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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린 그 맛
배고픈 날, 장떡 지지던 냄새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웠던 것이다 시커멓게 언 감자를 먹는 지혜 솓구락 여러 개를 꽂아 냄비째로 옥수수 먹듯 산천어를 뜻으며 술 취한 아버지 손에 간고등어 한 손 허리춤에 매달렸던 '벤또' 2. 낯선 땅에서 청춘의 시대는 막을 내렸노라 입 안 가득 쑥밥의 매캐한 향내 나는 시방 누구의 자식인고 밥집 뒷간에 걸린 산수화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고봉밥을 먹어 치우는 '밥 도둑놈' 구쟁기 된장국에 자리물회 한 범 사람 거시기 먹고 자라는 돋통시 3. 유배지의 한 끼니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두마리 건빵 다섯 봉지와 행복한 죽음 0.8평 감방에서 '소지'와 함께 싸락눈 날리던 날, 눈물의 부침개 4. 나그네살이 붉은색 대지 위로 플라멩코가 흐르고 발을 구르고 치맛자락을 쳐들고 까마귀가 먹다 버린 배 장난감 같은 독일의 가정 식당 찐득하고 꺼룩한 에스프레소 한 잔 나이 든 창부 같은 도시, 베네치아 카프카의 음울한 눈이 생각나는 밤에 5. 흘러간 사랑 기억의 고리, 그 시작과 끝 세상으로 나가는 남자의 '창' 베개 너머로 흐트러지던… 마당 한 귀퉁이의 쓸쓸한 과꽃처럼 그 비듬을 털어 주고 싶었어 |
黃晳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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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집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열아홉 살 무렵이었다. 어느 잡지의 신인상을 받고 나서 오랜 숙원이던 고등학교 자퇴와 가출을 동시에 해냈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한일회담 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때에 유치장에서 만난 부랑 노동자와 간석지 공사장엘 찾아갔던 것으로 본격적인 방랑은 시작되었지만.
하여튼 첫 가출은 거의 한 해가 걸렸다. 동행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전 여행 비슷한 출발이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국토를 누벼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바다를 처움 본 것은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는데, 부둣가에 서자마자 배를 타고 어딘가 먼곳으로 떠나겠다는 강렬한 소망에 들떴었다. 동행과 청주, 대구, 마산을 거쳐서 진주 어름의 농가에서 보리 베기를 하며 밥을 얻어먹다가, 중국집에서 - 그때는 철가방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상자로 배달을 했는데 - 자장면도 배달하다가, 빵 공장에서 빵 목판을 나르는 일도 했다. 청주에서는 아이스케키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얼음통을 메고 거리로 나가 팔기도 했다. ---pp. 69~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