마음, 한 마음의 깨달음을 선사해줄 수 있기만을 빌고 또 빈다.”

도올은 KBS 논어강의를 마친 후 일본, 미국 등지로 장기간 외유를 했고, 미국에서 새로운 사상의 물결을 접했는데, 그 핵심은 “원시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달라이라마와 도올이 예외적인 장시간의 회동을 한 내용의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다.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대화내용이 제3권 전체를 고스란히 메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은 결코 달라이라마와의 인터뷰기록은 아니다. 이 책은 도올이 달라이라마를 만나는 계기를 빌어 역사적 싯달타(Historical Buddha)의 본래 모습을 추구한 것이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관한 논쟁이 계속 있어왔지만 역사적 붓다에 대한 집요한 논설은 불교학계의 주요쟁점으로 부상된 바가 희소하다. 이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적 붓다의 탐구에 관한 새로운 이정표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지식의 향연이라기보다는 도올과 달라이라마 그리고 역사적 싯달타, 생생한 실존의 3인이 벌리는 일종의 다큐멘타리 서사극과도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기획단계부터 이미 한국의 독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도올은 가급적인 한 보편적 언어를 채택하였다. 도올은 지금 영역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도올이 새로 발견한 것은 “영원한 진리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역사 속의 불교”이다. 그 불교의 모습을 우리는 “근본불교,” “원시불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원시불교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역불교대장경 속에서는 발견되기 어렵다(물론 “4아함”이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원시불교는 기본적으로 팔리어를 통해서 전승되어 온 것이다. 도올이 요번에 집요하게 추구한 것은 <팔리어삼장>이라는 방대한 문헌이다(1930년대 일본학자에 의해 70권 전집으로 발간됨). <팔리어삼장>을 통해서 본 붓다의 모습은 차디찬 금동불상이 아니라 2500년 전에 인도 땅 마가다지역에 살았던 한 청년이다. 우리처럼 핏줄이 돌고 숨결이 느껴지는 한 청년의 고뇌를 도올과 달라이라마는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1권은 도올이 인도의 불교성지 현지에서 느끼는 원시불교에 대한 매우 집요한 이론적 사색의 과정이다.

제2권은 도올이 인도를 기행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인도와 불교의 역사가 갈파된다. 그리고 불교미술사에 대한 매우 참신하고 독창적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특히 탑과 불상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충격적이다.

제3권은 도올과 달라이라마의 대화내용이 고스란히 채록된 것이다. 그것은 1권과 2권의 흐름을 완성한다.

이 책은 반드시 정독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내용을 발췌하거나 그 개략적 논리구조를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압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이 단순히 객관적인 지식의 압축태가 아니라 우리의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다. 이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깨달음을 전달하는 책이다. 도올은 말한다: “이 책의 집필과정이 곧 나의 깨달음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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