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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간이 다가오면 마사이 마을 사람들이 기대에 부풀어 막 앞으로 모여듭니다. 막 뒤에서는 배우들이 무대를 꾸미고, 대사를 외고, 가면을 씁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막이 열립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됩니다.
옛날 옛날에 토끼 한 마리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살았습니다. 토끼는 해 질 무렵이면 늘 문간에 앉아서 누가 집 앞을 지나가는지 구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가 집에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나왔지요. “나는 길쭉이다. 나무도 통째로 먹어 치우고 코끼리도 밟아 뭉갤 수 있다. 썩 꺼져라! 안 그러면 너도 밟아 뭉개 버릴 테니까!” 토끼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릅니다. “여긴 내 집이야! 당장 나오지 못해!” 하지만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소리쳐 봐도 길쭉이는 점점 험악한 소리만 고래고래 질러 댈 뿐입니다. 지나가던 개구리가 토끼를 돕겠다고 나서지만, 토끼는 콧방귀만 뀝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개구리가 자신도 못하는 일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영 가소로운 거지요. 개구리가 가 버린 뒤에는 힘세고 덩치 큰 동물들이 차례로 돕겠다며 나섭니다. 자칼, 표범, 코끼리, 코뿔소……. 하지만 그들은 힘만 셀 뿐 아둔하고 허풍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토끼가 처한 곤경 따위에는 별반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제 힘이 얼마나 센지 과시하려고 들 뿐이지요. 힘센 동물들이 무작정 덤벼드는 통에 지붕이 날아가고 집이 홀랑 탈 지경에 이르자, 결국 토끼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뒷전에서 낄낄거리며 구경하던 개구리가 다시 나섭니다. 개구리가 커다란 나뭇잎을 뿔 모양으로 돌돌 말아서 입에 대고 소리칩니다.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나는 독 뿜는 코브라다! 독으로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 얼른 나와라. 안 그러면 문 밑으로 기어 들어가서 네 눈에 치잇 독을 뿜을 테다!” 히르르르르, 드디어 문이 열립니다. 놀랍게도, 새파랗게 겁에 질린 초록 애벌레가 집에서 뛰쳐나옵니다. 커다란 동물들이 모두 돌아가고, 토끼는 늘 그랬듯 다시 문간에 앉습니다. 개구리는 통나무에 앉아 박장대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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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숨결이 살아 있는 그림책
버나 아데마는 아프리카 옛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다시 쓰는 작업을 많이 한 작가입니다. 딜런 부부에게 칼데콧 상을 안겨 준 서아프리카 옛이야기 그림책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도 버나 아데마가 글을 쓴 작품입니다. 이 책 《도대체 누구야!》에서 버나 아데마는 아프리카 토속어를 솜씨 좋게 살려 쓰고 있습니다. ‘끄덩 끄덩 끄덩’, ‘끄빠다 끄빠다’, ‘라스 라스 라스’, ‘느기시’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아프리카 옛이야기의 본래 맛을 살리면서도 소리 내어 읽는 재미까지 더해 줍니다. 딜런 부부는 검정, 주홍, 녹색 같은 아프리카 특유의 색감으로 아프리카의 풍광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머리 모양, 의상, 장신구, 집, 지형 들은 면밀한 고증을 통해 그려진 것으로, 마사이 족의 전형적인 생활상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보여 줍니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숨결이 물씬 느껴지는 이 작품은 어린 독자들에게 다문화 체험의 장을 열어 주고, 편견 없는 시각과 열린 마음을 길러 줄 것입니다. ■ 반복과 반전의 묘미가 살아 있는 이야기 다른 많은 옛이야기들처럼 이 작품 역시 반복의 묘미가 효과적으로 살아 있습니다. 여러 동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토끼네 집을 향해 ‘도대체 누구야?’ 소리를 질러 대고, 안에서는 ‘썩 꺼져라! 안 그러면 밟아 뭉개 버리겠다!’ 험악하게 받아칩니다. 같은 질문과 대답이 반복되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가 누구인지 궁금증이 고조됩니다. 덩치 큰 동물들의 물불을 못 가리는 행동 탓에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치닫습니다. 이렇게 점점 고조되던 긴장감은 허를 찌르는 반전 덕에 순식간에 통쾌한 웃음으로 뒤바뀝니다. ■ 힘과 권력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 《도대체 누구야!》