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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과 함께 읽는 흰 종이 수염|역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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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

책소개

목차

이 책을 추천하며
책머리에
이 책의 구성

김동리
역마
손창섭
비 오는 날
잉여인간
서기원
암사지도
이 성숙한 밤의 포옹
하근찬
수난이대
흰 종이 수염

저자 소개 6

金東里, 김시종

김동리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한 작가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로 등단해 1979년 「만자 동경」까지 43년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김동리 문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을 거쳐 개발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늘날 김동리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넓고 깊다. 그런 만큼 작품들은 언제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소설사에서 그의 문학이 차지하는 성격을 해명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상적 측면, 기법적 측면, 미학적 측면, 신화 원형적 측면, 심리적
김동리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한 작가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로 등단해 1979년 「만자 동경」까지 43년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김동리 문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을 거쳐 개발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늘날 김동리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넓고 깊다. 그런 만큼 작품들은 언제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소설사에서 그의 문학이 차지하는 성격을 해명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상적 측면, 기법적 측면, 미학적 측면, 신화 원형적 측면, 심리적 측면 등 다양한 시각에서 김동리 작품은 분석되고 평가된다.

본명은 김시종으로 1913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중학(儆新中學) 4년을 중퇴하고 문학수련에 전념하였다. 이 때부터 박목월(朴木月)·김달진(金達鎭)·서정주(徐廷柱) 등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화랑의 후예』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37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또한 김동리는 자신의 문학적 출발이 죽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평생 죽음을 어떻게 초극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집착했다. 그러나 김동리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는 단순히 죽음 자체의 추구로 끝나지 않고 여러 가지 원형적 이미지들을 통해 오히려 강렬한 생명 의식을 드러낸다.

