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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 전집 23 내 마음의 풍금
하근찬
산지니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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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내 마음의 풍금

해설 | 선생과 제자 사이의 ‘아름다운 통증(痛症)이자 애틋한 회한(悔恨)’으로서의 연애담-오태호
작가연보
작품연보

저자 소개 1

河瑾燦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을 받았으며 1989년 『작은 용』으로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난 이대』, 『나룻배 이야기』, 『흰종이 수염』,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등이 있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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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52*225*16mm
ISBN13
9791168616585

책 속으로

사람의 기억이란 겹겹이 쌓아놓은 볏단 같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 「첫 문장」 중에서

하지만 가슴 깊숙이 그리움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잠 못 이루며 증오의 날을 세우던 것도 아니라면 얘기는 다르다. 언제까지나 생생할 것만 같던 기억일지라도 어느새 세월의 수레바퀴에 깔려 하나, 둘 지워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기억의 공소시효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삼십 년 만에 연락이 닿은 홍연이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홍연이와 나 사이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며 붙잡고 있어야 할 기이한 인연이 그물을 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오래전에 떠나온 교단에서 만났던,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 아니던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 전 제자의 목소리를, 그것도 전화 한 통화로 금방 기억해낸 것을 보면, 내 속에 나도 모르는 짙은 그리움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운 만큼 홍연이에게 익숙해 있었던 것이 아닐까.
--- p.13

5교시까지 있던 어느 날, 반 아이 하나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학교를 빠져 나와 교문 밖 가게로 갔다. 거기서 건빵 한 봉지를 사 들고는 학교 뒷산에 올라가 건빵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행여 다른 아이들이 볼까 봐 숨어서 먹었던 것이다.
5교시가 시작될 무렵 아이가 교실에 들어섰더니 모두들 하교하고 청소 당번만 남아 있었다. 그날은 수업시간이 변경되어 갑작스레 5교시가 없어졌지만 혼자 뒷산에 올라가 있던 그 아이는 알 턱이 없었다. 아이는 별수 없이 책보를 둘러메고 신작로의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집으로 혼자서 털레털레 걸어가야만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보리밥이나마 매일 싸 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인 형편이었다.
반찬이라야 기껏 김치 아니면 검은 콩자반이 전부였다.
--- p.47

나는 정말 잘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홍연이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나는 마치 내가 영화 속의 배우, 그것도 명배우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홍연이의 눈가에 야릇한 물결이 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늘 속이지만 달이 밝았고,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시선이라 상대방의 표정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 바보!”
홍연이는 내뱉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와락, 고개를 도로 숙여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또다시 큭큭큭, 웃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는,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홍연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켜본다기보다는, 두 눈으로 홍연이의 그 큭큭거리는 모습을 더듬듯, 어루만지듯, 지그시 감싸안고 있었다.
차츰 숨결이 더워지고 가슴이 벌떡거렸다. 두 눈 가득 열기가 담기는 듯도 했다. 어떤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 p.113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은 기성회비 납부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교무회의에서 기성회비 문제로 선생님들을 질책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성회비를 받기 위해 가정방문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실에서 입이 닳도록 얘길 해도 끝내 기성회비를 가져오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따로 불러서 나무라기도 하고 혼을 내 보기도 하지만 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아이를 불러 면담하던 때였다.
“언제까지 낼래?”
“엄마가 그러는데요, 누에고치만 팔면 된답니다.”
“이놈아, 그 누에고치 판다는 얘기가 몇 번짼 줄 알아?”
“엄마가 그러는데 전들 어쩝니까.”
나는 어이가 없었고, 아이는 눈물만 글썽일 뿐이었다.
그렇게 기성회비를 못 낸 아이들은 괜히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해했다. 어린 마음에도 가난이 원수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기성회비가 없어 학교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은 고갯마루에서 책보를 베고 낮잠을 자거나 들판에서 놀다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 p.183

출판사 리뷰

원본과 연보에 집중한 충실한 작업,
하근찬 문업을 조망하다


하근찬 문학세계의 체계적 정리, 원본에 충실한 편집, 발굴 작품 수록, 작가연보와 작품 연보에 대한 실증적 작업을 통해 하근찬 문학의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연구사적 가치를 높여, 문학연구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근찬 문학전집은 ‘중단편 전집’과 ‘장편 전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단편전집’은 단행본 발표 순서인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을 저본으로 삼았고,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하근찬의 작품들도 발굴하여 별도로 엮어내어 전집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장편 전집’의 경우 하근찬 작가의 대표작인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산에 들에』뿐만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 있는 「직녀기」, 「산중 눈보라」, 「은장도 이야기」까지 간행하여 하근찬의 전체 문학세계를 조망한다.

23권 『내 마음의 풍금』
하근찬의 기억에서 탄생한 사실주의적 연애담


하근찬의 사실주의적 장편소설 『내 마음의 풍금』은 그 원형을 1981년에 발표된 중편 「여제자」에서 찾을 수 있다. 「여제자」가 1999년 이영재 감독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으로 개봉, 상영된 이후 같은 해 개작되어 『내 마음의 풍금』으로 출간된 것이다. 이후 동명의 소설이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2008)으로 제작되어 한 편의 소설이 여러 장르로 활용되는 사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의 자전 소설로, 하근찬 작가는 1948년 산골 국민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겪은 일을 거의 그대로 담았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선생이 자신이며, 홍연이라는 이름의 여학생 역시 실제 인물이고 그녀가 혈서를 보내온 일도 실화라고 설명한다. 즉, 『내 마음의 풍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각색한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30년 만에 연락 온 제자 홍연의 전화로부터 시작한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의 기억을 소환하고, 자신도 미처 몰랐던 ‘그리움의 감정’을 마주한다. 갓 스물을 넘긴 21세의 강 선생은 산리국민학교의 교사로 배정된다. 그때 홍연은 17세 늦깍이 국민학생으로, 둘은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처음에 강 선생은 홍연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애모의 정’을 부인하기도 하지만, ‘이성에 대한 그녀의 연정’을 현재에는 인정한다. 홍연은 담임 강 선생이 매주 검사하는 일기를 통해 그를 향한 짝사랑을 드러내고, 화자는 이를 부정하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홍연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 양 선생이 등장하여 삼각관계가 만들어지며 화자는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내 마음의 풍금』은 선생과 학생의 사랑이라는 금기의 관계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이를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떠오르는 첫사랑의 기억을 애틋하고 낭만적인 감각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야기 속에는 강 선생, 홍연, 양 선생이라는 세 인물이 얽히며 두 쌍의 사랑이 모두 이루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결말로 흘러간다. 이 과정에서 1인칭 화자인 강 선생의 시선으로 세 인물 모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흔들림을 포착해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각 인물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한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답게 하근찬은 특유의 사실성과 낭만성으로 교사와 학생의 위계적 관계 속에서도 청춘 남녀의 애틋한 떨림과 섬세한 감각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그 위에서 1980~90년대 한국 낭만 연애소설의 정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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