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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 전집 20 제복의 상처
하근찬
산지니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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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
프롤로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스승의 화실에서
최초의 뜨거움
나의 계절은 겨울
비밀, 그리고 수치감
가랑비가 내리는 날
19세의 허니문
거울은 깨어지고
기러기 한 마리

저자 소개 1

河瑾燦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
하근찬은 우리에게 『수난 이대』라는 단편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1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나 6·25 동란을 전후하여 5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 작품 모집에 소설 [혈육]이 당선된 경력이 있었지만 그를 문단에 데뷔시킨 것은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단편 『수난 이대』였다.

1959년 교육 주보·교육 자료사 기자로 재직했으며, 1969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이후 1970년 『족제비』로 제7회 한국문학상을, 1981년 『산에 들에』로 조연혁 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을 받았으며 1989년 『작은 용』으로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수난 이대』, 『나룻배 이야기』, 『흰종이 수염』,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등이 있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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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152*225*18mm
ISBN13
9791168616561

책 속으로

어느 날, 다락 속에 쌓여 있는 헌책이랑 잡지 나부랭이, 혹은 신문 뭉치 같은 것을 정리하다가 나는 서류 봉투에 든 세 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 「첫 문장」 중에서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인은 그 소설을 나에게 놓고 사라져 버린 셈이다.
결국 그 세 권의 노트는 서류 봉투에 넣어진 채 우리 집 다락 구석에 헌책 나부랭이와 함께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고, 내 뇌리에서 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오륙 년 만에 그 세 권의 노트를 발견한 나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헌 잡지나 신문 나부랭이와 함께 싸잡아서 고물장수에게 팔아 치워버릴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계속 보관하고 있을 것인지……. 남은 애써 쓴 것을 휴지로서 팔아 버린다는 것도 좀 뭐하고, 그렇다고 주인이 나타나지도 않는 것을 언제까지나 보관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나는 그것을 잘 고치고 다듬어서 널리 사람들에게 읽히기로 했다. 어쩌면 그런 결과를 기대하고 그 여인이 그것을 나에게 놓고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아무튼 그냥 없애 버리기에는 어딘지 아쉬움이 남는 그런 가련한 한 여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 pp.15-16

“무슨 사색을 그렇게 하고 있었지?”
“…….”
나는 절로 또 얼굴이 화끈했다. 마치 내가 주 선생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서 묻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번 알아맞혀 볼까?”
그러면서 주 선생은 야릇한 장난기 같은 것이 담긴 눈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내 곁에 털썩 앉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결코 싫지는 않았다. 무의식중에 아무도 없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조금 비켜 앉았다.
남자와 단둘이 이런 호젓한 장소에 나란히 앉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것이 비록 학교 선생이기는 하지만 남자임에는 틀림없고, 더구나 요즘 와서 이상스럽게 곧잘 내가 남몰래 머리에 떠올리곤 하는 주 선생이 아닌가. 나는 기분이 묘하고 야릇하기만 했다.
--- p.54

다시 일요일이 다가오자, 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주 선생 집을 찾아가야 될지, 안 찾아가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찾아가야 옳을 것이다. 선생님의 그림 그리는 모델 노릇을 하면서 안 가면 하루 일을 못 하게 하는 셈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제부터는 일요일에 주 선생을 찾아간다는 것은 모델 노릇 외에 은밀하고 부끄러운 즐거움, 즉 밀회를 즐기려는 듯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히려 모델 노릇은 둘째고, 밀회 그 자체가 첫째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밀회— 그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려지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혼자서 머릿속에 그려보며 맥없이 가슴을 울렁이고, 공연히 낯을 붉히기도 하던 그 밀회가 이제 직접 눈앞의 현실로 다가든 것이다. 그런데 그 밀회의 상대가 하필이면 학교의 선생님이 될 줄이야…….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런 걸 따지고 있을 계제가 아니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만큼 되어 있었다. 헤어나기는 고사하고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셈이라, 첨벙첨벙 자꾸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 p.119

