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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과 함께 읽는 모래톱 이야기|우상의 눈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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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

책소개

목차

이 책을 추천하며
책머리에
이 책의 구성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사밧재
제3병동

전상국
동행
우상의 눈물
돼지 새끼들의 울음

저자 소개 4

Kim, Jeong-Han,金廷漢, 요산

호는 요산으로 경남 동래 출생이다. 1929년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유학생 학우회에서 펴낸 학지광의 편집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사하촌』이 조선일보에 당선된 이후 『항진기』, 『기로』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사하촌』은 가뭄이라는 자연적 재난과 사찰의 가혹한 소작제도 및 일제의 통제라는 삼중의 억압 속에 시달리고 있는 소작농민들의 절대적 빈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시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소작 농민들의 집단적인 행동의식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학적 출발이 경향적
호는 요산으로 경남 동래 출생이다. 1929년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유학생 학우회에서 펴낸 학지광의 편집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사하촌』이 조선일보에 당선된 이후 『항진기』, 『기로』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대표작 『사하촌』은 가뭄이라는 자연적 재난과 사찰의 가혹한 소작제도 및 일제의 통제라는 삼중의 억압 속에 시달리고 있는 소작농민들의 절대적 빈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시대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소작 농민들의 집단적인 행동의식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문학적 출발이 경향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일본 유학 시절에 가담했던 사회주의 문학단체 동지사의 체험에서 연유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사료하고 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고문과 1987년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의장을 맡았다.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는 『낙일홍『인간단지』『수라도·인간단지』 『삼별초』등이 있으며 1996년 11월 28일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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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동행」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우리들의 날개』 『외등』 『형벌의 집』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사이코』 『온 생애의 한순간』 『남이섬』 『굿』, 장편소설로 『늪에서는 바람이』 『불타는 산』 『길』 『유정의 사랑』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김유정』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소설창작강좌)』 『우리가 보는 마지막 풍경』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 『길
1940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춘천고,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동행」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우리들의 날개』 『외등』 『형벌의 집』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 『사이코』 『온 생애의 한순간』 『남이섬』 『굿』, 장편소설로 『늪에서는 바람이』 『불타는 산』 『길』 『유정의 사랑』이 있다. 그 밖의 저서로 『김유정』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소설창작강좌)』 『우리가 보는 마지막 풍경』 『물은 스스로 길을 낸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춘천山 이야기』 『춘천 사는 이야기』 『작가의 뜰』 등과 콩트집 『식인의 나라』 『장난 전화 거는 남자를 골려준 남자』 『우리 시대의 온달』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1977), 한국문학작가상(1979), 대한민국문학상(1980), 동인문학상(1980), 윤동주문학상(1988), 김유정문학상(1990), 한국문학상(1996), 후광문학상(2000), 이상문학상 특별상(2003), 현대불교문학상(2004), 경희문학상(2014), 이병주국제문학상(2015), 강원도문화상(1990), 동곡상(2013), 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2024)을 수상했고, 황조근정훈장(2005), 보관문화훈장(2018)을 수훈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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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지니에듀(주) 사내이사 교육평론(주) 사내이사 (주)도서출판 알앤비 사내이사 저서 한국 대표 단편문학의 이해와 감상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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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인천하늘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인간미(人間味)를 지닌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패턴국어 중학문법 종합편 상』, 『패턴국어 중학문법 종합편 하』, 『패턴국어 문법 기본편』,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 『패턴국어 고등문학:현대시』, 『패턴국어 고등문법:기출문제』,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 소설』, 『패턴국어 고등문학:고전시가』,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2』,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3』, 『청소년을 위한 학교 국어 문법』,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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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148*210*30mm
ISBN13
9791124905098

