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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땅집에서 살아요 …… 박완서 봄꽃은 다시 피고 …… 신현수 귀신이 온다 …… 이남희 당신의 혼잣말 …… 송은일 소설가의 집 …… 노순자 幽宅 入住 (유택 입주) …… 조혜경 미역 …… 유덕희 시뮬레이션 라이프 …… 한수경 명자가 왔다 …… 권혜수 와인 바에서 …… 우애령 선물 …… 박재희 달의 귀가 …… 김비 |
朴婉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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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분이한테 한눈에 반했다. 추석에 본 맞선이 그해가 저물기 전에 혼례를 치르는 데까지 급속도로 발전했다.
시골은 겨울이 농한기이자 곡간이 푸짐할 때라 혼례를 치르기에 적기였지만 경수에게도 적기였다. 그는 한겨울에도 후끈후끈한, 추위를 느낄 수 없는 아파트로 분이를 놀라게도 기쁘게도 할 생각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신혼의 아내에게 아파트 이상 가는 선물이 또 있을까? 그 선물을 장만하기 위해 그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부대끼면서 좁쌀알처럼 마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분이가 한 소리는 경수에게 너무 뜻밖의 소리였다. "아이, 난 땅집에서 살고 싶은데……." 그녀는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 놀라면서 경수에게 안기더니 이렇게 중얼댔다. 그녀의 땅집에의 소망은 그 후에도 줄기차게 계속됐다. 단독주택을 그녀는 땅집이라고 했다. --- 박완서 「땅집에서 살아요」중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아내는 인형 마니아가 되어 버렸다. 세 번째 계류유산을 하고서 처형과 떠났던 제주도 위로 여행길에서 구체관절인형이라는 돌피 인형 하나를 사온 게 화근이었다. 아내는 곧 돌피 인형에 빠져 들었고, 하나 둘씩 더 사들이기 시작했다. 인형의 숫자가 열 손가락으로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늘어나자, 아내는 인형들을 제대로 돌보아야 한다며 십여 년 넘게 다닌 직장마저 그만두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사람의 집'이 아니라 '인형의 집'으로 변해갔다. 돈을 주고 인형을 사 오는 거였지만 아내는 꼭 '아이를 입양'한다고 표현했다. 아내가 입양해 키우는 것들은 보통 인형이 아니었다. 어깨며 팔꿈치, 무릎 따위의 관절이 공과 고무줄로 이어져, 사람처럼 팔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구체관절인형이었다. --- 신현수 「봄꽃은 다시 피고」중에서 "나다." 모래벽 무너지듯 부스스 떨어지는 목소리. 받는 이를 확인할 것도 없이 용건을 시작하는 게 보나마나 시어머니였다. "글쎄, 또 왔었다." 시어머니가 사는 귀래리 집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리였다. 한숨이 나왔다. 늘 듣는 불평이어서 반쯤 흘려들으며 침대에서 나왔다. 살금살금 방문으로 다가가 계속 뭐라 뭐라 말을 늘어놓고 있었으나 수화기를 귀에서 뗀 상태에서는 모래 바람이 서걱거리는 정도의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끔찍했겠네요." 그녀는 의례적인 대꾸를 하며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섰다. --- 이남희 「귀신이온다」중에서 사흘 전: 자줏빛 담장을 두른 집, 곧 노을이 머무는 동산이라는 뜻이라던 자미원은 선재가 스님으로 살던 때에 거주했던 한옥 이름이었다. 우물마루 대청을 거느린 몸채와 사랑채의 지붕이 날렵했고 행랑채 등은 고즈넉했다. 담쟁이넝쿨에 감싸인 넓은 뜰에는 은성한 노을뿐만 아니라 소쇄한 아침 햇살도 호사스레 머물렀다. 집이 날개였고 배광이었다. 스스로 당호를 지어 붙이며 그곳에 입주했던 선재스님은 승려라기보다 고급 저택의 주인인 양, 예술가인 양 방문객들 위에 군림하며 살았다. 서울 강남 어디엔가에서 치과를 운영한다는 그의 친구가 사뒀다 선재에게 내줬던 집이었다. --- 송은일 「당신의 혼잣말」중에서 팔판동은 작지만 오래된 동네이다. 어디 사냐고 물을 때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열이면 열 판판동? 거기가 어딘데? 되묻는다. 삼청동 옆이오. 삼청동 옆이면 가회동? 가회동은 동쪽이고요 팔판동은 서쪽이에요. 옛날에 여덟 판서가 살던 데래요. 여덟 판서라……, 이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 예조 또 뭐가 있었지? 너절하게 이어지는 얘기가 귀찮아 연이는 건성 삼청동이라고 넘기기도 한다. 그러면 어른이고 아이고 대개는 다 안다. --- 노순자 「소설가의 집」중에서 아들이 여섯 살 땐가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점집을 다녀와서 무심코 나누던 말을 옆에서 놀던 아이가 알아들었다. 남편 사업 문제로 용하다는 점집엘 갔는데 식구들 사주를 넣었더니 점쟁이 하는 말이 "아들이 엄마 임종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 임종이 뭐야?" "엄마가 죽을 때 네가 옆에 없는 거야." 대충 말하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결국 "너 없이 엄마 안 죽는다"고 약속하고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말 같지 않은 약속도 죽을 용을 쓰니 지켜질 모양이었다. 아들이 벌컥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목구멍에서 꼴깍거리던 날숨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주 길게 숨이 꺼져가면서 몸은 가벼워졌다. 그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며칠 동안 혼과 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몸을 떠나 공중부양 하려는 것을 악다구니로 잡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포자 하나를 내 속에 깃들이다 세상에 내놓은 아이, 그 아이를 마저 보고 가려고 명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 조혜경 「유택입주」중에서 문제의 발단이란 게 미역국 한 솥에 불과하였다.