저서로는 소설집으로 『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배우자 또한 소설가인 손소희였으며 아들 김평우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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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昌涉, 귀화이름 : 우에노 마사루(上野昌涉)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더불어 보냈는데, 작가 스스로 “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후로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다”면서 성장한 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몰라 기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이후 10여 년간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 고학으로 몇 군데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 대학에서 잠시 수학했다. 이 무렵(19세)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인 지즈코와 동거 생활에 들어가는가 하면, 뒤늦게 독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더불어 보냈는데, 작가 스스로 “소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후로는 기억할 필요가 없어 잊어버렸다”면서 성장한 후로는 자신의 생일을 몰라 기념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이후 10여 년간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와 도쿄에서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 등 고학으로 몇 군데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 대학에서 잠시 수학했다. 이 무렵(19세) 일본인 친구의 여동생인 지즈코와 동거 생활에 들어가는가 하면, 뒤늦게 독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해방을 맞아 1946년에 부인과 아이를 일본에 남기고 홀몸으로 귀국했으나 오갈 데 없는 처지로 고통스러운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이때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귀국한 이른바 ‘해방 따라지’들과 공동으로 자활 건설대를 조직했으나 경관을 구타한 사건으로 3개월간의 도피 행각, 그후 상경했으나 또다시 미군 부대 통역관을 폭행한 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개월간 복역했다가 출감한 후 38선을 넘어 고향인 평양을 찾아갔다. 공산치하인 고향 평양에서 2년간 지내다가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1948년 월남, 그후 교사ㆍ잡지사 편집 기자ㆍ출판 사원 등으로 일하면서 겨우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던 중에 6ㆍ25 전쟁이 터졌다. 이때 피난지 부산에서 남편을 찾아 한국에 건너와 있던 아내 지즈코와 기적적으로 상봉, 비로소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1952년에 단편 「공휴일」을 김동리의 추천으로 지에 발표하면서 등단, 그후 휴전 직후에서 4ㆍ19에 이르는 몇 해 사이에 중요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전후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그의 문학이 당시 우리 문학계에서 ‘새로운 전율’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주리고 헐벗은 소외’의 문제를 다룬 그 주제 의식이 전후의 물질적 결핍과 물리적 황량의 문학적 대응으로서 폭넓은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길」등의 몇몇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동시에「환관」「청사에 빛나리」등과 같은 역사 단편을 시도해서 새로운 경지를 펼쳐보였으나, 1970년대 들어 부인의 조국인 일본으로 건너간 후 국내 문단과는 전혀 소식을 끊고 지내다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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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으로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공군장교에 지원하면서 중퇴했다. 젊은 시절 동화통신, 조선일보, 서울신문, 서울경제신문 기자로 일했다. 동시에 「현대문학」에 〈암사지도〉가 추천완료되면서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시절 경제기획원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뒤 국무총리 공보비서관과 청와대 대변인을 거쳤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서울신문 사장, KBS 사장을 역임했다. 현대문학 신인상과 동인문학상, 한국문학상,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은 단편으로 〈암사지도〉〈안락사론〉〈오늘과 내일〉〈이 성숙한 밤의 포옹〉 그리고〈마
서울 출생으로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공군장교에 지원하면서 중퇴했다. 젊은 시절 동화통신, 조선일보, 서울신문, 서울경제신문 기자로 일했다. 동시에 「현대문학」에 〈암사지도〉가 추천완료되면서 소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시절 경제기획원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뒤 국무총리 공보비서관과 청와대 대변인을 거쳤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서울신문 사장, KBS 사장을 역임했다.
현대문학 신인상과 동인문학상, 한국문학상,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은 단편으로 〈암사지도〉〈안락사론〉〈오늘과 내일〉〈이 성숙한 밤의 포옹〉 그리고〈마록열전〉연작이 있다. 중편은 〈전야제〉와 〈사금파리의 무덤〉 장편은 〈혁명〉〈김옥균〉〈조선백자 마리아상〉〈광화문〉〈왕조의 제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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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瑾燦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을 받았으며 1989년 『작은 용』으로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난 이대』, 『나룻배 이야기』, 『흰종이 수염』,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등이 있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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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국어 교육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인천하늘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인간미(人間味)를 지닌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저서로 『패턴국어 중학문법 종합편 상』, 『패턴국어 중학문법 종합편 하』, 『패턴국어 문법 기본편』,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 『패턴국어 고등문학:현대시』, 『패턴국어 고등문법:기출문제』,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 소설』, 『패턴국어 고등문학:고전시가』,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2』, 『패턴국어 중등문학:현대시3』, 『청소년을 위한 학교 국어 문법』,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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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20쪽 | 148*210*30mm
ISBN13
9791124905081

책 속으로

역마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 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 들이 또한 구렛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p.28-29

운명을 받아들이며 되찾은 삶의 힘
정착과 유랑이 교차하는 화개장터

김동리의 「역마」(1948)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맞닿고 하동·구례·쌍계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한다. 장꾼과 나그네가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곳은 정착과 유랑이 교차하는 경계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의 성격은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성기의 운명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가는 시대 상황을 앞세우기보다 화개장터의 길과 물, 주막과 장터에 담긴 토속적 분위기를 통해 인간이 타고난 운명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따라서 화개장터는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에 그치지 않고, 성기가 정착과 떠남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도록 이끄는 상징적 공간이 된다.

운명을 막으려는 옥화의 노력

옥화는 성기의 역마살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화개 장날마다 책전을 벌이게 한다. 이는 아들이 떠돌지 않고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체장수와 계연이 주막에 찾아오면서 계획은 어긋난다. 옥화는 계연에게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며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 아들을 붙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정착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동시에 감춰진 혈연의 비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운명을 막으려는 옥화의 노력이 오히려 운명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는 역설은 작품의 비극성을 깊게 한다.
--- pp.24-25