책 속으로

모래톱 이야기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교원 노릇을 해 오던 탓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 p.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건우란 소년은 내가 직접 담임했던 제자다. 당시 나는 K라는 소위 일류 중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날 첫 시간의 일이었다. 지각생이 많았다. 지각생이 많으면 교사는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 유독 닦이는 놈은 으레 그런 일이 잦은 놈들이다.
“넌 또 지각이로군?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건우의 차례였다. 다른 애와 달리 그는 옷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래 윗도리 옷깃에서 물이 사뭇 교실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는가!
--- p.28-29

빼앗긴 땅과 지워지지 않는 민중의 목소리
버려진 삶터, 조마이섬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1966)는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섬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땅과 살아갈 권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조마이’는 주머니를 뜻하는 방언으로, 강물에 둘러싸인 작고 외진 섬을 떠올리게 한다. 주민들은 선조 때부터 둑을 쌓고 홍수와 싸우며 땅을 일구었지만 정작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사 ‘나’가 제자 건우와 섬 주민에게 들은 사연을 기록하는 방식은,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작가는 이 작은 섬을 통해 해방 뒤에도 돈과 권력이 법보다 앞선 사회를 비판하며, 삶터를 지키려는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함께 보여 준다.

주인만 바뀐 땅과 이어진 수탈

조마이섬의 비극은 소유자가 바뀌어 온 내력에서 드러난다. 주민들이 물과 싸우며 일군 땅은 일제 강점기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인 ‘동척’과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고, 해방 뒤에는 국회의원의 명의로 둔갑한다. 그 뒤 강을 메워 땅을 넓힐 허가를 받은 유력자가 섬까지 차지하려 들면서 주민들은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나라가 바뀌어도 땅을 빼앗는 주체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살아온 사람들의 권리는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작품은 법과 행정이 약자를 지키지 못하고 힘 있는 사람의 욕심을 돕는 모습을 통해, 식민지의 수탈이 해방 뒤에도 다른 얼굴로 이어졌음을 고발한다.
--- p.24-25

사밧재

‘문경 새재가 높다카더만, 머 이 사밧재보다 짜다라 높지는 않을 꾸로!’
송 노인은 흔한 하늘조차 속 시원히 못 보게 가로막는 듯한 먼 잿마루를 벌써 몇 번이나 바라보았다.
안팎 오르내리기가 거의 20리나 된다는 지루한 잿길의 자락짬에서 그는 아직도 허덕이고 있는 셈이었다. 옛날부터 국도였다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골짜기가 으슥해서 대낮에도 곧잘 도둑이 붙던 곳이다. 지금은 다행히 신작로가 나고, 달구지랑 자동차들이 심심찮게 지나다녀서 덜 무섭긴 해도 재넘이 골바람은 여전히 맵고, 때로는 먼지까지 들씌우는 것이 질색이었다.
대한도 벌써 지난 때이건만 눈은 아직도 골짜기마다 허옇게 쌓여 있고, 길섶 따라 서릿발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팔순이 가까운 송 노인의 콧방울도 붉을 수밖에 없고, 그 빨개진 코끝에는 말간 콧물이 대롱거리게 마련이었다. 게다가 사나운 재넘이가 이따금 두루마기를 사뭇 벗겨갈 듯 휘몰아치고, 숨이 턱턱 막힐 때는, 아닌 게 아니라 손자며느리의 말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다.
“날씨가 좀 더 풀리거든 가시지요?”
--- p.92-93

벼랑 끝에서도 이어지는 민중의 걸음
식민지의 시련을 품은 사밧재

김정한의 「사밧재」는 1971년 『현대문학』에 발표되었지만, 이야기는 태평양 전쟁 말기의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학도병 동원과 창씨개명 강요, 순사의 감시가 일상을 짓누르던 때, 팔순에 가까운 송 노인은 병든 누나에게 줄 뱀술을 품고 사밧재를 넘는다. 오르내리는 길이 스무 리인 고개는 식민 지배 아래 민중이 넘어야 했던 고난과 생사의 경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누나를 찾아가는 노인의 걸음에는 억압 속에서도 가족을 돌보고 삶을 잇는 의지가 담겨 있다. 작가는 고단한 여정에 시대의 비극을 겹쳐, 힘없는 사람의 삶에 역사의 폭력이 어떻게 새겨지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빼앗긴 뱀술과 짓밟힌 존엄

