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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체험과 살아남은 자의 윤리
박완서 문학의 깊은 뿌리에는 한국전쟁의 기억이 놓여 있다. 『나목』과 『목마른 계절』은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모멸과 자기 훼손, 이념이 일상을 짓밟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기억은 「엄마의 말뚝」 연작에서 식민지기의 삶과 전쟁, 분단 이후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역사로 되살아난다. 박완서는 전투와 영웅의 활약 대신 죽음과 굶주림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책임, 폭력 이후에도 삶을 이어 가야 하는 인간의 윤리를 끈질기게 탐구했다. 중산층의 욕망과 자본주의의 이면 1970년대의 『휘청거리는 오후』와 『도시의 흉년』에서 박완서는 고도 성장기 중산층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해부한다. 인물들은 겉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지만 그 이면에는 비교 의식과 불안, 질투와 자기기만이 들끓는다. 작가는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들의 내면을 일상적 장면과 대화 속에 펼쳐 놓는다. 아파트와 혼수, 교육과 결혼처럼 평범해 보이는 생활의 요소들은 돈이 인간관계와 윤리를 지배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그의 풍자는 웃음 뒤에 불편한 자기 성찰을 남기며, 산업화 시대의 사회상을 기록한다. --- pp.20-21 나는 이번에야말로 내가 나설 차례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오줌이 마려웠습니다. 나는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고 싶은 생각을 맨 마지막으로 막아 줄 수 있는 게 쇠창살이 아니라 민들레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할머니가 살고 싶지 않아진 게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둘 다 상상이나 남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나는 어른이 되려면 아직 먼 어린 사람인데도 살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나를 껴안은 엄마의 팔에서 드디어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회장석이 있는 앞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꼭꼭 끼여 앉은 어른들을 헤치려니 어떤 아저씨는 어깨를 짚었다고 눈을 부라리고, 어떤 아줌마는 발가락을 밟았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건 말건 나는 반장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의 답을 나만이 알고 있을 때처럼 의기양양 신이 나서 사람들을 마구 밀치고 드디어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러자 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회장이 탁자를 탁 치며 호령을 했습니다. “누굽니까? 도대체 누굽니까? 이런 중대한 모임에 어린이를 데리고 온 분이 누굽니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얘가 막내라서, 버릇이 없어서….” 어느 틈에 엄마가 따라 나와 나를 치마폭에 싸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 pp.43-45 자전적 체험으로 빚어낸 분단 문학의 정수 박완서의 연작 소설 「엄마의 말뚝」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인 「엄마의 말뚝 2」(1981)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형상화한 전후 소설의 백미로 평가된다. 6·25 전쟁 당시와 현재를 오가는 역순행적 구성을 취한 이 작품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한 가족이 겪는 비극을 통해 민족사의 상처를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중년 여성이 된 서술자 ‘나’의 시선을 통해 겉으로는 일상에 안착한 듯 보이지만 내면 깊숙이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분단 세대의 고통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개인의 가족사를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맞물린 한 세대의 초상으로 확장한다. 일상의 균열과 소환되는 과거 소설은 ‘나’가 외출한 사이 친정어머니가 눈길에서 넘어져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게 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평소 자신이 집을 비울 때마다 불상사가 발생한다고 믿어 온 ‘나’에게 이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예감된 재앙처럼 다가온다. 병원이라는 현재의 공간에서, 어머니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서적 혼란을 겪으며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작가는 이처럼 일상의 작은 균열을 계기로 잊힌 듯 보였던 전쟁의 기억이 언제든 현재를 침범할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서사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따라서 어머니의 골절 사고는 단순한 신체적 부상이 아니라, 봉인되어 있던 전쟁의 상처를 다시 불러내는 서사적 계기가 된다. --- pp.64-65 친구의 남편이 돌아왔다. 폭설은 멎었지만 논, 밭, 길, 개울의 구별 없이 망막한 눈밭에 새로운 길을 내면서 돌아온 그의 귀가는 휘황한 헤드라이트를 앞세우고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 동물의 귀소(歸巢)처럼 야성적으로 보였다. 나는 크게 감동해서 예의 거나한 다변으로 찬사를 퍼부었다. 나의 주정의 또 하나의 미덕은 아무리 마셔도 거나한 것 이상은 취하지 않는 거였다. 나의 찬사에 마냥 수줍어하던 그는 서울 가는 길이 위험하니 자기 차로 데려다주마고 했다. 친구는 남편의 목에 팔을 감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정말 그래 주시겠어요? 나도 아까부터 이 귀한 손님을 그 털털거리는 시외버스에 맡기고 어떻게 오늘 밤을 편하게 자나 걱정했었다우.” “털털거리는 시내버스나마 다니는 줄 알아? 지레 겁을 먹고 벌써부터 안 다닌다구. 주무시고 가신다면 모를까 가시려면 내 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를 쫓아 보내려면 별수 있겠느냐는 그의 다음 말을 나는 취중에도 총기 있게 짐작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당신 졸면서 운전하면 난 싫어.” 그러더니 친구도 따라나섰다. 친구 부부가 나란히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나는 뒷자리에서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 동안 걸렸는지 친구 부부가 나를 엘리베이터에 쑤셔 박고 가버린 후에야 겨우 잠에서 깼다. 콤팩트를 꺼내려고 핸드백을 여니까 맨 위에 웬 껌이 한 통 들어 있었다. --- pp.80-81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집도의와 환자 가족 사이가 사뭇 감동스럽다. 