비 오는 날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元求)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東旭) 남매의 음산한 생활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 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이 오뉘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동욱의 거처를 왕방하기 전에 원구는 어느 날, 거리에서 동욱을 만나 저녁을 같이한 일이 있었다. 동욱은 밥보다도 먼저 술을 먹고 싶어 했다. 술을 마시는 동욱의 태도는 제법 애주가였다. 잔을 넘어 흘러내리는 한 방울도 아까워서 동욱은 혀끝으로 잔굽을 핥았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몇몇 교회에서 다년간 찬양대를 지도해 온 동욱의 과거를 원구는 생각하며, 요즈음은 교회에 나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동욱은 멋쩍게 씽긋 웃고 나서 이따마큼 한 번씩 나가노라고 하고 그런 때는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이라는 것이었다.
--- pp.86-87

잿빛 비의 감옥이 된, 비 오는 날
잿빛 하늘 아래 갇힌 전후의 풍경

손창섭의 「비 오는 날」(1953)은 한국전쟁기 피난지 부산을 배경으로, 오랜 기간 이어지는 장마라는 질식할 듯한 기상 조건을 통해 시대의 우울을 형상화한다. 전쟁의 상처가 계속되는 이 피난 도시의 하늘은 여전히 잿빛 비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작가는 끈적거리고 눅눅한 피난지의 배경 묘사를 통해 단순히 비가 내리는 자연 현상을 넘어,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곪아가는 당대의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를 탁월하게 시각화했다. 이 작품에서 ‘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의 상징이자 인물들의 삶을 옥죄는 거대한 감옥의 알레고리다.

결핍과 불안 속에 놓인 인물 군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결핍을 안은 채, 온전한 삶의 자리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리어카 잡화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원구, 무능력한 인텔리 동욱, 그리고 왼쪽 다리에 장애를 지닌 동옥은 모두 전쟁기 피난지의 빈곤과 불안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불완전한 삶의 조건과 무기력한 태도를 통해, 정상적인 일상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 전쟁기 현실을 드러낸다. 특히 동옥의 육체적 장애는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그녀의 고립감과 상처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한다.
--- pp.82-83

잉여인간

만기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 씨와 간호원 홍인숙 양 외에도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 둘이 있다. 그 한 사람은 비분강개파 채익준 씨요, 다른 한 사람은 실의의 인간 천봉우 씨다. 두 사람은 다 같이 먼저 나와서 대합실에 자리 잡고 신문을 읽고 있는 날도 있었다. 더구나 채익준은 간호원보다도 일찍 나온 수가 많았다. 큼직한 미제 자물쇠가 잠겨 있는 출입문 앞에 버티고 섰다가 간호원이 나타날 무렵이면,
“미스 홍 오늘은 나에게 졌구려.”
익준은 반가운 낯으로 맞이한 것이었다. 그런 날은 인숙이가 아침 청소를 하는데 한결 편했다. 한사코 말려도 익준은 굳이 양복저고리를 벗어부치고 소매까지 걷고 나서서 거들어 주기 때문이다. 대합실과 진찰실을 합쳐도 겨우 다섯 평이 될까 말까 한 방이지만 익준은 손수 마룻바닥에 물을 뿌리고 방구석이나 테이블 밑까지 말끔히 쓸어 내는 것이다. 무슨 일에나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을 서는 그의 성품은 이런 데도 잘 나타났다. 청소가 끝나면 익준은 작달막한 키에 가로 퍼진 그 등실한 몸집을 대합실 의자에 내어던지듯 털썩 걸터앉아서 신문을 본다. 그러노라면 원장과 천봉우가 대개 전후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 pp.128-129

상처 입은 시대와 인간의 초상
전후의 폐허와 실존적 허무의 형상화

손창섭의 「잉여인간」(1958)은 6·25 전쟁 직후 황폐해진 시대의 상처를 짊어진 인간 군상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무력화하는지를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작품이 조명하는 비극은 단순한 물리적 폐허에 머물지 않고 인간 내면의 붕괴라는 더욱 참혹한 현실로 나아간다. 작가는 이를 통해 전후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허무와 불안, 그리고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당대인의 실존적 비극을 생생하게 형상화한다. 이러한 시대적 아픔은 만기 치과라는 제한된 공간에 모여드는 채익준과 천봉우,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서만기를 통해 이른바 ‘잉여인간’의 문제로 제시된다.