송 노인이 처음 탄 목탄차 안은 식민지 사회의 힘 관계를 옮겨 놓은 공간이다. 누나를 살리려고 마련한 뱀술을 순사는 권력을 앞세워 빼앗고, 학도 지원병들에게 출전을 축하하는 술로 나누어 준다. 생명을 살릴 약이 사람을 전쟁터로 보내는 술로 바뀌는 순간, 일제의 폭력은 노인의 물건만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정성과 존엄까지 짓밟는다. 송 노인은 술병을 내놓지 않으려 버티고 속으로 순사를 비웃지만, 끝내 빼앗기는 굴욕을 견뎌야 한다. 이 장면은 민중이 겉으로 저항하기 어려웠던 현실과, 억눌려도 사라지지 않은 분노를 함께 보여 준다.
--- p.88-89

제3병동

국립 X대학 부속병원 제3병동-

제3병동이라 하면, 새로 선 현대식 고층 건물인 1, 2병동의 북쪽 뒷구석에 남아 있는 낡은 구식 건물로서,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원들까지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현재 헐려 가고는 있지만 남쪽에 있는 역시 낡은 보일러실과 소독실을 겸한 2층 건물에 가리어,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아래층은 더욱 그러했다.
아마 2층 세면소가 있는 짬이리라. 천장에서 무시로 물이 뚝뚝 새어 떨어지게 마련인, 어둠침침한 골마루부터가 그렇다. 게다가 밟으면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시커먼 마룻바닥! 대체로, 축축한 그 청 밑에 미이라같이 말라붙은 시체라도 누워 있어서, 날씨가 덜 좋은 밤중이면 도깨비라도 불쑥 튀어나와서 저켠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올 듯한… 그런, 묵고 퀴퀴한 집이다.
또 하나 질색인 것은 귀곡성 같은 인간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마련인 시체 안치소가 가깝다는 거다. 그런데다 전등마저 밝은 걸 달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들만으로도, 의사나 간호원들이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제3병동이란 데가 바로 전염병 환자들만을 수용하는 곳이란 데 있다. 그래서 거기를 드나드는 의사나 간호원들은 언제나 커다란 마스크로 코와 입짬을 덮싸고 있다. 수간호원은 간호원실에 앉아 있을 때도 좀처럼 마스크를 떼지 않았다.
--- p.140-141

근대화의 그늘, 제3병동에 갇힌 인간의 존엄
병원으로 형상화된 1960년대 근대화의 모순

김정한의 「제3병동」(1969)은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 아래 추진된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작가는 생명을 구해야 할 공간인 병원을 서사의 중심 무대로 삼아, 의료 행위마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비정한 현실을 드러낸다. 병원 밖에서는 불도저가 개발의 굉음을 울리며 근대화의 속도를 과시하지만, 병원 안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제도의 냉혹함 속에서 고통을 견딘다. 이 극명한 대비는 곧 당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물질적 성장은 가시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근대화의 이중적 풍경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며, 화려한 성장의 외피 뒤에 가려진 윤리적 공백과 인간성의 훼손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 p.136-137