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도 유분수지. 엄마는 죽은 오빠의 생일날이면 저절로 몸이 아팠다. 아픈 몸을 치유하는 방법도 유별나서 광어를 넣고 펄펄 끓인 미역국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어치우면 들끓던 신열이 그나마 가라앉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갈수록 도가 심해져서, 요즈음엔 혼자만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주위의 만만한 사람들을 죄다 불러 모아서, 미역국 한 사발씩을 못 먹여서 안달을 하던 것이었다. --- 유덕희 「미역」중에서 -혹시 저를 아시는 분입니까? 시끌벅적하던 아이들이 부엌으로 몰려가고 소고와 M만 강에 남았을 때, 소고가 물었다. 뭔가 기억해낸 것인가? 눈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소고를 살피는 M. 세상엔 아직도 과학과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과학의 힘이 소고의 기억을 지웠다 해도 그 흔적은 남아 있을 수 있어. 지우개로 깨끗이 글씨를 지워도 자국은 남듯이 말이야. 생각해보면 내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진주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 박사님은 내게 '바람직한 부작용'이 나타난 거라고 했어. 그렇다면 소고도 혹시……. --- 한수경 「시뮬레이션 라이프」중에서 명자는 한마을의 지석이와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다.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귀하던 시절, 이태 차이는 졌지만 둘은 나란히 걸어 읍내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석이는 위로 누나 셋을 낳은 뒤 얻은 아들이라 천하에 귀한 아들이었다. 지석이 밑으로 아들을 하나 더 얻기는 했지만, 오죽하면 지석이 엄마가 시집온 지 십삼 년 만에 아들을 낳아놓고 고추가 떨어질까봐 만지기도 겁난다고 했을까. 지석이는 반에서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공부도 잘한다고 했고, 글도 잘 쓴다고 했다. 무슨 상인지 그 부모가 걸핏하면 상 탄 자랑을 했다. 안방 벽이 상장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월평댁이 아는 건 지석이가 계집애처럼 하얀 얼굴에 몸이 호리호리하고 청승맞게 하모니카를 잘 분다는 거였다. 월평댁 눈엔 그 몸피와 하얀 얼굴이 남의 자식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영 마뜩잖았다. '남자가 손도 잔 큼지막하고 장군 같어야재' 하는 것이 월평댁 생각이었다. --- 권혜수 「명자가 왔다」중에서 나중에 아버지는 사간동 집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쓸데없는 소리들 꺼내지 말라고 지나칠 정도로 역정을 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을 때만 형제들끼리 가끔 그 집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절이 되었더라는 이야기도 있고 재벌이 그 집을 별장으로 샀다는 이야기도 있고 요릿집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풍문을 전하면서 그 집에 얽힌 추억들을 주고받고는 했다. 합의나 한 듯이 아무도 그 집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여러 집을 옮겨 다닌 셈이지만 영주에게 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원형은 이십 년간의 그득한 추억으로 파묻힌 사간동 집뿐이었다. --- 우애령 「와인 바에서」중에서 "아버지, 저 소리 하고 싶어요." 영화 〈서편제〉를 찍는 수오당에 나와 은재는 있었다. 우리의 영혼도 장님 송화와 함께 백련사의 종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영혼도 여자 아이의 얼굴을 물들이는 붉고 큰 노을에 물들었다. 높은 누마루에 꼿꼿이 앉은 노인께, 저 거문고 하고 싶어요, 눈길을 보냈다. 영혼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소리꾼 가족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던 돌담길에 있었다. 세 사람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진도아리랑〉 오 절까지 부르는 장면을 촬영하는 이틀 동안 우리도 〈진도아리랑〉을 오 절까지 외워서 불렀다. --- 박재희 「선물」중에서 따단 따단, 따단 따단.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건 분명 기차 소리였다. 고개를 드니, 먼 선로 끝에서 꿈틀거리며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선로에 누운 것도 아닌데, 조금씩 다가오는 기차 소리는 꽝꽝 울리며 내 가슴속에 박혔다. 저 헐벗은 여자는 일어나야 하는데, 그리고 나도 이 선로 위에서 도망쳐야 하는데. 그러나 움직여야 할 내 두 다리도, 소리쳐야 할 내 입도 꼼짝하지 않는다. 울먹이는 그녀가 뒤척이는가 싶더니, 흉물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던 가발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얼굴은 검은 물로 뒤덮여 있다. 잠결인지, 약에 취했는지,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힘없는 말들이 새어 나온다. '집' '에' '가' '고' '싶' '어' 그녀는 그렇게 울먹인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 앞에 뒤엉킨 글자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김비 「달의 귀가」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