비분강개하지만 무력한 지식인의 비극

채익준은 정의감에 불타 사회의 부조리를 맹렬히 비판하지만, 가정의 생계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능력하다기보다 타락한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채 번번이 좌절하고 마는 전후 사회에서 파탄 난 지식인의 전형에 가깝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처자식은 극심한 빈곤 속에 놓이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의 드높은 비분강개는 현실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공사판에 나간 사이 아내가 죽고, 장례가 끝난 뒤에야 돌아오는 그의 모습은, 행동성을 상실한 채 입으로만 이상을 부르짖는 ‘박제된 지성’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여 준다.
--- pp.124-125

암사지도

형남(亨男)이 작년 여름에 제대하여, 의지할 곳이 없었던 차에 우연히 만난 옛 전우가 상덕(相德)이었다. 그들은 같은 중대에서 일 년 남짓 함께 지냈었다. 중대장은 해방 직후 군대에 들어가서 육 년 만에 대위가 된 사내로, 중대원들에게 훈시할 적마다,
“본관의 사병 시대에는 침구를 정돈함에, 공장에서 갓 나온 벽돌을 포개어 놓듯 했는데, 귀관들은 도시 정신 상태가 돼먹지 않았다.”
고, 기합(氣合)을 넣다가, 으레
“그럼으로 해서 귀관들은 인격은 도야해야 된다.”
고 다지곤 하였다. 못살던 자가 돈푼깨나 생기면 가난뱅이 업신여기기가 도리어 심하다더니, 그 사내는 사병들에게 노예가 되기를 강요했다. 그 아래서 미술대학생인 김형남 하사와 법대생 박상덕 하사는 서로 유일의 친구가 되었다. 총알이 스스로 피해 간다는 중대장이 전사하고, 그들이 속한 소대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어, 말더듬이 어느 이등 중사가 대장 대리 근무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격전도 용케 견디어냈었다. 그래 상덕은 형남이 제대하기 반년 앞서 군복을 벗었다. 상덕은 형남에게 장차 사회에 나와 잠자리가 변변치 않으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주소에다 열댓 칸짜리 한식 기와집의 구조마저 그려가며,
“네가 오면 요 방을 주지.”
하곤, 대문 칸과 맞붙은 뜰아랫방을 빨간 오일 연필로 꼭꼭 찔렀던 것이다.
--- pp.216-217

폐허 위에서 삶의 길을 다시 묻다
상실의 시대와 비어 있는 지도

서기원의 「암사지도」(1956)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청년들의 삶을 그린 전후소설이다. 제목인 ‘암사지도’는 지형의 윤곽만 있고 지명과 표시가 비어 있는 연습용 지도를 뜻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 주는 이름과 좌표가 없는 지도는 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가치의 기준을 잃은 인물들의 처지와 닮아 있다. 포화는 멎었지만 그들의 생활과 마음에는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상징을 통해 방향을 잃은 전후 세대의 불안과 공허를 보여 주는 한편, 비어 있는 지도 위에 새로운 삶의 길을 다시 그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포탄에 뚫린 집과 무너진 생활

제대 뒤 의지할 곳이 없던 형남은 옛 전우 상덕을 만나 그의 집에 머문다. 한때 규모 있는 한옥이었지만 포탄에 지붕이 뚫린 채 방치된 이 집은 전쟁으로 무너진 생활의 기반을 눈앞에 보여 준다. 처음에는 상덕의 수입으로 세 사람이 살지만, 그가 실직한 뒤에는 형남의 수입에 기대게 된다. 이처럼 책임지는 사람이 바뀌어도 세 사람의 불안정한 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상덕의 집은 단순히 도덕이 무너진 공간이 아니라, 생계를 꾸릴 토대가 사라지면서 인간관계와 삶의 기준까지 흔들린 전후 사회의 작은 모습이다.
--- pp.212-213