동행

발목까지 빠져드는 눈길을 두 사내가 터벌터벌 걷고 있었다. 우중충 흐린 하늘은 곧 눈발이라도 세울 듯, 이제 한창 밝을 정월 보름달이 시세를 잃고 있는 밤이었다.
앞서서 걷고 있는 사내는 작은 키에 다부져 보이는 체구였지만 그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허전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이 사내로부터 두서너 걸음 뒤져 걷고 있는 사내는 멀쓱한 키에 언뜻 보아 맺힌 데 없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앞선 쪽에 비해 그 걸음걸이는 한결 정확했다.
큰 키의 사내가 중절모를 눌러 쓰고 밤색 오버에 푹 싸이다시피 방한(防寒)에 빈틈이 없어 보이는가 하면 키 작은 사내는 희끔한 와이셔츠 위에 다만 양복 하나를 걸쳤을 뿐, 그 차림새가 퍽도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 양복이라는 것도 윗도리의 품이 좁디좁고 길이도 깡똥한 반면 아랫바지는 헐렁하게 크기만 해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에 눈이 녹아 붙어 걸음을 옮길 적마다 서걱거렸다. 그 작은 키에 어깨를 잔뜩 좁혀, 을씨년스럽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 p.206-207

눈 덮인 산길에서 피어난 연민과 생명의 선택
전쟁이 남긴 상처와 뒤틀린 개인의 삶

전상국의 「동행」(1963)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개인의 삶 속에 남아 있는 상처와 죄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눈 덮인 강원도 산길을 걷는 키 작은 사내와 큰 키의 사내는 각각 살인범 최억구와 그를 뒤쫓는 형사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곧바로 드러내지 않은 채 와야리를 향해 동행한다. 작품은 이들이 주고받는 과거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한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뒤틀었는지를 차츰 밝혀 나간다. 억구는 전쟁의 피해자인 동시에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이며, 형사는 그를 체포해야 하는 추적자인 동시에 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인물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관계는 전쟁의 비극을 단순한 선악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고갯길의 상승과 하강이 만든 여로형 구조

이 작품은 인물들이 길을 걸으며 사건이 전개되는 전형적인 여로형 소설이다. 두 사람은 개울을 건너고 산비탈을 올라 구듬치 고갯마루에 이른 뒤, 다시 내리막길과 갈림길로 향한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의 의심과 긴장은 점차 높아지고, 억구의 유년 시절과 전쟁기의 살인, 아버지의 죽음이 차례로 드러난다. 반대로 고갯마루를 지나 내려가는 과정에서는 형사가 억구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대립과 긴장이 서서히 누그러진다. 또한 서술자는 처음부터 두 사람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말투와 표정, 손의 움직임만을 제시하여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처럼 공간의 이동과 비밀의 폭로가 맞물리면서 작품은 추리 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구성을 갖추게 된다.
--- p.202-203

우상의 눈물

학교 강당 뒤편 으슥한 곳에 끌려가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했다. 끽소리 한 번 못한 채 고스란히 당해야만 했다. 설사 소리를 내질렀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쫓아와 그 공포로부터 나를 건져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였고 도서실에서 강당까지 끌려가는 동안 나는 교정에 단 한 사람도 얼씬거리는 걸 보지 못했다. 더욱이 강당은 본관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주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재수파(再修派)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은 무언극을 하듯 말을 아꼈다. 그러나 민첩하고 분명하게 움직였다. 기표가 웃옷을 벗어 던진 다음 바른손에 거머쥐고 있던 사이다 병을 담벽에 깼다. 깨어져 나간 사이다 병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그의 걷어 올린 팔뚝에 사악사악 그어 갔다. 금 간 살갗에서 검붉은 피가 꽃망울처럼 터져 올랐다. 기표가 그 팔뚝을 내 눈앞에 들이댔다. 핥아! 기표 아닌 다른 애가 말했다. 내가 고개를 옆으로 비키자 곁에 둘러선 서너 명의 구두 끝이 정강이에 쪼인트를 먹였다. 진득한 액체가 혀끝에 닿자 구역질이 났다. 오장이 뒤집히듯 역한 것이 치밀었다. 나는 비로소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헤아릴 길 없는 거센 공포로 해서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비벼댔다. 그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 바지에서 혁대가 풀려 나간 다음 벗겨져 맨살이 드러난 허벅지에 칼끝이 박히는 것 같은 아픔이 왔다. 나는 그들에게 양쪽 겨드랑이를 잡힌 채 몸부림쳤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칼끝은 상당히 오랜 시간 허벅지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살 타는 냄새를 맡았다. 칼침이 아니라 그들은 담뱃불로 내 허벅지 다섯 군데나 지짐질을 했던 것이다. 소리 질러 봐, 죽여 버릴 거니, 한 놈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드디어 허물어져 내리듯 의식을 잃어 갔다. 그런 몽롱한 의식 속에서 기표가 씨부려 댄 한마디 말소릴 놓치지 않았다.
--- p.264-265