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연상될 만큼 우스꽝스럽고 떠들썩한 이야기이지만, 그 의미만큼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목청을 높여 분통을 터뜨리고 상대를 윽박지릅니다. 저마다 입장은 다르지만, 결국은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 그랬다간 큰 코 다칠걸.’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싶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제 힘이 얼마나 센지 증명하려 안달하고, 힘의 우위에 따라 태도를 바꿉니다. 무고한 피해자처럼 보이는 토끼조차 저보다 약해 보이는 개구리 앞에서는 네깟 별 볼 일 없는 녀석이 웬 참견이냐며 화를 내지요. 그런데 개구리 하나만큼은 예외적인 존재입니다. 뒷전에 물러서서 저보다 크고 힘센 동물들이 벌이는 가당치도 않은 꼬락서니를 구경하며 낄낄대지요. 우리 마당극으로 치면 말뚝이 같은 캐릭터라고나 할까요. 그런 개구리가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지혜로 해결한다는 결말은 이 이야기가 힘과 권력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제멋대로 토끼네 집에 침입한 괴물이 알고 보니 고작 애벌레일 뿐이더라는 결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됩니다. ■ 형식미의 정수를 보여 주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구성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딜런 부부의 창의적인 해석 덕입니다. 딜런 부부는 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옛이야기를 마사이 배우들이 동물 가면을 쓰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연극으로 보여 줍니다. 책을 펼치면 나무에 막을 설치하는 마사이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이 무대 앞에 자리하고 있고, 막 뒤에서는 배우들이 연극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막이 오르면, 연극 속의 상황으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독자는 이 독특한 연극의 관객으로 변모합니다. 한바탕 흥겨운 연극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다시 포커스가 바뀝니다.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사자들이 호기심에 찬 모습으로 연극 무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자들은 이전 장면들에서도 등장합니다. 연극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어슬렁어슬렁 한가롭게 오가는 모습이 원경으로 자그마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사자들이 전경에 등장하면서, 그림책의 포커스는 또 한 번 절묘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처럼 딜런 부부는 연극 밖의 현실과 연극 속의 허구, 그리고 다시 사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연극 밖의 현실을 한 작품 속에서 매우 유려한 흐름으로 보여 줍니다. ■ 치밀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그림책 딜런 부부의 그림은 한 장면 한 장면 뜯어보면 볼수록 무릎을 치게 하는 구석이 눈에 띕니다. 펼침 그림처럼 보이는 양쪽 페이지의 중앙에는 나무가 서 있습니다. 언뜻 보기엔 무대 중앙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나무를 가운데 두고 무대가 마련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왼쪽 페이지에 나오는 나무는 무대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이고, 오른쪽 페이지에 나오는 나무는 무대 왼쪽에 서 있는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무대 양쪽에 서 있는 나무 두 그루를 치밀한 화면 구성을 통해 한 그루처럼 보이게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텍스트와 그림을 나누고 있는 일직선도 단순한 선이 아니라 막을 걸기 위해 양쪽 나무에 친 줄입니다. 이 줄은 텍스트와 그림을 깔끔하게 경계 짓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양쪽 페이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힌트도 줍니다. 딜런 부부의 그림은 이 밖에도 곳곳에 재미있는 요소를 숨기고 있습니다. 연극 속 동물들의 극적인 행동을 연속 동작으로 표현한 것이라든지, 한두 마리씩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던 사자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모여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한자리를 떡 잡고서는 두런두런 사이좋게 연극 구경에 열중하는 모습 등, 그림 곳곳에서 딜런 부부의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