이 성숙한 밤의 포옹

늙은 기관차는 유리창마다 성하지 못한 객차들을 폐물이 되어 버린 혁대처럼 주체스럽게 달고 고개를 기어 올라갔다.
기관차의 심장은 차라리 터져 버리기엔 너무도 노쇠했다. 내 심장은 비록 당장 쫓기고 있는 불안에 떨고 있을망정 벌떡벌떡 젊음의 절박한 고동소리를 온몸에 퍼치고 있었다. 다만 기관차의 할딱이는 숨소리만은 나의 거친 가래소리와 비슷했다. 그것은 중천에 이글거리는 여름의 햇볕과 그 밑에서 펄펄 끓고 있는 객차 안의 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기관차는 만원의 객차들을 끌고 언덕배기를 기어오르기에 숨이 가빴지만 나는 이를테면 그 기관차를 허리에 맨 밧줄로 끌어당기기에 절망적인 땀방울을 쏟고 있었다.
기차는 고개를 넘기 전에 굴속으로 들어갔다. 전등 하나 없는 객차 안에서는 빨간 담뱃불이 두어 군데 어중간히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깨어진 창 안으론 매캐한 연기에 섞여 깔깔한 석탄재가 코를 쑤셨다.
나는 벌써 나흘째 갈지 못한 손수건을 끄집어내어 코와 입을 막았다. 땀과 때기름이 쉬어 터진 냄새가 사뭇 친밀하게 나 자신의 체취를 깨닫게 했다.
이 냄새만은 분명히 내 것이다. 그것은 내가 눈 똥이 남의 것보다 덜 구리다는 으레 자애심에서라기보다 이 내 피부가 따갑도록 강렬한 냄새야말로 바로 짐승의 삶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었다.
--- pp.274-27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마주한 실존의 민낯과 책임
탈영의 출발점, 사랑과 절박함

서기원의 「이 성숙한 밤의 포옹」(1960)은 폐병으로 죽어 가는 연인 상희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 ‘나’가 충동적으로 탈영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탈영은 단순한 일탈이나 비겁한 도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는 휴가를 받아 정당하게 다녀올 생각보다, 당장 상희에게 달려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있다. 작품은 이 출발부터 전쟁이 한 인간의 판단과 감각을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아붙였는지를 보여 주며, 주인공의 내면을 불안과 열기, 육체적 피로가 뒤섞인 상태로 제시한다.

후방 도시에서의 방황과 만남의 실패

그러나 주인공은 상희가 있는 도시까지 와서도 그녀에게 곧장 가지 못한다. 그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고, 상희의 집으로 향했다가도 골목 어귀를 지나쳐 버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히 겁을 먹었다는 점이 아니라, 상희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신에게는 없는 어떤 자격이나 가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후방 도시는 그에게 안식처가 아니라, 상희를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증폭되는 공간이 된다. 상희의 집 골목 앞도 들어서지 못한 채 사창가로 흘러 들어가는 장면은, 그가 사랑과 구원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옆길로 미끄러지는 존재임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 pp.270-271

수난이대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정거장에서 연기가 물씬물씬 피어오르며 삐익 기적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가까워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 뼘가량 떠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 멀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까짓것, 잠시 앉아 쉬면 뭐할 기고.
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누르면서 팽! 마른 코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휘청휘청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 pp.342-343

상처 입은 역사를 건너는 삶의 의지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과 끈질긴 생명력

하근찬의 「수난이대」(1957)는 근현대사의 거대한 폭력의 수레바퀴에 짓눌렸던 한 가족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두 번의 비극을 아버지와 아들의 신체적 결손으로 구체화하면서, 역사의 잔혹함이 개인의 몸과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각인되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상처의 기록이나 패배의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약하고 결핍된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민중의 생명력’을 강렬하게 증명한다.