선의의 얼굴을 한 폭력과 무너진 우상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와 폭력의 두 얼굴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1980)은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통해 폭력의 여러 얼굴을 탐구한 작품이다. 소설의 중심에는 반 아이들을 주먹과 공포로 지배하는 최기표와, 그를 교화한다는 명분 아래 치밀한 계획을 실행하는 담임과 반장 임형우가 놓여 있다. 기표의 폭력이 상처를 남기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힘이라면, 담임과 형우의 폭력은 자율과 우정, 사랑과 구원의 언어 속에 숨어 있어 쉽게 폭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은 이 두 힘의 충돌을 따라가며, 정당한 명분을 얻은 폭력이 한 인간의 존엄과 존재 기반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 결과 독자는 폭력이 어떤 말과 절차를 통해 정당화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 p.260-261

돼지 새끼들의 울음

그때 그 음모를 발의했거나 의기투합하여 쑥덕이기 시작한 것이 누구누구였던가 하는 것은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우리들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 음모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을 음흉하고도 잔인한 벌레들이 스멀거리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깊숙이 거세당한 돼지 새끼들의 경직된 간덩이가 부풀어 오르기엔 둘러싸인 울타리가 보다 높고 견고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높고 견고한 담 속에서 우리들은 그야말로 신중을 기하면서 날카롭게 이빨을 갈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집 안에다 호랑이 새끼를 키운 셈이라고나 할까.
전국적으로 처음 실시된 대학 입학 예비고사가 끝난 며칠 뒤, 마치 중병 앓고 난 뒤의 탈진한 상태에서, 혹은 던져진 주사위에 대한 자포자기한 감상이 우리들을 휩쓸고 있을 즈음이었으니까 음모는 오히려 쉽게 영글어가고 있었다. 도서실 한 귀퉁이에서, 옥상에서, 혹은 휴지 처리장 뒤 담벼락에 붙어 우리들은 조금씩 킥킥 웃어가며 칼을 갈았다.
처음 우리는 우리들이 생각해 낸 그 방법의 기발하고 당돌함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 p.326-327

거짓 우상을 무너뜨리고 되찾은 해방의 목소리
교실에 투영된 권위주의 사회

전상국의 「돼지 새끼들의 울음」(1975)은 유신 체제 아래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의 억압을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압축해 보여 준다. 학생들을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줄 세우는 담임의 통제는 효율과 성취를 앞세워 개인을 규율하던 당시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거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학생들에게 복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학교의 일상으로 옮겨 놓는다. 이로써 교실은 교육 공간을 넘어 권력이 구성원을 길들이고 스스로 복종하게 만드는 사회의 축소판이 된다.

규율과 감시로 세운 담임의 권력

담임 최달호는 성적과 규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학생들을 지배한다. 그는 ‘정신일도 하사불성’, ‘최소한의 예의’ 같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제식 훈련과 체벌, 징계와 감시를 통해 반을 통제한다. 학생들을 ‘돼지 새끼’라고 부르는 호칭에는 그들을 인격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겨 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이러한 억압을 ‘1등 반의 긍지’로 받아들이고, 담임의 기준에서 밀려난 친구의 희생마저 방관한다. 작품은 이를 통해 권력이 강제력만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동의와 침묵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 p.322-323

추천평

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 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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