초조해하는 가족 앞에서 의사는 잠깐 권위의 갑주(甲冑)를 벗고 인간적인 온정과 성의를 내비친다. 실수할 확률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인간을 인간에게 맡겼다는 게 인간을 백발백중의 기계에게 맡긴 것보다 훨씬 마음 놓이게 한다. 그런 마음이 의사에게 당치 않은 응석도 부리게 하고 때로는 추태에 가까운 애걸이나 부탁, 다짐까지 하게 되고 의사는 가족들의 그런 인간적인 약점에 잠깐이나마 그 어느 때보다도 너그러워지는 아량을 보인다. 어쩌면 그건 아량이라기보다는 동정이나 감상인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어머니의 주치의인 홍박사와 수술실 밖에서 잠깐이나마 그런 따뜻한 인간적인 교감이 있길 바랐다. 진과 기름이 다 빠진 앙상한 노구, 그러나 아직도 여체인 어머니의 몸이 의식을 박탈당한 채 그에게 맡겨지는 광경은 상상만으로 충분히 참혹했다. 나는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도 그가 필요했다. 그러나 큰 병원 수술실은, 수술실이 아닌 수술장이었다. 그 수술장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는 하루에 2, 30명을 헤아렸다. 마치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해 제품이 완성되며 운반되듯 종합병원이란 거대한 메커니즘이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베풀어가며 제시간에 수술실로 보내고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저절로 수술실에서 내보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이 닿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진심으로 부탁하고 매달리고 싶은 책임자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수술장은 저만큼서부터 가족들에게 금단의 구역이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속에서의 일을 책임질 사람도 만날 길이 없었다. 집도의는 수술장에 상주하는 것인지 그들만의 전용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인지, 환자를 들여보내고 아무리 그 앞에서 서성대도 홍박사뿐 아니라 어떤 의사도 만나볼 수 없었다. 딴것도 아닌 사람들의 목숨을 맡고 맡기는 관계에 있어서 사전에 잠시라도 그런 인사치레 내지는 교감이 없다는 게 나는 몹시 허전했다. 수술 동의서에 도장 찍는 일보다는 그게 더 필요한 일일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수술장에 들어가기까지의 어머니의 밝고 천진한 태도는 많은 위안이 되었다. 80 노구에 가해질 대수술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불안 없이 마냥 편안할 수가 있는지 어머니는 산골요법과 수술을 동일시함으로써 그런 편안함에 도달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아직도 오빠는 종교였다. --- pp.107-109 이념의 폭력 앞에 스러진 생명과 모성애 지현어머니의 환각 속에서 드러나는 오빠의 죽음 이야기가 너무 슬펐어요. 왜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죽어야 했던 건가요? 선생님그 질문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야. 이 소설이 고발하는 건 이념 대립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폭력적인가 하는 점이야. 오빠는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가 전향했고, 적치하에 남은 불안 속에서 의용군에 지원한 것으로 제시되지. 즉,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 무너진 인물이야. 전쟁이라는 광기는 한 개인의 사정이나 선택을 전혀 봐주지 않지. 수지저는 어머니가 인민군 군관의 팔에 매달리고, 아들이 병신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살려 달라고 비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평소 자존심 강한 어머니 모습이랑은 너무 달라서요. 선생님맞아. 그 장면이 정말 중요해. 거기서 우리는 이념을 완전히 넘어서는 모성애의 절박함을 보게 되지.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공산주의자인지, 민주주의자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어. 오직 ‘내 자식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을 뿐이야.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 어떤 이념도 인간의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말이야. 태우그런데도 결국 오빠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잖아요. 나중에 어머니가 오빠의 유해를 화장해 바다에 뿌렸다는 부분에서는 정말 슬펐어요. 선생님그 참혹한 기억이 바로 어머니 가슴에 박힌 ‘말뚝’의 실체야. 자식을 전쟁 속에서 잃어야 했던 고통, 그리고 전쟁이 남긴 상처 때문에 자식의 뼈를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한. 그 기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질 수 없는 거야. 마치 영혼에 깊게 새겨진 화상 자국처럼 말이지. --- pp.153-154 춘복과 철성은 경비초소를 향해 걸어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바드득바드득 소리가 났다. 잿빛 먼지가 바짓가랑이에 달라붙었다. 콧속을 온통 후벼 파 갈 것 같은 냄새가 온몸을 감싸왔다. 그들이 위 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여기저기 말라 죽은 버드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새들의 시체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춘복은 문득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떠올렸다. 뽕나무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었다는 말은 이 골짜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그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미륵(彌勒)은 어디에 있을까?” 춘복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원궁(內院宮)에 가 계시겠지.” 철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냐, 난 미륵이 이 미륵산 줄기 어딘가에 내려와 있다고 생각해. 때가 되면 우리들 앞에 나타날 거야.” “…….” “미륵이 정말 도솔천(兜率天)으로부터 미륵산에 하생(下生)하여 아기장수 바위 밑에서 성불할 때 이 세상은 낙토(樂土)로 변할까?” “어른들이 그러셨잖아. 아기장수 바위 밑에서 미륵삼존(彌勒三尊)이 출현한다고 했잖아.” 우, 우, 우. 잿빛 바람이 산허리를 스쳐 불어갔다. 잿빛 가루가 빠른 속도로 쏟아져 내렸다. 춘복은 어깨에 쏟아져 내리는 가루를 손으로 털었다. 춘복과 철성은 경비초소로 다가갔다. --- pp.18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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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