팔을 잃은 아버지, 다리를 잃은 아들

아버지의 잘린 팔과 아들의 잘린 다리는 단순한 장애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상흔의 응축된 상징이다. 만도의 팔은 일제 강점기라는 절대적 폭력 속에서 삶을 유린당한 민족의 고통을, 진수의 다리는 동족상잔 이후 전후 사회의 분열과 상실을 드러낸다. 작품은 이를 통해 ‘역사의 수난이 세대를 넘어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특히 정거장에서 아들의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이는 모습을 본 순간 터져 나온 만도의 비통한 외침은 반복되는 수난에 대한 절망이자 삭일 수 없는 분노로, 개인의 상처가 시대의 상처로 이어져 역사가 한 가족의 삶에 스며드는 방식을 극명히 드러낸다.
--- pp.338-339

흰 종이 수염

1
아버지가 돌아오던 날 동길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다른 다섯 명의 아이와 함께였다.
아이들은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어떤 아이는 시퍼런 코가 입으로 흘러드는 것도 아랑곳없이 눈만 대고 깜작거렸고, 입술이 파랗게 질린 아이도 있었다. 여생도 둘은 찔끔찔끔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축 처진 조그마한 어깨들이 볼수록 측은했다.
그러나 동길이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두 주먹을 발끈 쥐고 있었다. 양쪽 볼에는 발칵 불만을 빼물고 있었고, 수박씨만 한 두 눈은 차갑게 반짝거렸다.
‘울 엄마 일하는데 어떻게 학교에 오는공. 울 아부지 안제 돈 많이 벌어 갖고 돌아오면 다 줄낀데 자꾸 지랄같이….’
동길이는 담임선생의 처사가 도무지 못마땅하여 속으로 또 한 번 눈을 흘겼다.
쫓겨나온 교실이 마음에 있다거나 선생님의 교탁 안으로 들어간 책보가 걱정이 된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알량한 몇 권의 헌책 나부랭이, 혹은 사친회비를 못 내고 덤으로 앉아서 얻어 배우는 치사스러운 공부 같은 것, 차라리 시원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돈을 가져오라는 호령 따위도 이미 면역이 된 지 오래여서 시들했다. 그러나 돈을 못 가지고 오겠거든 아버지나 어머니를 데려오라는 데는 딱 질색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 pp.378-379

웃음 속에 감춰진 아버지의 눈물
전쟁 뒤에도 이어지는 민중의 상처

하근찬의 「흰 종이 수염」(1959)은 6·25 직후를 배경으로, 전쟁이 한 가족에 남긴 상처를 동길의 눈으로 보여 준다. 노무자로 끌려간 아버지는 한쪽 팔을 잃고 돌아오고, 동길은 학교 운영비인 사친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다. 빈 소매와 가난의 수치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중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목수였던 아버지에게 팔은 생계를 잇는 수단이었으므로, 그 상실은 가족의 앞날을 흔드는 위기가 된다. 그러나 작품은 이 가족을 무너진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부자가 모멸을 견디며 살아가려는 모습을 통해 상처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삶의 힘을 보여 준다.

체면을 내려놓고 얻은 일자리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는 아들의 사친회비를 마련하려고 극장 선전원 자리를 얻는다. 그는 고깔을 쓰고 얼굴에 흰 분을 바른 뒤 종이 수염과 광고판을 달고 거리를 돈다. 겉으로는 우스운 구경거리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부양하려는 절박함과 감추고 싶은 슬픔이 담겨 있다. 취직한 날 밤 아버지가 술기운에 춤을 추다가 흐느껴 우는 모습은 일자리를 얻은 안도감과 체면을 내려놓아야 하는 서러움이 함께 밀려왔음을 보여 준다. 작가는 그를 무기력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고, 달라진 몸으로도 가족의 생계를 이어 가려는 생활인으로 바라본다.
--- pp.37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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