며칠 뒤,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가서 일신상의 형편에 의해서 퇴학을 한다는 통고를 했다.
그러자 그 ‘일신상의 형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 측에서 의아스럽게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캐묻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답변에 궁해서 쉬 치유가 되지 않을 그런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한다. 학교 측에서는 병에 걸렸으면 휴학을 할 일이지 왜 대뜸 퇴학이냐고, 쉬 치유가 안 될 병이라니 무슨 병이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폐결핵이라고 해버렸다는 것이다. 폐결핵이라도 아주 중증이어서 일이 년 사이에 완치가 될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한다. 그러자 그것참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하면서 아버지는 씁쓰레하게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으나, 곧 두 눈에 핑 눈물이 어리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힘이 드는구나 싶으며 묘하게 쓸쓸하고 서글픈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 미애를 비롯해서 칠팔 명의 학급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73

출판사 리뷰

원본과 연보에 집중한 충실한 작업,
하근찬 문업을 조망하다


하근찬 문학세계의 체계적 정리, 원본에 충실한 편집, 발굴 작품 수록, 작가연보와 작품 연보에 대한 실증적 작업을 통해 하근찬 문학의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연구사적 가치를 높여, 문학연구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근찬 문학전집은 ‘중단편 전집’과 ‘장편 전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단편전집’은 단행본 발표 순서인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을 저본으로 삼았고,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하근찬의 작품들도 발굴하여 별도로 엮어내어 전집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장편 전집’의 경우 하근찬 작가의 대표작인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산에 들에』뿐만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 있는 「직녀기」, 「산중 눈보라」, 「은장도 이야기」까지 간행하여 하근찬의 전체 문학세계를 조망한다.

20권 『제복의 상처』
얼굴에 새겨진 상처, 시대가 남긴 흔적


하근찬의 장편소설 『제복의 상처』는 1977년 10월부터 1980년 2월까지 《국제식량농업》에 「외기러기」로 연재된 후 제목을 바꾸어 간행된 작품이다. 작품은 소설가인 화자가 다락 속 자료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세 권의 노트로부터 시작된다. 그 노트들은 몇 년 전 한 여인이 자신이 쓴 소설이라며 읽어봐 달라고 가져온 것이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그 여인은 화자가 그때 살던 집에서 이사를 가기까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화자는 이 소설을 그냥 묵혀둘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양혜선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혜선은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기차던 그녀는 점차 우울에 잠식된다. 아내를 잃고 슬픔의 날들을 보내며 셋이서 재미있게 살자고 하던 아버지가 돌연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혜선은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혜선은 야외 수업 중 미술 선생이자 화가인 주상운과 가까워지게 되고, 스승과 제자의 선을 넘게 된다. 주 선생은 혜선에게 자신의 그림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고, 그녀는 매주 그의 집을 드나들며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감정을 키워나간다. 그 사이 친구 미애의 사촌 오빠인 두현의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주 선생의 방해로 일단락된다. 결국 혜선은 임신을 하게 되고, 주 선생과 결혼식을 올린다. 무자녀주의였던 주 선생이 혜선의 임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던 터에, 전처마저 찾아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만취해 귀가한 주 선생과 싸우던 중 깨어진 거울에 혜선은 얼굴에 상처를 입는다. 남편에게 두려움을 느낀 혜선은 친정에서 지내면서 아이를 낳고, 주상운은 부산 여행 중 배 사고에 연루되어 뜻하지 않게 사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소설의 제목인 ‘제복의 상처’는 단순히 혜선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회가 여성에게 덧씌우는 역할과 관계의 굴레, 그 안에서 새겨지는 내면의 상처를 함께 담아낸 표현이다. 하근찬은 한 소녀가 가족의 균열, 금지된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겪는 상실과 고통을 섬세하고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며, 억압된 시대를 살아간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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